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경기도 전통문화 - Part 2

경기문화재단

종교, 세시와 놀이

종교
불교

여주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한 고찰로 남한강가에 있다. 원래 대찰이었으나 한때 쇠락했다가 세종대왕을 모신 영릉이 이곳으로 이장하면서 원찰로서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절 이름은 미륵 또는 고승나옹화상, 인당대사이 사나운 용마를 길들였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이 절은 고려 말 나옹화상이 입적한 곳으로 진영 眞影을 모신 선각진당 禪覺眞堂이 있으며, 극락보전 위에 ‘千秋萬歲천추만세’라고 쓰인 현판이 나옹의 친필이라고 구전되고 있다. 한편 고려 때부터 벽절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경내의 동대東臺 위에 벽돌로 쌓은 다층전탑에서 유래한다.
1382년에는 대장각이 건립되어 대장경 1부를 이곳에 봉안했다. 대장경 불사는 고려말 이곡이 발원했으며, 아들 이색이 계승하여 나옹의 제자들과 함께 간행하였다. 신륵사의 승려와 전국의 제자 200여명이 불사에 참여했는데, 이 중에는 각운 覺雲·신조神照·자초自超등의 고승들과 최영·조민수·최무선 등의 이름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신륵사 또한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나 광주의 대모산에 있던 세종의 능인 영릉이 1469년 여주로 이장되면서 왕실에서 이곳을 영릉의 원찰로 삼은 이후 대규모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다 . 조선 양란 때에 소실되었다가 19세기 후반에 중수되었다. 보물 제180호로 지정된 조사당은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중앙에 나옹 , 좌우에 지공 指空과 무학無學의 영정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경기도에는 여러 사찰이 있다. 남양주 봉선사는 고려 광종 때에 창건한 조계종 25교구 본사이며, 남양주 수락산 아래에 있는 흥국사는 신라시대 원광이 창건하였는데 약사여래의 효험이 뛰어나다하여 조선시대부터 왕실에서 불공을 드리던 고찰이다. 인근의 남양주 불암사는 신라 지증국사가 창건한 절로 조선시대에 호국 기도의 도량이었으며, 남양주 수종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뛰어난 경관을 품고 있으며, 조선 세조와 인연이 있는 곳이다. 파주 보광사는 신라 도선 국사가 창건하여 영조 생모의 위패를 모신 곳이고, 양평 용문사는 신라 원효가 창건한 사찰로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된 1,100여 년 된 은행나무가 장관을 이룬다.
화성 용주사는 사도세자의 원찰로 지어진 절이고, 가평 현등사는 신라 법흥왕 때에 인도 승려가 다녀간 곳으로 19세기 초에 중건되었으며, 양평 사나사는 용문사 자락에 위치한 계곡이 수려한 사찰이다.

종교
유교

우리나라 역사에서 성균관과 더불어 교육 중추를 맡아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한 곳이 바로 향교이다. 향교는 오늘날의 국립 고등 교육기관에 해당하는 곳으로 향 鄕은 수도를 제외한 행정구역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말이고 교校는 학교를 가리켜 지방의 학교라는 뜻을 지닌다.

930년고려 태조 13년에 평양에 향교를 설치하여 6부생 六部生을 가르치고 문묘를 세워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것이 향교의 시초다 . 향교는 조선초기에 본격적으로 발전하며 체제를 갖추기 시작하는데 , 이것은 고려말기 성리학의 영향이 크다. 조선 건국 후 태조는 즉위 원년1392년에 각 도의 안찰사에게 향교설치를 강조하는 명을 내리고 수령의 능력을 학교의 흥폐興廢로 가늠했다.

향교의 정전 正殿인 대성전에는 공부자 孔夫子를 비롯해여 4성, 10철과 송조6현 등 21위, 그리고 동·서무에 우리나라 명현 18위와 중국 유현 94위 등 모두 112위를 봉안하여 매년 춘추 두 차례의 석전을 받들게 했다. 여기서 석전은 문묘에서 공부자에게 제사 지내는 의식을 일컫는다. 향교는 석전의식과 유학 중심의 자체 교육을 실시하지만, 지역사회의 교육 기능도 일부 수행했다. 현재 지역의 주민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자 및 예절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경기도의 주요 향교에는 수원향교, 김포향교, 고양향교, 양주향교, 포천향교, 여주향교, 파주 적성향교, 안성향교, 양평 지평향교, 광주향교 등이 있다.

민간신앙
도당굿

구리 갈매동도당굿은 동구릉 인근의 구리시 갈매동에서 전승되는 마을굿이다. 갈매동 산치성도당굿이라고도 하며,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 마을 주민이 대거 참여하는 마을 공동제의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무당굿과 유교식 제의로 진행된다. 굿의 시기를 놓고 볼 때 다른 도당굿이 10월에 하는 것과 달리, 봄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특징이다.
대체로 예고제에는 제주를 선출하고, 부정풀이, 당집 청소와 횃대 준비, 두부를 빚어 액막이를 하는 조포 모시기, 그리고 안반고사로 진행한다. 야간에 마을 뒤 도당산에서 이루어지는 산치성은 유교식 제의로 진행하는데, 횃대를 준비하여 불을 밝히고, 부녀자들이 입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함봉한 상태로 머리에 제물을 이고 운반한다. 이어 길놀이인 서낭맞이가 유가 遊街형태로 마을의 각 가정을 다니며 이루어지는데, 대잡이를 앞세워 무당 일행과 악사들이 다니며 축원을 하고 중간에 주민과 어울린 놀이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첫날 저녁에 시작하여 다음날 오전에 걸쳐 실시한다.

본굿은 천천히 걷는 ‘장문밟기’로 굿당에 도착한 뒤 부정거리 → 도당거리 → 불사거리 → 대안주거리 → 제석거리 → 창부거리 → 계면거리 → 군웅거리 → 당굿 → 뒷전의 순서로 진행된다. 현재 단골무당은 이천분의 모친, 이천분, 최복동, 조순자 만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간신앙
서해안 풍어제

서해안풍어제는 서해 바닷가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공동제의이다. 현재 인천지역 중심으로 활동하는 황해도 출신 김금화(중요무형문화재 제82-나호,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 만신에 의해 전승이 주도되고 있다.
풍어제의 비용은 주민 공동으로 부담하며, 굿을 위한 준비도 자체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굿은 육상에서 하는 대동굿과 바다에서 지내는 배연신굿으로 나뉜다.

대동굿은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마을굿으로,당산에서의 당굿과 마을안에서의 세경굿, 그리고 바닷가의 강변용신굿 등으로 나누어 실시한다.
대체로 굿거리 순서는 신청울림, 상산맞이, 세경굿, 부정거리, 감흥거리, 초영정 물림거리, 복잔내림, 제석거리, 소대감놀이거리, 사냥거리, 성수거리, 타살거리, 군웅거리, 먼산장군거리, 대감놀이거리, 뱃기내림, 조상거리, 서낭목신거리, 영간할아뱜·할먐거리, 뱅인영감거리, 벌대동거리, 강변용신거리 순으로 진행한다.

배연신굿은 바다에서 죽은 원혼을 위한 굿 절차이다. 배 안에 무신도를 걸고 제물을 차린 다음 바다에 나가서 굿을 진행한다. 배 안에는 호서낭기와 임경업장군기, 뱃기 등을 세우고 서리화 봉죽도 세워서 장식하고 진행한다. 무악기는 장구·징·제금·피리·호적때로는 해금도 사용 등이 사용되나, 가장 중요한 악기는 장구이다.

풍어굿은 화려한 복식과 굿거리에 따른 다양한 춤이 수반되고, 접신현상의 신비로움과 연극적 성격의 해학이 어우러진 굿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마을굿으로서의 무속 의식성, 가무악에 의한 예술성, 다양한 연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민간신앙
양주 소놀이굿

양주소놀이굿은 경기도 북부 경사굿에서 굿거리 사이에 행해지는 굿놀이라 할 수 있다. 원래 경사굿의 제석거리 다음에 행해지며, 소를 위하는 농경의례에서 출발했다.
여기에 다양한 연극적 재담과 타령이 삽입되고 놀이적 성격이 가미되었다. 굿과 별도로 이 소놀이만 따로 떼어 중요 무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었다.

소놀이굿은 길놀이, 소와 마부의 등장, 주바지(제석굿), 마부와의 문답, 마부타령, 원마부와의 문답, 곁마부타령, 곁마부와의 문답 , 각종 내력, 소 흥정, 일동의 춤으로 진행된다. 원래 주바지-마부타령-곁마부타령-소지명-절내력-빛내력-은 자보물-머리내력-뿔내력-귀내력-눈내력-코내력-입내력-쇠내력혀내력-이내력-다리내력-굽내력-꼬리내력-굴레치장-질마치장-글내력-논밭갈기-종자타령-마부치장-부인치장-말뚝치장-집치장 등의 27가지 타령과 내력, 치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양주소놀이굿은 악사 김병옥이 명예 보유자로 있으며, 무녀 김봉순이 최근 보유자로 선정되어 전승을 주도하고 있다.

민간신앙
엄미리 장승제

장승제는 남한산성 주변에서 산신제와 함께 이루어지던 마을 제의이다. 엄미2 리의 미라울과 새말 두 마을에서 이루어진다. 이곳은 예전에 왕래가 잦은 교통의 요지였다. 중부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고개가 끊겨 산신제는 중단되고 장승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주변에 음식점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이마저도 위협을 받고 있다.

장승제는 2 년에 한 번 음력 2월 초순에 날을 잡아 지내며, 제사를 주관하는 당주와 음식을 장만하는 화주에게는 엄격한 금기가 설정된다.

당주는 목욕재계하고 산으로 올라가 쌀 한 되로 오지단지에 술을 빚어 산신당 터를 파고 묻는다.

장승제 당일 아침에 일찍 산에 올라가 간단한 산신제를 지내고 장승목으로 오리나무를 베어 장승을 깎는다 . 장승은 남장승 2기와 여장승 2기를 만들며, 이때 솟대도 함께 만든다. 장승의 머리는 나무의 밑부분으로 만들며 , 여장승은 남장승을 만든 나무의 나머지 부분으로 만든다. 장승이 완성되면 얼굴 부분에 황토를 바르고, 남장승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여장승에는 ‘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이라고 붓글씨로 쓴다.

장승을 만든 다음 남장승과 여장승이 길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 보게 세운다. 한편 기러기대솟대는 기러기 모양으로 깎아 긴 장대에 꽂아서 북쪽을 향하게 세운다. 장승을 세운 다음에 화주가 준비한 제물을 차리고 장승제를 지내는데, 돼지머리나 쇠머리 같은 육류가 제물로 오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제물을 올린 후 당주가 술을 따라 재배하고, 간단한 축문을 읽으며, 이어 다시 술을 따르고 재배 후에 소지를 올린다. 소지가 끝나면 통북어를 장승에 매달아 놓는 것으로 마친다. 제사 비용은 원칙적으로 대동걸립으로 충당하며, 현재는 마을기금에다 광주시에서 받은 보조금을 보태어 충당한다.

세시와 놀이
세시민속놀이: 추석의 거북놀이

거북놀이는 8월대보름에 놀던 경기도의 대표적인 집단놀이로, 대체로 경기도 중부 이남과 충청도 북부에 전승된다. 거북의 형상은 주로 수수잎을 사용해서 등껍질 형태의 큰 거북을 만들며, 지역에 따라 작은 거북을 수십 개 만들어 노는 곳도 있다.

추석날 오후 또는 저녁에 10대 젊은 남자아이들과 길라잡이가 큰 거북을 이끌고 각 가정을 방문해 거북이가 먼 길을 오느라 배가 고프다면서 음식을 걷는다. 이때 일부 지역에서는 농악을 치며 집안의 복을 빌어 주기도 한다. 나중에 일행이 모여서 거둔 음식을 함께 먹으며 노는 집단놀이 형태이다. 이 놀이는 1970~80년대에 와서 이농 현상으로 점차 농촌에 아이들이 줄어들고, 음식이 흔해지고, 또한 밭에 수수를 심지 않게 되면서 사라지고 있다.

세시민속놀이: 정월대보름 해동화놀이

광지원 해동화놀이는 광주시 중부면 광지원리에서 전승되는 정월대보름 놀이이다 . 정월대보름에 달이 떠오르면 나뭇단을 쌓아 놓고 불을 붙여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이다. 불을 통해 인간을 괴롭히는 부정한 것을 막는다는 정화 의미의 축귀적 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행사를 남부지방에서는 달집태우기, 충청도 내륙에서는 동화제, 용인 한터마을에서는 동홰놀이라고 부른다. 이때 주민들은 동화 주위에 모여 달에 기원을 하고, 두레풍물을 치면서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한다.

그리고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한 해의 기운이 불처럼 강하게 타오르기를 기원한다. 정월대보름에 붙이는 불은 정화와 생명력이라는 두 가지 상징성을 지닌다.

Gyeonggi Cultural Foundation
제공: 스토리

600년 경기도

기획 |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진행 | 경기문화재연구원 경기학연구팀
집필진 | 강진갑(경기대학교 교수)
김종혁(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이상대(경기개발연구원 미래비전실장)
이지훈(경기문화재연구원 책임연구원)
정형호(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지원 | 김태용, 최서연, 김영대, 이학성, 박소현, 성형모, 김호균, 김경민, 조수진(경기문화재단 홍보마케팅팀)

이 전시는 경기도 600년(1414-2014)을 맞아 우리 역사에서 핵심역할을 담당한 경기도의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고 통일한국의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약의 계기로 삼고자 제작한 『육백년 경기도』를 바탕으로 기획되었습니다.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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