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미술관 꿈틀전시실, 상설교육전시

우리는 늘 색과 함께 살아갑니다. 푸른 하늘과 초록 들판, 붉은 노을 같은 자연의 색은 물론 교통 표지판이나 여러 가지 주의 표식처럼 사회적 약속으로 쓰이는 색, 기관이나 국가를 상징하는 색, 탄생과 죽음의 순간을 장식하는 색들은 모두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는 소중한 색입니다. 색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말을 건넵니다. 동물들이 사용하는 보호색은 상대를 위협하기도 하고, 배경으로 스며들어 존재를 감추기도 합니다. 어떤 색은 기분을 좋게 만들고, 또 어떤 색은 우울한 기분을 더 슬프게도 합니다. 그래서 색은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거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색은 작품의 의도에 따라 일반적인 의미와는 아주 다르게 이해되기도 합니다. 《컬러풀》 전시는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는 색을 예술작품을 통해 새롭게 바라보는 기회를 선사합니다. 작품 속에서 하나의 색은 그것과 연관되어 있는 사람, 역사, 사소한 기억들과 함께 끝없이 의미의 결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이 전시가 우리들의 삶 곳곳에 스며있는 색의 의미를 찾아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무채색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색을 흡수하여 깜깜해진 검정, 그와는 정 반대로 모든 색을 다 반사하고 스스로 빛나게 된 하양. 색의 시작과 끝에 자리하고 있는 이 두 가지 무채색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삶 너머의 무언가를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매끈하고 하얀 플라스틱 모듈을 반복적으로 연결시켜 만든 이기일 작가의 로봇은 무겁고 강하기보다는 부드럽고 화려한 느낌을 줍니다. 와이어에 매달려 전시실 밖을 향해 날고 있는 모습 또한 경쾌하면서도 대중적입니다. 작가는 근대성을 상징하는 힘과 권위의 무게를 경쾌한 에너지로 한순간에 무화시킵니다.

차분한 회색의 면 위에 검은 선들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고요한 호숫가의 풍경은 소란해진 마음을 금세 가라앉혀 줍니다. 잠시 비가 한 줄 다녀간 것도 같습니다. 크게 묘사하는 바 없이, 그곳에 물과 나무가 함께 있음을 몇 가지 정황만으로 알게 해주는 서정적인 풍경은 굳이 자연을 일컬어줄 색채 없이도 충분해 보입니다.

분홍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는 어머니의 몸 안에서 무언가 따뜻한 느낌을 주는 색을 경험합니다. 바로 분홍이지요. 분홍은 아기에게 비추던 온화한 빛처럼 무한한 사랑을 담고 있는 색입니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게 위아래로 꽉 막힌 벽이 분홍색으로 곱게 칠해져 있습니다. 라즈베리 케이크 위에 새하얀 가루가 뿌려져 피처럼 진한 선홍색의 본래 모습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김희정 작가는 여성스러움을 대표하는 분홍색과 순수함을 상징하는 흰 색을 이용해 사물을 실제 모습과 상관없이 예쁘고 곱게 보이도록 위장시킴으로써, 여성에게 외적으로 아름다워 보일 것을 강요하고 관념적으로 형성된 여성스러움을 주입시키는 사회적 관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노상균 작가는 물감 대신에 옷이나 가방 등의 표면을 반짝이게 장식하는 플라스틱 스팽글(시퀸)을 사용합니다. 붓질 대신 화면 위에 시퀸 알을 한 땀 한 땀 수놓아 추상화를 완성합니다. 이 작품에서 넓은 캔버스 전체를 빼곡히 메운 분홍색 시퀸 동심원들은 보는 각도에 따라 오색영롱한 광채를 발하며 마치 빠른 속도로 회전해 가운데 나 있는 조그만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킵니다.

파랑
가장 먼 곳까지 가 닿는 빛, 바로 파랑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바다는 그래서 파랗지요. 하늘을 보며 무한히 먼 곳, 한없는 자유를 떠올려본 적이 있으세요? 그 어떤 속박도 파랑 앞에서는 힘을 잃고 맙니다.

우주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그린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그 시작은 어디이며, 만물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작가 김봉태는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보았을 우주와 만물의 시작과 그 원리를 형상화합니다. 그의 그림에 드러난 생각은 동양의 오랜 사상을 조형화한 태극과 팔궤로부터 나옵니다. 누가 먼저라거나 그것에 앞선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에 만물의 시작이 있기에 작품 제목도 ‘비시원(非始原)’입니다. 그림 속의 파랑은 우주의 허공을 상징하는 파랑, 그 안에 언뜻언뜻 드러나는 다양한 색채는 새로이 생명을 얻은 만물을 뜻합니다.

지우와 콜이라는 어린이가 각자 제 방에 있는 물건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여자 아이는 분홍, 남자 아니는 파랑으로 특정화되는 성별에 따른 색채기호는 어디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을까요? 나라별로 문화가 다르고 또 누가 억지로 그 색을 선택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어디에 다 쓰이는지도 모를 만큼 많은 물건들에 둘러싸인 이 아이들을 보면서 소비사회의 색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초록
지구라는 자연의 주인공인 식물은 너나 할 것 없이 초록빛을 품고 있습니다. 무자비한 폭력이나 거친 싸움 없이도 식물은 서로의 자리를 평화롭게 나누고 스스로 균형을 찾습니다. 우리는 초록이 갖는 가장 커다란 힘이 바로 그 자연스러움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숲속에 하얗고 붉은 꽃이 흩뿌려진 숲의 출구를 꽃무늬 천이 내걸려 막아서고 있습니다. 언뜻 그 숲의 나무가 떨군 꽃처럼 보이지만, 꽃이 거기서 피었던 정황은 전혀 찾을 길이 없습니다.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자연은 어쩌면 사람들에게 실제와 환상으로 향한 길을 동시에 열어 보여주는 지도 모릅니다. 박형근의 사진은 그래서 본래 그렇지 않았던 것을 마치 이어진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그러했음직한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진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아무렇게나 자라난 잡초밭에 덩그러니 놓인 상자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현대적인 삶의 풍경은 이미 초록의 숲과 멀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루만지듯 작가는 상자 안에 식물을 넣고 그 싱그러운 기운이 필요한 곳의 사진을 붙여 ‘휴대용 풍경’ 상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마저도 안타까워 그 상자를 다시 실제의 자연 속에 잠시 놓아두고, 언제 다시 재회할지 모를 장면의 증명사진을 찍어둡니다. 우리의 생활은 과연 초록을, 자연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노랑
밝고 따뜻한 태양의 색 노랑은, 무한한 품으로 우리를 불러들여 평온함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태양 가까이에서는 무엇이든 다 타버리듯, 노랑은 우리에게 경계를 늦추지 말고 늘 깨어있으라 말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꽃이 있습니다. 계절마다 색색이 들판에 피어나는 꽃은 물론 환한 아이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웃음꽃도 더없이 아름다운 꽃이지요. 방명주 작가는 여기에다 부뚜막꽃 하나를 더 보탭니다. 매일매일 어머니가 지어주시는 밥, 배불리 가족을 먹일 생각에 마음부터 훈훈해지는 그 고소한 밥을 작가는 부뚜막에 피어나는 꽃이라 말합니다. 참 노랗고 따뜻한 꽃입니다.

자동차는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모를 길을 따라 달려갑니다. 온통 노란 배경으로 둘러싸인 그 곳은 황량한 사막 같기도 하고, 몽환적인 꿈길 같기도 하네요. 낯선 길 중간중간에 가끔 등장하는 대기업 광고가 실린 입간판을 보니, 오히려 적막한 길 한가운데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마음마저 듭니다. 어쩌면 이제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산과 들이 아니라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광고 이미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황금만능을 향한 황홀하고도 쓸쓸한 풍경입니다.

빨강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들뜰 때, 미안한 마음에 부끄러울 때, 억울하거나 화가 날 때, 사람들은 보통 얼굴이 붉어집니다. 무언가에 뜨겁게 몰입하는 순간, 한계를 넘어 지나치는 순간에 빨강은 어김없이 경고등처럼 우리를 찾아옵니다.

화폭에 빽빽하게 늘어선 온갖 종류의 자동차 형상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멀미를 일으킬 것 같습니다. 어딘가를 향해 거대한 행렬을 이루며 서서히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한 빨간 자동차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빠르게 변화하는 우리들의 삶에 대해 속도를 늦추라고 경고합니다.

해질 무렵 하늘을 따뜻하게 물들이는 붉은 노을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고 선호하는 자연 경관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김수연 작가의 <붉은 대기>에서 하늘을 뒤덮은 붉은 기운은 따뜻하기 보다는 어둡고 무겁고 차가워 보입니다. 검정색 철골 구조물이 빼곡히 군집한 도시 개발 현장에 짙게 드리운 붉은 하늘은 더 많이 가지려는 사람의 검은 욕망을 향해 경계와 경종을 울리는 사이렌처럼 느껴집니다.

여러가지 색
몇 가지 색이 한 작품 안에서 조화를 이룹니다. 때로는 부드럽게, 또 때로는 팽팽히 긴장하면서, 어떤 때는 아주 무질서한 상태로 서로 섞여 있습니다. 색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요?

이 작품은 그림일까요, 사진일까요? 언뜻 보면 사진인데, 또 다시 보면 붓자국이 보입니다. 작가는 실제로 공간에 있는 대상의 표면을 색칠하고 그것을 다시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작품 속 사물을 밝히는 빛 또한 실제 조명등이 비춰진 게 아니라 물감의 명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여 그려낸 것이지요. 화면에는 극명하게 색이 다른 두 개의 문이 있습니다. 사진과 그림의 경계에서 서서 색과 색을 경계로 놓인 두 개의 문 사이로 마음이 오갑니다.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요?

윤정원 작가는 동대문 시장의 재료상가에서 수집한 많은 재료들로 바비인형의 몸에다 색도 모양도 다양한 옷을 만들어 입히고 그것을 반짝이는 샹들리에로 제작했습니다. 언뜻 현란한 치장을 풍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매일매일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것이 바로 예술가로서 누리는 최고의 사치라고 말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색이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뭔가 즐거운 일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경기도미술관
제공: 스토리

상설교육전시 <컬러풀>
2015.9.17 – 2016.8.28.
경기도미술관 기획전시실

전시 큐레이터|황록주, 윤가혜
전시 총괄|최은주 관장, 양원모 학예실장
교육 강사|이진실, 장새미
홍보|방초아, 서지현
전시 지원| 박우찬, 박본수, 이채영, 최기영, 김윤서
오송아, 정선경, 최영순, 한혜선
행정 지원|이현경, 정승희, 이지연, 정수미
프로젝트 지원|경기문화재단 홍보마케팅팀
시설 지원|신운수, 김경욱, 주남규, 조만흥, 문종욱
도슨트|강한솔, 정지윤, 최유진
그래픽 디자인|홍은주, 김형재(유연주 도움)
공간연출시공|경기종합공사
사인물 제작설치|Probe
영상장비설치|박근수

주최|경기문화재단
주관|경기도미술관
협력|삼화페인트

Ⓒ 2015 경기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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