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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제 '보소재' 인장 석제 '보소재' 인장

조선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서체: 한인전(漢印篆)
사용자: 미상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이나 신용을 나타낸다. 조선왕조의 인장은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업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를 비롯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사인(私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인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옹방강(翁方綱, 1733~1818)은 ‘청사대가(淸四大家)’ 중 한 사람으로 자(字)는 정삼(正三), 호(號)는 담계(覃溪) · 소재(蘇齋) 등이며, 서실로 석묵재(石墨齋) · 보소실(寶蘇室) 등이 있다. 옹방강은 평생 경학(經學)을 연구하여 금석(金石) · 서화(書畵)등의 분야에 정통하였으며, 문학에 있어서도 당(唐) · 송(宋)의 시풍을 답습하지 않고 스스로 독특한 시풍을 이루어 시단의 대가로 추앙받았다. 1810년 옹방강은 78세의 나이에 김정희를 만난 후 그와 끊이없이 편지 · 서적 · 금석 탁본 등을 주고받으며 교유했다. 또 옹방강의 아들 옹수곤(翁樹崑) 역시 자신의 별호를 ‘추사’를 딴 성추(星秋)라고 할 정도로 김정희와 깊은 유대관계를 가졌다. 김정희를 매개로 신위, 조인영 등도 옹방강과 학문적 인연을 맺었다.

"보소재"는 '소동파(蘇東坡)를 보배롭게 받드는 서재'라는 뜻이다. 보소재는 옹방강의 당호(堂號)이다. 헌종 뿐 아니라 김정희, 신위 등 당시 문인들은 '보소재' 및 이를 줄인 '소재'라는 호를 사용함으로써 옹방강과의 학문적 교유를 드러냈다.

서체: 한인전(漢印篆)
사용자: 미상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이나 신용을 나타낸다. 조선왕조의 인장은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업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를 비롯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사인(私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인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옹방강(翁方綱, 1733~1818)은 ‘청사대가(淸四大家)’ 중 한 사람으로 자(字)는 정삼(正三), 호(號)는 담계(覃溪) · 소재(蘇齋) 등이며, 서실로 석묵재(石墨齋) · 보소실(寶蘇室) 등이 있다. 옹방강은 평생 경학(經學)을 연구하여 금석(金石) · 서화(書畵)등의 분야에 정통하였으며, 문학에 있어서도 당(唐) · 송(宋)의 시풍을 답습하지 않고 스스로 독특한 시풍을 이루어 시단의 대가로 추앙받았다. 1810년 옹방강은 78세의 나이에 김정희를 만난 후 그와 끊이없이 편지 · 서적 · 금석 탁본 등을 주고받으며 교유했다. 또 옹방강의 아들 옹수곤(翁樹崑) 역시 자신의 별호를 ‘추사’를 딴 성추(星秋)라고 할 정도로 김정희와 깊은 유대관계를 가졌다. 김정희를 매개로 신위, 조인영 등도 옹방강과 학문적 인연을 맺었다.

"보소재"는 '소동파(蘇東坡)를 보배롭게 받드는 서재'라는 뜻이다. 보소재는 옹방강의 당호(堂號)이다. 헌종 뿐 아니라 김정희, 신위 등 당시 문인들은 '보소재' 및 이를 줄인 '소재'라는 호를 사용함으로써 옹방강과의 학문적 교유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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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제목: 석제 '보소재' 인장 석제 '보소재' 인장
  • 제작연도: 조선, 조선
  • 권리: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 재료: 조각,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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