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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제 '다산진장' 인장 석제 '다산진장' 인장

조선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서체: 한인전(漢印篆)
사용자: 정약용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이나 신용을 나타낸다. 조선왕조의 인장은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업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를 비롯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사인(私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인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로서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 · 여유당(與猶堂) 등이다. 1789년 대과에 합격한 후, 규장각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발탁되어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왕의 학문 정진과 개혁을 도왔다. 그러나 정조의 사망 후, 천주교 신앙을 빌미로 강진(康津)에서 1801년부터 18년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이 기간 동안 《경세유표經世遺表》 · 《목민심서牧民心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정약용은 철학 · 경학 · 시문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분야 등 여러 방면에 뛰어났으며, 서화에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 역대 서가들의 글씨에 대한 감평(鑑評)을 남기는 등 서예에 대한 식견이 있었던 그는 석고문(石鼓文)을 보고 전서(篆書)를 쓸 정도로 글씨에도 재능이 있었으며, 전각에서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다산진장"은 '다산이 진귀하게 수장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서체: 한인전(漢印篆)
사용자: 정약용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이나 신용을 나타낸다. 조선왕조의 인장은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업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를 비롯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사인(私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인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로서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 · 여유당(與猶堂) 등이다. 1789년 대과에 합격한 후, 규장각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발탁되어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왕의 학문 정진과 개혁을 도왔다. 그러나 정조의 사망 후, 천주교 신앙을 빌미로 강진(康津)에서 1801년부터 18년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이 기간 동안 《경세유표經世遺表》 · 《목민심서牧民心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정약용은 철학 · 경학 · 시문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분야 등 여러 방면에 뛰어났으며, 서화에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 역대 서가들의 글씨에 대한 감평(鑑評)을 남기는 등 서예에 대한 식견이 있었던 그는 석고문(石鼓文)을 보고 전서(篆書)를 쓸 정도로 글씨에도 재능이 있었으며, 전각에서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다산진장"은 '다산이 진귀하게 수장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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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제목: 석제 '다산진장' 인장 석제 '다산진장' 인장
  • 제작연도: 조선, 조선
  • 권리: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 재료: 조각,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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