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 삶과 생각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조선시대 여성들의 글과 그림

여인, 삶과 생각
조선조 여성들은 관직에 나갈 기회가 없었으므로 교육에서 소외되었고 당연히 여성의 글과 그림은 남아 있는 수가 적다. 그러나 여인들은 한글 편지와 궁중봉서 등을 통해 집 밖의 가족 친지의 안부와 당부를 물었고 일상과 생각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여성들의 글씨

자위수택은 정명공주가 80세가 되던 해(숙종8년, 1682)에 막내아들 홍만회(洪萬悔)에게 『소학(小學)』의 일부분을 써준 것이다.

순종의 비인 순정효황후 윤씨(1894~1966)의 글씨이다. '화기치상'은 음과 양이 화합하여 상서로움을 이룬다는 뜻이다.

조선조 마지막 황태자인 영왕 이은(李垠)의 아내인 이방자 여사가 쓴 글씨 '壽'이다.

조선조 마지막 황태자인 영왕 이은(李垠)의 아내인 이방자여사가 직접 시문한 그림이 있는 백자병이다.

순화궁 첩초
사절복색자장요람과 국기복색소선은 조선조 제24대 헌종(憲宗)의 후궁(後宮)인 경빈 김씨(慶嬪 金氏)가 그녀가 거처하는 순화궁(順和宮)에서 궁체(宮體)로 쓴 필첩이다. 그러므로 이 두 책을 일명 순화궁첩초(順和宮帖草)라고도 한다.

사절복색자장요람
옛 여인들은 사계절에 따라 엄격하게 옷치례를 하였다. 또한 옷 색깔뿐만 아니라 옷감과 그에 따른 몸치장 즉 수식에 있어서는 비녀, 뒤꽂이, 노리개 및 가락지에 이르기까지 계절의 감각에 따라 몸단장을 하였다. 사절복색자장요람은 정월(正月)에서 동지문안(冬至問安)에 이르기까지의 옷감'옷색과 그에 따르는 비녀, 가락지 등 장신구까지도 상세하게 궁체로서 기록한 것으로 여성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국기복색소선
국기복색소선은 조선조 이태조(李太祖)를 위시하여 역대왕과 왕비의 기일(忌日)과 왕릉(王陵)을 기록하고 국기의 의복에 대한 것을 적은 것이다. 조선조는 국초부터 억불숭유정책(抑佛崇儒政策)으로 유교를 숭상하며 조상에 대한 숭배를 으뜸으로 하였으므로 궁실의 왕비도 조상의 기일과 복색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궁중봉서
비빈(妃嬪)이 본택(本宅, 친정)에 보내는 문안편지를 궁중봉서(宮中封書)라 일컫는다. 본인이 직접 쓰기도 하고 내인이 대필하기도 한다.

서간체는 글월과 봉서(封書)의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글월은 간단한 문안편지로서 밖에서 궁중으로 올리는 것이며, 이와 반대로 궁중에서 밖으로 보내는 것은 답글월이라 한다. 또한, 봉서도 궁중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은 답봉서라 하는데, 여기에는 대전(大殿)이나 중전(中殿)의 어필(御筆)이 있고, 또 나인들의 대서(代書)도 있어 다양하며, 글월보다는 장문으로서 더욱 우아하며 정중한 점이 특징이다.

궁녀 완흥이가 윤용구의 첫째부인인 광산김씨에게 보낸 편지이다.

안부 아뢰옵고 적으신 것 보옵고 (대비마마의) 문안은 지극히 평안하십니다. 원자 아기씨께서 태평하시고 오늘 3일 되시니 매우 기뻐하시고 저의 마음도 기뻐하며 축수하여 하옵나이다.
완흥이

신정왕후 조씨 큰방 하 상궁의 편지이다.

추운 날씨가 고르지 못하니 계속하여 기운 평안하신 문안 아옵고 든든하며 반갑기 측량없으며, 날씨 추운데 대감께서 여러 날 계속하여 삐치시고(일에 시달리시고) 밤기운까지 쐬시나 모든 것이 두루 평안하신 일 하정(저의 마음)에 축수하옵고, 나리 내외분 한결같이 지내시니 크게 다행하오며, 아기씨께서 처음으로 시달리시고 나가셔서 오죽 고단하시겠습니까. 남의 속임수에 빠지지도 아니하시고 몸도 잘 간수하셨기에 문안편지 사연으로 더욱 기쁜 말씀을 어찌 다 적겠습니까. 대감께서 부탁하지 아니하시기로 보아드리지 않으리까마는 늙은 소치도 되고 공교히 팔을 삐어 몸소 다 보아드리지 못한 게 못내 (죄송하여) 일컫사오며, 도무지 늙는 게 그저 한심했습니다. 원 상궁을 기다리시고 애를 많이 쓰셨다 하기에 너무 가없었으며 나에게 알리셨더라면...

궁중 여인들이 심심풀이로 창작해서 사용한 글로 초성은 한자로 된 숫자, 종성은 한글의 모음으로 되어 있다.

문안편지
조선시대 여성의 교육에서 한글 습득과 아울러 출가전 반드시 익혀 두어야 할 것이 문안편지 쓰는 법과 글씨 연습이다. 문안편지는 효도의 관행적(慣行的) 실천의 하나로 양반가문의 부녀자들에게는 바느질 못지 않은 필수교양이었다. 문안편지는 조석문안례(朝夕問安禮)를 대신하는 방편이요, 한편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자손보전
신창맹씨가(新昌孟氏家)의 여인들의 한글 문헌을 모은것이다. 신창맹씨가 7대에 걸쳐 내외여인 21인의 글씨 33건을 정리한 것인데 내용별로 보면, 언간(諺簡) · 행장(行狀) · 조리법(調理法) · 비망록(備忘錄) · 잡기(雜技)등 선조대(宣祖代)부터 헌종(憲宗)까지 270년(1588-1861)간의 친필(親筆) 한글 문헌집(文獻集)이다.

자손보전(子孫寶傳) 중 달성서씨(외조모)가 맹지대(외손자)에게 보낸 편지이다.

손자에게 답장
달포 네 글씨도 보지 못하니 답답하고 그립더니 일천이가 오거늘 적은 것[=편지]을 보고 반가우나 성치 못하다 하였으니 염려가 그지없다. 나는 이제도 병이 완전히 나은 사람이 못 되어 지내니 괴롭다. 내가 살아 있다가 네가 아들 낳는 양을 볼 줄 어찌 알았으리. 도리어 괴이한 듯싶고 기특하고 기특하다. 너도 네 형과 함께 와서 과거도 보고 죽어 가던 할미도 보고 아들도 보고 할 겸 꼭 와서 다녀가도록 하여라. 사연 남으나 얼른 올 듯하고 (날도 저물어) 어둑하니 그치며 잘 있다가 오도록 하여라.
3월 10일 외조모

자손보전(子孫寶傳) 중 전의이씨(어머니, 계모)가 맹지대(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경의 아비에게
그렇게 떠나가니 허우룩하고 섭섭한 중 어찌들 가는지 염려하며 오늘 아침 안개 무서우니 가는 길도 그런지 염려로다. 아무쪼록 이번 과거도 부디 하고 오도록 하기를 바란다. 네 댁의 비녀를 (거기에) 간 김에 아무것이나 하여 주면 좋겠다. 요즈음 늘 간혹 이렇다 하여 문제 있으랴. 조그마한 것을 사 보내면 좋을 듯하다. 내내 그사이 무사들 하고 과거 출입을 매우 평안히들 하기 바란다.
8일

자손보전(子孫寶傳) 중 전주이씨(어머니)가 맹흠구(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들에게 답장
천득의 편에 편지 보고 반갑기 헤아릴 수 없으며, 길에 무사히 들어간 일 기특하며 너를 떨쳐 보내고 집이 다 빈 듯 허우룩하고 날포 되니 아마 그립기 간절하나 네 공부를 위하여 둘 거시니 부디 놀지 말고 착실히 하고 장난 마라. 일생 처음으로 부모를 떠나 있으니 못 잊히고 미거한 거동을 할까 염려스럽다. 현암 동네가 불안하다 하니 가지 말고 누이가 올 적 길에 주막에서 잠깐 만나서 보고 즉시 떠나도록 하여라. 보름에서 그믐 사이에 인마를 보내려 했는데 동네가 불안하니 초생에 보내라 하기에 초팔일에 보낸다마는 종도 없고 배행도 없고 어떻게 올지 염려스럽다. 연산에 올 때 다녀오도록 하여라. 일행 올 때에 부디 주인댁에 폐되지 않도록 하여라. 하루 내에 올 거시니 잠깐 보고 조금도 지체하지 말도록 하여라. 매우 급하여 사연 다 쓰지 못하니 내내 공부 착실히 하고 무양하기 바란다.
즉일 모

신사임당의 초충도
조선조 여류문인이며 서화가인 신사임당(申師任當,1504-1551)의 작품으로 전하는 초충도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 장수를 기원하는 수석(壽石)등이 같이 수놓아져 있으며 행복한 가정생활을 나타내는 나비는 그림으로 그렸다.
허난설헌의 홍학도
허난설헌(1563∼1589)은 조선중기의 여류시인으로 허균의 누나이다. 이 홍학도는 허난설헌의 작품으로 전하는 그림이다. 허난설헌의 시의 대다수가 세상을 떠나 신선세계로 들어가고 싶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림도 신선이 타고다닌다는 학을 그리고 있다.
Sookmyung Women's University Museum
제공: 스토리

총괄 │ 이진민
기획 │ 홍경아, 정혜란
진행 │ 박혜경, 김나현, 김송림, 이혜원
영상 │ 김나현
사진 │ 한정엽(한국문화재사진연구소)

참여: 모든 표현 수단
일부 스토리는 독립적인 제3자가 작성한 것으로 아래의 콘텐츠 제공 기관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Google 번역
찾아보기
주변
프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