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디자인박물관

근현대디자인박물관

근현대디자인박물관은 국내 디자인 사료들을 5만여점 이상 소장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디자인전문박물관으로 2008년 3월 개관했다. 박암종관장(선문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이 25여넌 동안 수집한 개화기 이후 2000년대 초까지의 한국디자인에 관련된 수많은 사료들 중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고 희귀성 있는 약 1,600여점을 엄선하여 상설 전시하고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7개의 별-북두칠성’
박물관 2층과 3층에 위치한 상설전시장은 ‘밤하늘에 빛나는 7개의 별-북두칠성’이라는 컨셉트로 모두 7개 섹션으로 구분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태극기 자료부터 2002년 월드컵 관련 자료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근현대 디자인 역사의 흐름을 시대순으로 한자리에서 조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태동기│1876-1910
세계 근대문화의 유입과 디자인개념의 태동 서구 문화의 유입과 함께 근대 디자인의 개념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1883년 태극기가 제정되어 국가의 대표 아이콘이 형성되었고, 정부 기구인 박문국이 설치되었으며 그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가 창간되었다. 1884년 우정국에서 우표를 발행했고, 최초의 민간출판사 광인사는 석판인쇄기를 도입했다. 개화의 노력과 함께 디자인과 관련된 관립공업전습소, 이왕직미술품제작소가 설립되어 전통디자인의 맥을 이어갔다.
정체기│1910-1945
우리 문화 발전의 정체와 국내 기업의 모태 창립일제 강점으로 인해 우리나라 디자인의 역사는 정체기를 맞이하였다. 그 와중에서도 임숙재, 이순석, 강창원, 한홍택 등은 일본으로 유학해 선진 디자인을 국내에 소개했고, 국내 디자인 교육의 기초를 마련했다. 일본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많은 예술인들은 각종 문양, 색채, 스타일에서 한국적 조형성을 찾아 나갔고, 1925년 김봉룡과 전성규가 파리만국박람회에서 나전칠기로 은상과 동상을 수상해 전통공예의 맥을 잇는데 큰 힘이 되었다.
발아기│1945-1961
디자인 유용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발아 및 확대 광복 후 좌우익의 대결에 이어 6.25 전쟁이 발발하였다. 종전 후 산업시설이 재건되면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가와 기업, 언론에서는 각종 디자인 육성책을 마련하였다. 1957년 한국공예시범연구소가 개소되어 제품컨설팅, 유학생제도를 실시하였고, 대학에 디자인학과가 개설되어 보다 전문화되고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졌다. 1959년에는 우리나라 제품디자인사에 한 획을 그은 최초의 국산라디오 금성사 A-501이 생산되었다.
초창기│1961-1976
경제발전 및 수출 동반자로서의 디자인 역할 수행‘미술수출’이라는 구호를 내건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품 디자인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66년 상공미술전람회가 개최되었고, 1970년 한국디자인포장센터(현 한국디자인진흥원)가 설립되면서 체계적인 디자인 육성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가전제품의 보급이 늘고 국산자동차 포니가 생산되면서 제품디자인의 중요성이 급부상하였다. 70년대 중반부터 기업의 CI 도입이 늘기 시작하였고, 수요에 따른 디자인전문회사가 설립되었다.    
발전기│1976-1988
디자인의 체계화와 국제스포츠행사를 통한 발전 도모 고도경제성장과 함께 디자인은 보다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어 가기 시작하였다. 월간 <디자인>이 1976년 창간되었고, 금성디자인연구소가 1977년 설립되었다. 1985년에는 GD(굿 디자인) 마크를 부여하는 제도가 실시되어 산업디자인 개발을 촉진시켰다.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디자인계는 질적, 양적으로 한 단계 도약하였고, 90년대 디자인 산업화 및 국제화로 진입하기 위한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도약기│1988-2000
한국형 디자인의 모색 및 국제화, 세계화의 기반 구축’88 서울올림픽 이후 국제교류활동과 해외 디자인진흥기관과의 협력이 강화되는 한편 국내시장이 개방되면서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담은 한국형 제품들이 개발되었다. 컴퓨터와 IT산업의 발전으로 영상, 통신 및 사무자동화기기 관련 수요가 증가하고, 컴퓨터그래픽은 디자인 분야에 혁신을 가져 왔다. 이 시기에 환경을 염두에 둔 그린디자인 개념이 등장하였고, 선거와 언론분야에도 전과 다른 체계적인 디자인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성숙기│2000-
세계 디자인대회 개최를 통한 한국디자인의 위상 고조 시장개방과 글로벌화로 경제 및 문화경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컴퓨터상의 사이버 스페이스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 자리 잡으면서 온라인 쇼핑몰, 웹진, 인터넷광고 등 새로운 디자인 영역이 가상공간에서 확산되었다. 이같이 디자인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기에 한국디자인계는 2000년 세계그래픽단체협의회, 2001년 세계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총회 등을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한국 디자인은 세계 중심에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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