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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 부처 관련 편지 및 기타 문서

1961년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1961년 9월 5일 충남 대전 중동의 상지회 대표 이유립(李裕岦) 외 14명이 영친왕의 환국을 바라며 보낸 편지이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상지회(尙志會) 대표 이유립(李裕岦) 등은 삼가 재계하고 백 번 절하면서 우리 황태자 영친왕 전하께 아룁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옛말에 "월(越)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서 꿈을 꾸고, 기(冀) 땅의 말은 북풍에 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바로 월나라는 남쪽에 있고 기 땅은 북쪽에 있어서 그 새와 말이 태어난 고향이므로 간절히 그리워 잊지 못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남쪽의 가지에서 꿈을 꾸고, 매양 북쪽에서 부는 바람에 우는 것입니다. 만일 이 새와 말을 목줄을 풀어주고 마구간에서 풀어준다면 어찌 기쁨에 겨워 날고 뛰어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이제 전하에게 있어서 한국(韓國)이란 월나라가 새의 고향이요, 기 땅이 말의 고향이 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고, 을유년(1945)의 해방은 새의 목줄을 풀어주고 말을 마구간에서 풀어주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17년 동안이나 고국으로 돌아오신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실로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장차 의장을 갖추어 영접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군대를 풀어 입국을 거부할까 두려워서입니까.
지금 민주주의 선거제도가 이미 갖추어지고, 공자(公子)들이 왕위를 다투는 세상은 이미 멀어졌으니, 의장을 갖추어 영접하거나 군대를 풀어 입국을 막는 것은 논할 때가 아닙니다. 혁명정부 최고회의 의장 박정희(朴正熙) 장군의 말을 얼핏 듣자니, 영친왕께서 환국하는 여부는 자신의 의지에 맡길 것이고, 또 국비(國費)를 들여 사람을 파견하여 질병을 돌보게 하겠다고 합니다. 장군이 전하를 이미 후하게 대접하고, 영친왕의 귀국을 고대하는 국민도 많으니, 무어 안 될 것이 있어서 아직도 주저하고 계십니까. 혹시 나는 전날의 황태자이니 차마 평민으로 환국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일본 왕실의 여인을 부인으로 맞아 자식까지 두었으니 함께 데리고 돌아올 수도 없고, 혹 가족이 만류하여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그런 것입니까.
예로부터 끝나지 않는 나라가 없었고, 나라가 끝나면 그 왕세자가 평민이 되는 것은 상례입니다. 또 소무(蘇武)와 같이 역사에 큰 절개를 세운 사람도 흉노의 여자를 취하여 자식을 두었다가, 그 나라에 남겨두고 한(漢)나라로 돌아왔으니, 전하께 무슨 잘못이 되겠습니까. 이 뿐만이 아닙니다. 비록 옛날에 말을 돌보던 의사와 여름에 밭을 매던 미천한 자들까지도 매년 한식(寒食)과 추석(秋夕)에는 모두 자손의 제삿밥을 받아먹었는데, 하물며 선조 제왕들의 능묘가 한국의 근기(近畿) 지역에 첩첩이 널려 있건만, 전하께서는 홀로 보리밥 한 그릇을 올릴 수 없단 말입니까.
옛날 (蜀)나라 망제(望帝)는 별령(鼈靈)이란 초나라 귀신에 현혹되어 왕위를 잃고 객지를 떠돌며 돌아가지 못하였고, 죽어서 두견새가 되어 매년 봄바람이 불고 가을달이 뜨면 ‘귀촉도 불여귀(歸蜀道不如歸)’라고 울면서 끝내 피를 토하니, 듣는 자들로 하여금 눈물을 떨구게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장차 이것과 같아지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속히 환국의 계획을 결정하시어, 월나라 새와 기 땅의 말에게 기롱을 받지 마시고, 두견새의 원한을 만들지 마십시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단기 4294년(1961)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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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제목: 영친왕 부처 관련 편지 및 기타 문서
  • 제작연도: 1961년
  • 권리: 국립고궁박물관
  • 재료: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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