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평 윤씨

1835 - 1920

해평윤씨 부인은 조선 말과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초기의 여성 지식인으로, 한글로 된 《윤상공 선정록고》를 남겼다. 윤치호의 고모이고, 윤보선, 윤일선, 윤영선의 대고모 할머니였다. 자매로는 전주 이씨 이인서와 결혼한 누이가 한명 더 있었으며, 윤씨 부인은 용인 이씨 이원시와 결혼하였다.
몰락 양반가 후손이자 아산군의 대지주였던 윤취동과 그의 부인 안동김씨의 딸로, 대대로 수원에서 살던 할아버지 윤득실의 집터가 수원 화성 행궁에 편입되자 토지보상을 받고 충청남도 천안군 모산면으로 내려왔다. 할아버지 윤득실은 통덕랑을 지냈지만 술을 좋아하여 38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어려서 고아가 된 아버지 윤취동은 형 윤교동 내외가 길렀고, 후에 아산군 둔포면 신항리로 독립하여, 자력으로 농토를 마련하여 부농이 되었다. 대한제국 말기 군부대신, 육군부장을 지낸 반계 윤웅렬, 육군참장을 지낸 경재 윤영렬 형제의 누나였다. 그가 순 한글체로 기록한 《윤상공 선정록고》는 남동생 윤영렬이 지방관으로 재직하면서 남겼던 치적, 윤영렬이 동학 농민군을 사칭한 경기도 안성, 평택, 충청남도 아산군 일대의 도적을 토벌하는 과정 등을 기술하였다. 윤치호는 1920년 고모의 장례식장에서 슬픔은 없이 형식에 얽매이고, 허례허식만 내세우고, 슬퍼하는 척을 한 친인척들을 조롱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윤씨부인이 쓴 윤상공선정록은 윤영렬의 딸들이 필사본으로 베껴서 보존하다가, 1983년 유기룡이 20세기 한글로 교정하여 서울 형설출판사에서 출간하였다.
그의 일대기를 간략히 다룬 《해평윤씨부인 약사》라는 책이 간행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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