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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당 (淸凉堂)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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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李晦)와 그의 처첩(妻妾)을 모신 사당(祠堂)으로 이회(李晦)는 조선(朝鮮) 인조(仁祖) 2년(1624) 남한산성(南漢山城) 축성(築城) 때에 동남쪽의 축성공사를 맡아 하였으나 축성 경비를 탕진하고 공사에 힘쓰지 않아 기일 내에 마치지 못하였다는 무고한 모략을 받고 무참히 사형을 당하였다. 그의 처첩도 남편의 성 쌓는 일을 돕기 위해 삼남지방(三南地方)에서 축성자금을 마련하여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강물에 투신 자살하였다. 그후 그가 이룬 공사를 재조사해보니 견고하고 충실하게 축조되어 있어 그의 죄가 없음이 밝혀져 서장대(西將臺) 옆에 사당(祠堂)을 지어 그의 넋을 달래게 하였다. 본당(本堂)의 전면에는 이회(李晦)의 초상화(肖像畵)가 있고 좌,우편에는 벽암대사(碧岩大師)와 이회(李晦) 처첩(妻妾)의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는데 원래 것은 6·25사변 때 분실되고 지금 있는 것은 그후 새로 만든 것이다.

청량당은 정면3칸, 측면 2칸이다. 주칸(柱間)은 정면 양협칸과 측면 두칸은 같이 잡았고, 정면어칸만은 반자정도 넓게 잡았다. 기단은 장대석 외벌대이고 기단바닥은 흙바닥이다. 정면초석은 화강석 방형초석이지만 상면을 평활하게 다듬었을 뿐이고 측면은 배면의 초석은 자연석 덤벙주초이다. 기둥은 각주이고 내부는 전칸(全間)이 우물마루이다. 민도리집이지만 건물내부에 주두와 소로를 사용하였다. 가구(架構)는 5량가(樑架)인데 정,배면 평주위에 대들보를 건너지르고 사분변작한 위치에 동자주 없이 주두만을 놓고 종량을 걸었다. 종량 위에는 판대공을 놓고 종도리를 걸었다. 도리는 모두 굴도리이다. 측면 중앙기둥 위에서는 대들보 위로 층량을 걸었다.

처마는 사면 모두 홑처마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합각벽은 전벽돌쌓기로 되어 있다.
창호(窓戶)는 정면어칸에만 출입문을 설치하고 양협칸에는 창문을 설치하였다. 출입문은 궁판달린 네짝 띠살문이며, 창은 이중창인데 외부는 띠살창이고 내부는 아자창이다. 내부 배면과 측면의 각 칸에는 벽감을 설치하고 초상화를 걸어 두었다. 벽감외부에는 두짝 띠살문을 달았으며 띠살문 하부에는 머름을 설치하였다. 우측면의 정면쪽 협칸만은 벽감없이 벽면에 초상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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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청량당 (淸凉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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