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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대왕 훈유 영조대왕 훈유

영조 20년(1744)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영조가 1744년(영조 20) 사도세자(思悼世子)에게 교훈이 될만한 글을 내린 것이다. 총 네 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내용은 『조선왕조실록』 영조 57권 19년(1743 계해) 2월 30일(갑인) 기사에 기록되어 있다. 영조가 사도세자의 자字를 정해주며 내린 훈유로, 훈유 세번째 첩이다. 3매의 각석 앞뒷면으로 총 6면에 새겨져 있다. 창덕6690, 창덕6691, 창덕6692이 각석의 전문을 이루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 시대의 제왕(帝王)가운데 두터운 사랑으로 나라를 세운 이는 하(夏)나라·은(殷)나라·주(周)나라이다. 그 후는 오직 한(漢)나라와 송(宋)나라이다. 한 고조(漢 高祖)는 삼장(三章)을 약속하였는데 뜻은 관용과 사랑에서 시작하였으며, 예조(藝祖)는 관후(寬厚)하였다는 것이 분명히 역사 기록에 실려 있다. 더구나 정사(政事)에 관대하고 백성에게 관대하게 대함이 우리 조선에 대대로 내려오는 법이다. 말세(末世)의 풍속은 형식적인 법조문을 운용하여 가혹하게 사찰함을 우선으로 한다. 지금 내가 너에게 ‘자(字)’를 정해줌에 ‘관(寬)'자를 사용한 것은 의미가 깊은 것이다. 아! 세자야. 내가 너에게 ‘관(寬)’자로 자를 지어준 뜻을 삼가 헤아려서 ‘관(寬)’자로 오늘날의 일에 힘쓰고, ‘관(寬)’자로 장래에도 열심히 일하거라. 나라 다스리는 데 유익할 뿐만이 아니라 실로 몸과 마음에도 도움이 있다. 국가를 영원히 유지함에도 ‘관(寬)’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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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제목: 영조대왕 훈유 영조대왕 훈유
  • 제작연도: 영조 20년(1744), 영조 20년(1744)
  • 권리: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 재료: 조각,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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