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실 여성의 원삼(圓衫)에 금박을 찍을 때 사용하던 종이본으로, 3장이 한 벌을 이룬다. 원삼의 소매 윗부분(①)과 소매 아랫부분(②), 뒷길(③)에 해당되는 본이다. 기름을 먹인 사각형 종이의 중앙에 일렬로 배치된 도류불수문(挑榴佛手紋)과 여의(如意) · 호로(葫盧) 등의 보문(寶紋)을 중심으로 위아래에 '수복(壽福)'자와 꽃이 2단으로 번갈아 배치되어 묵선으로 그려져 있다. 소매 윗부분에 해당되는 본은 상단이 비어있는 상태이다. 이는 가운데 띠 형태의 도류불수보문(挑榴佛手寶紋)을 중심으로 위아래 부분이 각각 소매의 앞뒷면에 해당하여 문양이 상하대칭되기 때문에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소매 아래본의 앞면에 '사매', 뒷길본의 앞면에 '뒤'라는 묵서가 있다. 문양의 위치를 잡기 위해 종이를 접은 흔적이 보인다. 이 종이본과 유사한 형태가 원삼용 '수복'자 화문 목판(창덕7734), 원삼 차림을 한 복녕당 귀인 양씨 사진과 경운박물관 소장 의친왕비 녹원삼에서 확인된다.
조선시대 왕실 여성의 원삼(圓衫)에 금박을 찍을 때 사용하던 종이본으로, 3장이 한 벌을 이룬다. 원삼의 소매 윗부분(①)과 소매 아랫부분(②), 뒷길(③)에 해당되는 본이다. 기름을 먹인 사각형 종이의 중앙에 일렬로 배치된 도류불수문(挑榴佛手紋)과 여의(如意) · 호로(葫盧) 등의 보문(寶紋)을 중심으로 위아래에 '수복(壽福)'자와 꽃이 2단으로 번갈아 배치되어 묵선으로 그려져 있다. 소매 윗부분에 해당되는 본은 상단이 비어있는 상태이다. 이는 가운데 띠 형태의 도류불수보문(挑榴佛手寶紋)을 중심으로 위아래 부분이 각각 소매의 앞뒷면에 해당하여 문양이 상하대칭되기 때문에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소매 아래본의 앞면에 '사매', 뒷길본의 앞면에 '뒤'라는 묵서가 있다. 문양의 위치를 잡기 위해 종이를 접은 흔적이 보인다. 이 종이본과 유사한 형태가 원삼용 '수복'자 화문 목판(창덕7734), 원삼 차림을 한 복녕당 귀인 양씨 사진과 경운박물관 소장 의친왕비 녹원삼에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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