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중에서는 다양한 재질, 크기와 형태의 보자기가 널리 사용되었다. 중요한 예물은 비단 보자기와 끈으로 정성스럽게 포장하여 예를 갖추었으며, 침전이나 수라간, 곳간 등 궁궐의 생활공간에서도 보자기는 여러 가지 물건을 싸고 덮는 필수적인 살림도구였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보자기 중에는 내용물이나 사용 장소, 제작 시기, 크기나 수량 등을 먹으로 적어놓은 것도 있다.
이 보자기는 소색(素色) 마직물 네 폭으로 구성되었다. 직물 한 겹으로 만든 홑보이며, 보 위에 그림이 그려져 있어 인문보[引紋袱]라고도 한다. 퇴색 정도가 심하여 소색처럼 보이지만, 시접 등에 남아 있는 분홍색 흔적과 바느질에 사용된 실의 색이 홍색인 것으로 보아, 원래 색은 분홍색에 가까웠을 것으로 보인다. 보의 대각선 방향 두 모서리에 끈이 달렸던 흔적이 남아 있다. 끈이 달리는 부분에는 보다 튼튼하게 고정하기 위해 안쪽에 사각형 직물을 덧대었다.
보 중앙에 여러 겹의 연주문(連珠紋), 소용돌이문 등으로 둘러싸인 봉황 한 쌍을 그렸고, 그 주변은 격자형으로 분할하여 원수문(圓壽紋), 병문(甁紋), 금정(金錠)·서각(犀角)·선보(扇寶) 등의 보문(寶紋), 모란과 접시꽃 등의 화문(花紋), 귤·복숭아·불수감(佛手柑)·석류 등의 과실문을 채워 넣었다. 이러한 문양들은 모두 장수, 부귀, 평안, 자손번창 등을 비는 길상적인 뜻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