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수원화성

조선시대 성곽의 꽃

조선시대 성곽의 꽃, 수원화성
화성(華城)은 경기도 수원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성곽입니다. 조선왕조 제22대 임금 정조(正祖)가 자신의 부친인 장헌세자의 묘를 옮기면서 읍치소를 이전하고 주민을 이주시킬 신도시의 방어 목적으로 축성하였습니다. 전체 성곽의 길이가 5.74Km이며, 4~6m 높이의 성벽이 130㏊의 면적을 에워싸고 있는 수원화성은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극동의 군사 방호 건축물의 전형이며 군사 건축사의 역사적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수원화성은 군사, 정치, 상업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과 일본의 요새들과 구별됩니다. 중국, 일본, 유럽의 성곽을 면밀히 연구하여 포루, 공심돈 등 새로운 방어시설을 도입하고 우리의 군사적 환경과 지형에 맞게 설치하였습니다. 화성 축조에 사용된 새로운 장비와 재료의 발달은 동서양 과학기술의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수원화성은 한국 건축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도시계획, 조경과 그에 관련된 예술에 있어서도 몇 세기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거대한 성벽은 수원의 팔달산 자락를 포함하는 지역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는 규칙적이거나 대칭의 형태를 취하기보다는 땅의 지형에 따라 건축되었습니다. 성벽의 둘레에는 네 개의 문과 수문들, 관측탑, 지휘소, 다연장 화살 발사탑, 각진 탑, 비밀 문, 봉수 탑, 보루와 벙커 등 본래 48개의 방어 시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네 개의 문은 중요 지점에 설치되었습니다. 서쪽에는 화서문, 동쪽의 창룡문은 1층짜리 건물로 한국전쟁 기간 동안에도 그대로 보존되었습니다. 남쪽의 팔달문과 북쪽의 장안문은 석재를 기본으로 한 2층 목조건물로 수원 화성을 통과하는 주된 도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남쪽의 팔달문을 시작으로 성곽건축의 꽃, 수원화성 여행을 함께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팔달문
팔달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남쪽 문으로 남쪽에서 수원으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조대왕과 당대 국왕들이 현륭원을 가기 위해 이곳을 통과했다고 하는 이 문은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15일에 완공하였습니다. 팔달문은 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에서 비롯한 이름이며, 축성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이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남수문
남수문은 수원천이 화홍문에서 남쪽으로 흘러 내려와 성곽과 다시 만나는 지점에 만든 수문입니다. 수원천 하류 수량증가에 대비하여 9개의 홍예수문으로 되어 있으며, 수문 위에는 성밖 적들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포사가 세워져 있어 비상시에는 군사들이 대기하거나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남수문 복원을 위해 지난 2004년 남수문터에 대한 발굴조사에 나섰고 2012년 6월 복원을 완료하였습니다.
동남각루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건물입니다.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도 하였습니다. 동남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성 안팎의 시야가 가장 넓은 곳으로, 남수문 방면의 방어를 위하여 남공심돈과 마주보며 군사를 지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동삼치
치(雉)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입니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모두 10개의 치가 있습니다. '치'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동삼치는 동이포루와 동남각루의 중간지점에 있습니다.
동이포루
포루(舖樓)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입니다. 현재의 초소나 군사대기소와 같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이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정조 20) 7월 3일에 완공되었습니다. 평탄하고 넓은 지형에 봉돈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된 동이포루는 서북쪽의 포루와 다르게 성벽에서 많이 돌출되었으며 판문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봉돈
1796년 6월 17일 완성된 수원화성 봉돈(烽墩)은 일반적인 봉수대(烽燧臺)가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산 정상에 별도의 시설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화성 성벽에 맞물려 벽돌로 만든 것이 특징입니다. 한국의 성곽 양식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으로, 마치 예술작품처럼 정교하게 만든 수원화성의 대표시설이라 핳 수 있습니다. 평상시 남쪽 첫 번째 화두(火竇: 횃불구멍)에서 횃불이나 연기를 올려 용인 석성산과 흥천대 봉화로 신호를 보냅니다. 다른 4개의 횃불구멍은 긴급한 일이 없으면 올리지 않았다. ○ 봉화 신호 체계 봉수(烽燧)는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 전하는 군사 신호체계입니다. 총 다섯 개의 횃불구멍을 통해 상황을 전달하는데, 남쪽 첫 번째 횃불구멍부터 평상시에는 밤낮으로 봉수 1개, 적이 국경근처에 나타나면 봉수 2개, 국경선에 도달하면 봉수 3개, 국경선을 침범하면 봉수 4개, 적과 아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면 봉수 5개를 올렸습니다.
동이치
동이치는 동포루(東砲樓)와 봉돈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동포루
동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砲樓) 중 동쪽 동일치와 동이치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정조 20) 7월 16일 완공되었습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로 치성의 발전된 형태입니다. 화성의 포루는 모두 벽돌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공심돈과 같이 안을 비워 적을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공격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동일치
동일치는 동일포루에서 봉돈 쪽으로 125보(148m)의 거리에 있습니다.
동일포루
동일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796년(정조 20) 7월 10일 완공된 동일포루는 평탄하고 넓은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북쪽의 포루와 다르게 성벽에서 많이 돌출 되어 있습니다.
창룡문
창룡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동쪽 문으로 1795년(정조19) 5월 8일 공사를 시작하여 10월 17일 마쳤습니다. 창룡은 곧 청룡으로 풍수지리상 좌청룡이며 동쪽을 의미합니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반달모양으로 쌓았는데 장안문, 팔달문과는 달리 한쪽을 열어 놓았습니다.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동북노대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것으로서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 두 곳이 있습니다. 동북노대는 창룡문과 동북공심돈의 중간에 동북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반달 모양의 담장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동북공심돈
공심돈은 성곽 주위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와 같은 것으로 화성에서 처음 등장하였습니다. 화성에는 서북공심돈·남공심돈·동북공심돈이 있습니다. 동북공심돈은 1796년(정조 20) 7월 19일 완성되었으며, 커다란 둥근 원의 형태를 띄고 있는 화성 성곽내에서 가장 특징이 있는 건물 중 하나입니다. 동북공심돈 내부는 소라처럼 생긴 나선형의 벽돌 계단을 통해서 꼭대기에 오르게 되어 있어 일명 ‘소라각’이라고도 불립니다.
동장대(연무대)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머물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입니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습니다. 동장대는 1795년(정조 19) 7월 15일 공사를 시작하여 8월 25일 완공되었으며, 무예를 수련하는 공간이었기에 연무대(鍊武臺)라고도 하였습니다. 이곳의 지형은 높지 않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등성이가 솟아 있어 화성의 동쪽에서 성 안을 살펴보기에 가장 좋은 곳입니다.
동암문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입니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습니다.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있는데 암문 위에 벽돌을 깔고 커다란 둥근 담장이 설치된 구조로 1796년(정조 20) 3월 25일 완공되었습니다.
동북포루
동북포루(東北鋪樓)는 각건대(角巾臺)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방화수류정 동쪽 135보 4척쯤 되는 거리에 있습니다. 동북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로 1796년(정조 20) 5월 15일 완공되었다. 이곳의 지형은 주변보다 높아서 동암문과 동장대, 북암문과 방화수류정까지 바라볼 수 있습니다.
북암문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인 북암문은 방화수류정과 동북포루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화성에서 유일하게 벽돌로 좌우 성벽을 쌓았으며, 1796년(정조 20) 3월 27일 완공되었습니다.
동북각루(방화수류정)
보물 제1709호(2011.3.3) 방화수류정은 1794년(정조 18) 10월 19일 완공되었습니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북수문(화홍문)
화성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 위에는 북수문과 남수문 두 개의 수문이 있습니다. 북수문은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5년(정조 19) 1월 13일에 완성되었습니다. 별칭은 화홍문으로 화(華)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虹)자는 무지개를 뜻합니다. 장쾌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북동포루
북동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砲樓) 중 장안문과 화홍문 사이인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4년(정조 18) 9월 23일에 완공되었습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火砲)를 쏠 수 있도록 하고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의 발전된 형태입니다.
북동치
북동치는 북동적대 바로 옆으로 적대와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북동적대
적대는 성문을 공격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성문 좌우 옆에 있는 치성 위에 세운 시설입니다. 4대문 중 장안문과 팔달문 양쪽에만 설치하였습니다. 장안문 동쪽에 위치한 북동적대의 높이는 성벽과 같습니다. 치성 밖 아래쪽에 3개의 현안(위아래로 길게 낸 구멍)을 만들어 성 아래 가까이 다가온 적들의 동태를 살피고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장안문
장안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문으로 수원화성의 정문입니다.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5일 마쳤습니다. 백성들의 안녕을 의미하는 장안문은 우진각 지붕(지붕면이 사방으로 경사지게 되어있는 형태)으로 규모가 웅장합니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이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북서적대
적대란 성곽의 중간에 약 82.6m의 간격을 두고, 성곽보다 다소 높은 대를 마련하여 화창이나 활과 화살 등을 비치해 두거나 적군의 동태와 접근을 감시하는 곳으로, 옛날 축성법에 따른 성곽 시설물입니다. 북서적대는 장안문의 북서쪽에 있으며 1795년(정조 19년) 화성 축성과 함께 축조되었습니다.
북서포루
북서쪽에 위치한 북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砲樓) 중 하나입니다. 화서문과 장안문 사이에 위치하며 1794년(정조 18) 9월 24일 완공되었습니다. 포루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3층의 내부를 비워두고 그 안에서 화포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로, 지붕의 형태가 성안쪽은 맞배지붕 형식, 바깥쪽은 우진각 형식으로 된 것이 특징입니다.
포루(舖樓)는 성곽을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로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입니다. 북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로 1795년(정조 19) 2월 20일 완공되었다. 장안문과 화서문의 중간에 위치하여 근처의 북서포루(北西砲樓)와 함께 성벽에 다가오는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서북공심돈
보물 제1710호(2011.3.3) 서북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시설로 수원 화성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1796년(정조 20) 3월 10일 완공된 3층 건물로, 아래쪽 부분의 치성(雉城)은 석재로, 위쪽 부분의 벽체는 전돌로 쌓았습니다. 내부는 전투에 편리한 구조를 갖추었으며 계단을 통해 오르내렸습니다. 1797년(정조 21) 1월 화성을 방문한 정조는 서북공심돈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고 합니다. 독창적인 건축형태와 효과적인 재료 활용을 보여주는 서북공심돈은 역사적, 학술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화서문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입니다. 1795년(정조 19) 7월 21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6년(정조 20) 1월 8일 마쳤습니다. 화성 서쪽의 남양만과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했던 화서문은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였던 채제공(蔡濟恭)이 썼으며,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성문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서북각루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로,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도 하였습니다. 서북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하나로 숙지산이 마주보이는 자리에서 화서문 일대의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서일치
서일치는 서북각루와 서포루(西砲樓)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서이치
서이치는 서포루(西砲樓)와 서장대 사이에 있습니다.
서노대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시설입니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가 두 곳이 있습니다.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사방을 볼 수 있으며, 정팔각형 평면이며 기와 벽돌로 쌓았습니다.
서장대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입니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습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입니다. 1794년(정조 18) 8월 11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29일 완성되었습니다.
서암문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입니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문입니다.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서암문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기 전에는 암문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감춰져 있습니다. 1796년(정조 20) 6월 18일 완공되었습니다.
서포루
포루는 성곽을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입니다. 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로 1796년(정조 20) 8월 18일 완공되었으며, 서암문이 적에게 발각되어 공격받는 것에 대비하여 설치되었습니다.
서삼치
서삼치는 서포루(西舖樓)와 서남암문 사이에 있습니다.
서남암문
수원화성의 5개의 암문 중에서 유일하게 포사(舖舍)가 설치되어 있는 서남암문은 1796년(정조 20) 8월 6일 홍예가 완성되었습니다. 포사(舖舍)는 성 밖의 위험을 성 안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설로 깃발을 휘두르거나 대포를 쏘아 위급신호를 전달하였습니다.
서남각루(화양루)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비상시에는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화성의 4개 각루 중 팔달산 남쪽 능선에 설치한 용도(甬道)의 남쪽 끝에 세워진 서남각루는 1796년(정조 20) 4월 16일 공사를 시작하여 7월 20일 완성하였습니다. 편액에는 화양루(華陽樓)라고 쓰여져 있는데 ‘화’자는 화성을 뜻하고 ‘양’자는 산의 남쪽을 뜻하는 것입니다.
남포루
포루(砲樓)는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치성과 유사하게 축조하면서 내부를 공심돈과 같이 비워 그 안에 화포 등을 감추어 두었다 위와 아래, 삼면에서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시설입니다. 성곽시설물 중에서 가장 중무장된 시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성에는 벽돌을 사용하여 모두 5개의 포루(남포루, 서포루, 북서포루, 북동포루, 동포루)를 만들었는데, 서포루만 약간 작고 4개의 포루는 동일한 규격입니다. 남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砲樓) 중 팔달문과 서남암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 7월 9일 완공되었다.
남치
남치는 팔달문과 남포루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용도서치
용도서치는 용도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용도동치
용도동치는 용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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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스토리는 독립적인 제3자가 작성한 것으로 아래의 콘텐츠 제공 기관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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