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수 어제와 오늘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Embroidery Culture of Korea

한국의 자수 어제와 오늘
자수는 오래전부터 우리 생활 속에서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던 예술의 한 분야이다. 자수로 구현된 문양과 색은 우리의 생활환경을 미적으로 고양시키고 풍요롭게 만든다. 이 전시에 소개되는 유물 하나하나에는 그러한 한국의 자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시에서는 흉배와 후수, 궁중자수, 생활자수, 병풍자수, 근현대자수를 차례로 소개하고 한국 자수의 역사와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소망, 아름다움을 살펴보고자 한다.
흉배
흉배는 계급을 나타내는 표장으로 문관은 새 문양, 무관은 네발 동물 문양으로 장식한다. 우리나라 흉배는 고유의 흉배 체계를 세우고 중국과 다른 기법과 문양으로 우리만의 독자성을 지니고 발전하였으며, 자수 중에서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예술로 발전한다.

도식화되지 않고 회화성이 짙은 백로의 표현과 간략하고 아름다운 배경으로 보아 조선조 초기의 흉배로 추정된다. 운문의 바탕천에 구름을 금사로 징그었고 백로가 한 발을 괴석에 딛고 하늘을 보고 있다.

이 흉배는 고종의 중부(仲父) 흥완군의 것으로 구름, 쌍학, 파상문, 바위와 불로초를 짜임새있게 배열하였다. 전체를 금사징금수하고 학의 머리부분에만 홍색 씨앗수를 놓았다.

단호문 흉배는 당하관 무관이 착용하던 것이다. 하단에는 대나무 잎과 괴석을 배열하고 호표를 희화적으로 표현했다. 밑바탕 그림은 민화풍으로 전형적인 흉배 양식을 벗어난 구도를 보여준다.

불교에서 사자는 불법(佛法)과 진리를 수호하는 신비한 동물이며 권위와 위엄을 상징한다. 사자의 몸은 파란색으로 수놓았고, 동그랗게 말린 숱이 많은 꼬리가 있다. 곱슬거리는 갈기는 금사징금수로 수놓았다.

후수
후수는 국가의 큰 행사 시에 왕이 입는 면복(冕服) 또는 조신들이 입었던 조복(朝服)과 제복(祭服)에 착용해 허리 아래로 드리웠던 것이다. 후수의 모양은 학 외에도 운보문(雲寶文)과 당초문(唐草文) 그리고 만학문(卍學文)과 모란문, 매화문을 수놓았는데, 그 수법은 모든 복식의 수 중에서도 으뜸으로 칠 만큼 매우 섬세하고 색이 아름답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신하들의 품계(品階)에 따라 수의 문양과 고리를 달리 하라’는 조항이 있는데, 그 내용은 1품과 2품은 운학(雲鶴)무늬에 금고리를 하고, 3품은 독수리무늬에 은고리를, 4품은 까치무늬에 은고리를, 7-9품은 뜸부기무늬에 구리로 된 고리를 달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차츰 이 원칙을 따르지 않고 수의 문양은 학으로 통일되었다.

궁중 자수
궁중자수는 궁수(宮繡)라 하여 궁에서 제작된 자수를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궁중 안에 자수를 전문적으로 제작했던 수방이 있었으며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궁수는 대부분 조선 중기 이부부터 말기 사이에 제작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조선시대에 봉황문은 용문과 더불어 황실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즐겨 쓰였다. 특히 왕후는 봉황에 비유되기도 했고 봉황흉배를 착용하기도 하였다.

이 자수이층농은 조선조 23대 순조비(純祖妃)인 순원왕후(順元王后) 가례시 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문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을 수놓았고 문 하단에는 연꽃과 원앙을 수놓아 부부의 화목과 자녀를 많이 두기를 축원하였다.

생활 자수
생활자수는 민수(民繡)라 하며, 궁실(宮室)에서 제작한 수와 구별하여 일반 민가에서 놓은 수를 말한다. 현재 보존된 자수품은 대부분 조선 중기 이후의 것이다. 조선시대 여인들은 남편과 자녀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담긴 각종 문양들을 주머니, 노리개, 수저집, 보자기, 베갯모, 열쇠패, 안경집, 인두판, 골무, 아기굴레, 옷고름 등에 수놓았다. 조선시대에 자수 실력은 여인들이 갖춰야 하는 덕목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자수는 유교의 엄격한 규제 아래 있었던 조선시대 여인들이 예술적 심성을 표현하고 발산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남자아이의 돌전복이다. 검은색 깃에는 지그재그 무늬를 돌려가며 넣었고, 허리선에는 화문(花文)과 길상문, 학 등을 수놓았다.

굴레는 조선시대 상류층 여자어린이들이 쓰던 모자로 비단천에 장수, 건강, 행복 등을 기원하는 문양을 수놓아 장식하였다.

쌍어는 부부화합과 다산을 뜻한다. 또한 ‘어약용문(魚躍龍門, 물고기가 용문을 뛰어 오른다)‘ 고사에 따라 물고기가 용으로 변하는 모습은 과거급제를 염원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연꽃은 혼탁한 물과 진흙 속에서 살지만 더럽혀지지 않고 자신의 청정함을 항상 그대로 지니고 있어 불교의 상징적인 꽃으로 여겨진다. 또한 민간에서는 연꽃이 꽃과 열매가 동시에 생장하는 것에 빗대어 ‘빠른 시일에 아이를 낳는다’는 의미로 연꽃과 연밥을 같이 장식하기도 하였다.

연꽃의 씨를 쪼아먹는 새의 형상은 다산(多産)을 의미한다.

주머니는 계급과 남녀노소의 구분 없이 널리 사용되던 것이다. 주머니의 재료는 비단이나 무명이다. 나비, 벌, 잠자리, 매화무늬 매듭을 만들어 달았으며 부귀 또는 장생문을 주문양으로 하였다.

수본(繡本)은 수를 놓기 위하여 어떤 모양을 종이나 헝겊 등에 그려놓은 본이다. 이 수본은 장지(壯紙)에 먹선으로 자수문양을 그렸다. 꽃, 새, 십장생 등 다양한 문양과 귀주머니, 수저집의 완성된 문양 등 많은 길상문의 수본이다.

함대는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패물을 보내는 의식에 쓰이는 함을 두르는 것이다. 수부귀남(壽富貴男) 등 길상문과 초화문(草花文), 봉황 한 쌍 등 부부가 같이 부귀와 장수를 누리기를 바라는 문양을 수놓았다.

전안보는 혼례시 신랑편에서 가지고 가는 기러기를 싸는 보자기이다. 각 모서리에 달려 있는 끈의 끝에 초화문을 수놓았다.

병풍 자수
병풍은 바람을 막거나 공간을 가리기 위하여, 또는 장식용으로 방안에 치는 물건이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이념에 따라 나라에서 사치를 금하였기에 감상을 위한 화려한 자수병풍은 왕실과 양반 등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왕실의 여성들이 여흥으로 수놓거나 감상과 장식을 위해 수방에서 제작한 병풍들은 궁수의 진수를 보여준다. 병풍의 소재는 길상문이 주로 사용되어 십장생도, 화조도, 백수백복도, 종정도 등을 수놓아 장수와 복을 기원하였다. 궁 밖에서도 자수병풍을 제작하여 왕실에 헌상하거나 상류층에 보급하였다.

조선조 여류문인이며 서화가인 신사임당(申師任當,1504-1551)이 자수한 초충도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 장수를 기원하는 수석(壽石)등이 같이 수놓아져 있으며 행복한 가정생활을 나타내는 나비는 그림으로 그렸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자수는 네 폭이고 나머지 두 폭은 허백련(許百練,1891-1977)의 제찬(題讚)이다.

종정도는 고대에 사용하던 청동제 기물 중, 종과 솥의 종류를 도안화하여 다양하게 구성한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 종은 솥과 더불어 국가의 보물로서, 지배자들이 선조의 영묘(靈廟)에 제사를 지내거나 공식 연회 등을 행할 때에 빼놓을 수 없는 의식구였다. 종정도는 광복 이후에는 뜻있는 호사가들의 안방용으로 널리 보급되었으며, 자수 병풍의 소재로 빈번히 사용하였다. 이 병풍은 검은 공단 바탕에 황색으로 기물과 문자를 수놓은 품위 있는 작품이다.

안주수는 안주지방에서 생산된 수로 남자들이 수를 놓았으며 대작을 만들어 임금께 진상하였다고 한다. 병풍 구석에 패남 수사 안재민이라고 자수되어 있어 제작지와 자수장을 알려준다.

기러기는 부부의 연을 나타내면서 가을을 알리는 새, 소식을 전해주는 새로 전해진다. 회화나 자수에서 기러기와 갈대를 같이 묘사하는데 갈대의 ‘로(蘆)’는 노년의 ‘노(老)’를 뜻하고 기러기 ‘안(雁)’은 평안할 ‘안(安)’과 동음이의어로서 노년의 평화로움을 말한다.

근현대 자수
전통자수는 개화기의 시대를 맞이하여 서구 문물과 일본 자수의 영향으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여학교가 설립되면서 자수가 정식과목이 되었고 체계화된 자수교육을 통해 자수기법이 정리되고 전수되었다. 1938년 숙명여자전문학교가 설립되면서 기예과(技藝科)가 설치되어 자수교육이 실시되었다. 가전(家傳)으로 내려오던 자수는 교육체계를 갖추고 근대적 미술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자수의 전통 기법을 바탕으로 외래의 기법 등을 익히고 서양화의 회화적인 표현, 작법 등이 교육되고 장려되었다.

숙명여전에서 자수를 가르친 전명자 교수 작품으로 서양화의 회화기법을 받아들여 자수한 작품이다.

산속의 건물과 나무를 표현한 자수화이다. 산의 윗부분을 염색하고 금사로 테두리를 둘렀으며 나무는 자수를 하였다. 중앙의 건물은 염색과 자수기법을 혼용하였다.

무궁화지도는 독립운동가 남궁억 선생이 고안한 도안으로 무궁화가지로 한반도의 형태를 취하고 꽃핀 무궁화 열세 송이로 조선 13도를 표시했다. 삼베바탕에 수놓은 이 지도는 오른쪽에 조선해방 독립기념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숙명여자전문학교 때 제작된 것으로 숙명(淑明)교표가 화초문에 둘러싸여 있다.

다산을 상징하는 석류와 새를 자수하였다.

십장생 문양을 현대적인 도안과 기법으로 자수한 것으로 1958년 국전에서 특선한 작품이다.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제공: 스토리

총괄 │ 이진민
기획 │ 홍경아, 정혜란
진행 │ 박혜경, 김나현, 김송림, 이혜원
영상 │ 조혜원
사진 │ 한정엽(한국문화재사진연구소), 서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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