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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성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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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성(甕城)은 성문(城門)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둘러쌓은 이중(二重) 성벽을 말한다. 내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 옹성을 먼저 통과해야 했으며, 성벽에서 밖으로 돌출되어 있어 성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3면(三面)에서 입체적(立體的)으로 공격(攻擊)할 수 있도록 한 시설물(施設物)이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의 옹성이 있지만 성문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옹성이라기보다는 용도(甬道)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비롯한 조선시대의 지지(地誌) 자료에 이것들을 옹성이라고 불렀음을 볼 때, 옹성은 성문뿐만 아니라 체성 벽의 보호(保護)를 위하여 돌출시켜 쌓은 시설을 포괄적(包括的)으로 지칭(指稱)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한산성의 옹성은 남쪽에 3개, 동쪽과 북쪽에 각각 1개씩 설치되었다. 남쪽에 가장 많은 옹성이 설치된 것은 북쪽이나 동쪽·서쪽에 비해 남쪽의 경사가 가장 완만하므로 검복리 방면에서 계곡의 완경사면을 따라 올라와 해발 534.7m인 검단산 정상을 확보하거나 계곡에서 화포를 쏠 경우 산성의 방어에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본성과 연결되는 시축지점이 약간 넓게 벌어졌다가 가운데는 잘록하고 끝부분은 다시 넓어져 뭉툭하며 포루 앞부분에 장대가 구축되어 있는 제1남옹성의 둘레는 426m이며, 옹성 내부의 면적은 2,381㎡로서, 제2남옹성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기록에 의하면 이 옹성은 둘레가 344보에 여첩이 109타라 하였다. 제2남옹성과 달리 제1남옹성은 말단부의 내부에 동서 11m, 남-북 17.5m, 높이 3m 정도의 고대(高臺)가 구축되어 있으며, 고대로 인하여 구획된 공간에 3면으로 8개의 포루가 설치되어 있다. 포루는 동쪽에 3개, 서쪽에 2개, 그리고 남쪽에 3개가 설치되어 있다. 제2남옹성은 남한산성에 구축된 5개의 옹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옹성이다. 동서로 길게 뻗은 능선이 해발 447m 지점에서 남쪽으로 완경사를 이루며 뻗어나가고 있는데 2옹성은 이 완경사면을 따라 축성하였다. 제2남옹성의 둘레는 318m이고, 옹성 내부의 면적은 3,583㎡이다. 제2남옹성의 끝부분에는 길이 24m, 너비 21m 정도로 석축을 쌓아 차단벽(遮斷壁)을 설치하고 가운데에는 홍예문을 설치하였다. 이처럼 구획(區劃)을 설정한 것은 구획 내부에 설치된 9개의 포루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9개의 포루는 남쪽에 3개, 동쪽에 3개, 서쪽에 3개가 설치되었는데 포루의 모양은 제1남옹성과 비슷하나 좌측 벽에 무기와 화약을 넣어두는 이방(耳房)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다르다. 땅에 떨어진 무사석 중에는 옹성을 쌓을 때 동원된 니장(泥匠), 야장(冶匠), 석수(石手), 목수(木手)의 이름과 이 공사를 맡았던 사람과 관직명이 새겨진 것이 있다. 무사석에 새겨진 기록에서 ‘무인칠월(戊寅七月)’과 관리책임자인 홍전1606~1665의 이름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이 옹성은 병자호란 이후인 인조 16년1638 원성에 대한 대대적인 개수축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제3남옹성은 제2남옹성에서 동쪽으로 350m 지점에 있다. 옹성은 해발 440m의 소봉(蘇峰)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는데 옹성의 전체 둘레는 125m이고, 면적은 839㎡여서 남한산성의 5옹성 중 가장 규모가 작다. 이 옹성은 본성에서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성 밖으로 나와야 확인된다. 옹성의 남쪽 끝부분에는 5개의 포루를 설치하였는데 제2남옹성의 경우 포루가 있는 곳을 구획하여 홍예문을 설치하였으나 이 옹성은 석축으로 7단의 계단을 쌓았다. 5개의 포루는 남쪽에 3개, 그리고 동서에 각각 하나씩 설치하였다. 다른 포루와 축조기법은 거의 같으나 포루 끝의 포혈(砲穴)이 방형이 아니라 凸자 모양인 것이 다르다. 포루 내벽의 석축은 2~3단으로 쌓았는데 정교하게 다듬지 않았으며 포루의 천장석은 4개의 장대석을 대강 다듬어서 얹었고 돌과 돌 사이의 빈 공간을 모래와 회와 작은 돌을 섞어서 메웠다. 장경사신지옹성(長慶寺信地甕城)이란 장경사에서 수어를 담당(擔當)하는 옹성이란 뜻이다. 동쪽 성벽은 해발 501m인 망월봉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을 따라 일직선으로 내려온다. 지형상 성의 안쪽은 경사가 완만한 데 비해 성의 바깥쪽은 경사가 급하고 굴곡이 심해 방어적인 측면에서 크게 어려움이 없는 지역이다. 그러나 동성은 병자호란 이후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청군은 동성 밖의 벌봉에서 성 내부를 들여다보며 작전을 수립하였고, 한봉에는 대포를 설치하였는데 이 화포공격으로 동벽의 여장 대부분이 훼손될 정도로 그 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병자호란이 끝나자 동벽에는 한봉성 정상부를 겨냥하는 포루가 설치되고 장경사신지옹성이 신축되었다. 연주봉옹성은 원성에서 해발 466.4m인 연주봉 정상부까지 쌓아 연결한 좁고 긴 성벽으로 전체 길이는 315m이고, 성 내부의 면적은 865㎡이다. 정신문화연구원 소장의 『남한산성도(南漢山城圖)』에는 연주봉옹성 끝에 포루(砲壘)라고 표기되어 있어 옹성의 끝부분에 포루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기록을 근거로 복원정비공사시 포루를 복원하였다. 연주봉에서 바라보면 북쪽으로는 아차산 북쪽과 남양주 일대의 한강 수계(水系)가 한눈에 조망되며, 북쪽으로 연결되는 능선의 말단봉(末端峰)에 있는 이성산성(二聖山城)과 하남시 춘궁동 일대가 특히 잘 관측된다. 산성 쪽으로는 본성 북벽의 넓은 지역과 산성파출소 일대가 잘 바라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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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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