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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제 '한묵연' 인장 석제 '한묵연' 인장

조선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서체: 한인전(漢印篆)
사용자: 신위 추정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이나 신용을 나타낸다. 조선왕조의 인장은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업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를 비롯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사인(私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인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신위(申緯, 1769~1845)는 시인이자 서화에 뛰어난 재능을 겸비했던 인물로 자는 한수(寒叟), 호는 자하(紫霞) · 경수당(警修堂)이다. 1799년 문과에 급제해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발탁되었으며, 대사간 · 이조참판 · 병조참판 등을 지냈다. 1812년 진주겸주청사(陳奏兼奏請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에 갔을 때 김정희의 소개로 옹방강과 교유를 가졌고, 인장에도 그와 관련된 글귀를 새겨서 사용했다. 전각에 대한 지식과 감식안이 뛰어났던 신위는 헌종의 명을 받아 조두순(趙斗淳, 1796~1870)과 함께 《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의 편집을 맡았다고 전하며, 역대 서화가들의 인장을 모아 찍은 《고금인장급화각인보(古今印章及華刻印譜)》[정육(鄭堉), 1818년]에 서문을 쓰기도 하였다. 신위의 아들들 또한 전각에 취미가 있었는데, 특히 장남 신명준(申命準, 1803~1842)은 어려서부터 중국에서 전래된 인장들을 모각했다고 한다.

"한묵연"은 '붓과 먹으로 맺은 인연'을 의미한다. 고금(古今)을 떠나 시문과 서화를 통하여학문적인 사귐이 있는 사람들을 '한묵연을 맺었다'고 한다. 헌종 · 옹방강 · 김정희 · 권돈인 등의 깊은 교유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신위의 <홍두실(紅豆室)[간송미술관 소장]과 신위 · 신명준 · 신명연 부자의 <시령도(詩舲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도 유사한 인장이 찍혀있다.

서체: 한인전(漢印篆)
사용자: 신위 추정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이나 신용을 나타낸다. 조선왕조의 인장은 국새나 관인 등 국가업무용 인장, 왕과 왕비의 존업성을 상징하던 어보(御寶)를 비롯하여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던 사인(私印)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사인은 인장의 예술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신위(申緯, 1769~1845)는 시인이자 서화에 뛰어난 재능을 겸비했던 인물로 자는 한수(寒叟), 호는 자하(紫霞) · 경수당(警修堂)이다. 1799년 문과에 급제해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발탁되었으며, 대사간 · 이조참판 · 병조참판 등을 지냈다. 1812년 진주겸주청사(陳奏兼奏請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에 갔을 때 김정희의 소개로 옹방강과 교유를 가졌고, 인장에도 그와 관련된 글귀를 새겨서 사용했다. 전각에 대한 지식과 감식안이 뛰어났던 신위는 헌종의 명을 받아 조두순(趙斗淳, 1796~1870)과 함께 《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의 편집을 맡았다고 전하며, 역대 서화가들의 인장을 모아 찍은 《고금인장급화각인보(古今印章及華刻印譜)》[정육(鄭堉), 1818년]에 서문을 쓰기도 하였다. 신위의 아들들 또한 전각에 취미가 있었는데, 특히 장남 신명준(申命準, 1803~1842)은 어려서부터 중국에서 전래된 인장들을 모각했다고 한다.

"한묵연"은 '붓과 먹으로 맺은 인연'을 의미한다. 고금(古今)을 떠나 시문과 서화를 통하여학문적인 사귐이 있는 사람들을 '한묵연을 맺었다'고 한다. 헌종 · 옹방강 · 김정희 · 권돈인 등의 깊은 교유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신위의 <홍두실(紅豆室)[간송미술관 소장]과 신위 · 신명준 · 신명연 부자의 <시령도(詩舲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도 유사한 인장이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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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제목: 석제 '한묵연' 인장 석제 '한묵연' 인장
  • 제작연도: 조선, 조선
  • 권리: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 재료: 조각,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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