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여인의 향취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조선시대 여성 복식과 장신구

한양 여인의 향취
사람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필요는 의식주라 할 수 있다. 옷은 추위와 더위를 막는 기능 외에 사회적 지위의 구별, 개인적 취향의 표현, 공동체에서 예의의 표시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옷차림의 완성은 장신구의 착용이다. 여성의 장신구는 머리 모양과 착장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다양한 형태의 머리 장식품과 옷에 따라 달리 착용했던 몸의 장식품들이 있다. 이 전시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옷차림과 꾸밈의 아름다움을 소개한다.
옷차림
옛 여인들은 사계절에 따라 엄격하게 옷치례를 하였다. 또한 옷 색깔뿐만 아니라 옷감과 그에 따른 몸치장 즉 수식에 있어서는 비녀, 뒤꽂이, 노리개 및 가락지에 이르기까지 계절의 감각에 따라 몸단장을 하였다.

원삼은 조선조 중기부터 착용한 우리나라의 예복이다. 시초에는 왕비의 상복이었다가 그 후는 왕비의 소례복(小禮服)이 되고 내외명부(內外命婦)의 대례복이되기도 하였다. 평민층이 혼례복으로도 입었다. 봉황흉배가 부착되어 있다.

적의는 왕비와 왕세자빈과 같은 왕실 여성들이 착용하였던 법복(法服)으로 혼례나 제례, 국가의 연회와 같이 중요한 의식 때 입었던 복식이다. 적의는 왕실 여성의 신분에 따라 다른 색으로 갖추어 입었다.

당의는 궁중의 소례복으로, 금직으로 하여 뚜렷이 신분을 과시하였다. 조선조 말이 되면서 금직이 없어지고 대신 금박으로 변화하였다. 상궁이나 서민들은 무늬없이 다소 짙은 녹색으로 하여 신분을 뚜렷이 나타나게 하였다.

여름용 당의이다. 오월 단오 전날 왕비가 홑당의로 갈아입으면 다음날부터 궁중을 비롯하여 모두가 홑당의로 갈아입는다.

삼월 망일에는 녹색 항라당의(亢羅唐衣), 오월단오에는 초록 광사(光紗) 깨끼당의, 오월 십일에는 백광사당의(白光紗唐衣)를 입었다. - 순화궁 첩초 중 -

초록색 당의(唐衣)로, 소인용(小人用)이고, 국죽문(菊竹文)이 있으며, 숙고사이다. 하절용(夏節用)이고, 겉은 초록색이며 안은 적색(赤色)이다. 소매는 적(赤),황(黃),남(藍)색이다. 소매 끝에는 흰깃을 대었다. 적색(赤色) 종이에 금박(金箔)으로 봉(鳳)을 찍은 것을 붙였다.

활옷은 공주나 옹주의 대례복이었으나 민간에서는 혼례복으로만 착용이 허용되었다. 겉은 홍색, 안은 남색이고 부귀영화와 수명장수를 뜻한 꽃무늬와 글자를 수 놓았다.

신부가 원삼이나 활옷의 혼례복을 입고 족두리나 화관을 쓸 때 쪽진 머리의 뒤쪽에 붙여 길게 늘어뜨린 뒷댕기이다. 초화문, 길상문자 등을 금박으로 장식했다.

예부터 여인들은 앞코와 뒤꿈치에 무늬를 넣은 아름다운 비단신을 신었다.

장신구
여성의 장신구는 여인들의 머리를 장식하고 착장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다양한 형태의 머리 장식품과 옷을 장식하였던 몸 장신구들이 있다. 전해지는 조선시대의 장신구들은 재료나 제작 솜씨로 보아 대부분 왕실이나 사대부가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몸 장신구

노리개는 평상시에는 비빈(妃嬪)과 옹주(翁主) 등 황실 여성들 외에 반가의 부녀자에 한해 착용할 수 있었다. 후대에 내려오면 상류층뿐만 아니라 평민들도 애용하여 궁중의식이나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찼으며 간단한 것은 평소에도 즐겨 패용하였다고 한다.

조선조 말기 전형적인 형태의 오작노리개로 복을 상징하는 기물이 달려 있다. 다남을 기원하는 도끼, 부귀다남, 수복강녕의 길상문을 음각한 문자판과 장도, 가내 번창을 기원하는 귀이개형의 방아다리를 주체로 나비형의 띠돈과 장구매듭, 낙지발술로 구성되어 있다.

도금한 금사나 은사를 섬세하게 엮어 만든 갑 속에 향을 넣은 향갑 노리개이다.

한충향을 원통형으로 빚어 비취새의 털을 붙이고 발처럼 길게 늘인 향 노리개이다. 향과 술 사이사이에 길상문과 꽃을 수 놓은 장식과 앙증맞게 만든 술들이 장식성을 더하고 있다.

범은 벽사의 의미를 갖고 있어 조선시대에 민화나 공예품의 문양으로 많이 나타나는데 노리개에는 날카로운 범의 발톱이나 범 이가 주체로 나타난다.

범발톱 같이 만든 소뿔에 은으로 조각한 호랑이 얼굴을 붙인 단작 노리개이다.

을자형의 은장도와 투호 그리고 우각으로 만든 범발톱이 주체인 삼작노리개는 제각각 정교한 솜씨로 각종 문양을 조각하거나 시문하고 산호와 비취를 사용하여 화려하게 꾸몄다.

가락지는 일명 지환이라고도 한다. 쌍가락지는 이성지합(二姓之合)과 부부일신(夫婦一身)의 의미로 기혼녀가 끼던 것으로 남편상을 당하면 한 짝은 남편의 관 속에 한 짝은 옷고름에 찼다고 한다. 은에 칠보를 입혔으며 문양은 자녀 번창과 복을 의미하는 박쥐문과 꽃무늬이다.

귀고리는 귀걸이라고도 하는데, 귓볼에 구멍을 뚫어서 고리를 꿰는 것은 귀고리 귓바퀴에 거는 것은 귀걸이라고 말한다. 귓볼을 뚫지 않고 귀에 걸게끔 만든 귀걸이는 '신체발부는 부모님이 주신 것이니 훼손할 수가 없다'는 유교사상이 반영된 조선조의 독특한 형태이다.

머리 장신구

보패류로 만들어진 비녀는 상류계급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고 서민층은 두석(豆錫), 동, 백동, 나무, 뼈 등으로 된 비녀를 사용하였다. 크고 긴 것은 의식용으로 작고 짧은 것은 평상시에 꽂았으며 궁중에서는 계절에 맞추어 꽂는 비녀가 달랐다.

비녀 중 가장 화려한 영락잠은 왕실이나 사대부가 여인의 의식용 수식품이다.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용잠은 왕비가 꽂는 비녀였지만 일반 서민들도 혼례일 하루는 허용되었다.

떨잠은 왕실과 사대부가의 여인들이 큰 머리나 어여머리를 할 때 앞머리 중앙과 좌우 양옆에 꽂았던 것이다.

매화꽃과 대나무 문양이 조각된 비녀는 여성의 정절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옥은 잡귀를 물리친다고 믿어졌고 장신구의 기본이 되는 재료이다. 옥으로 만든 투각잠으로 왕실이나 상류층에서 여름에 사용하던 것이다.

개구리와 매미가 대나무 줄기에 마주앉은 형상을 하고 있는 백동잠으로 일반부녀자들이 꽂던 것이다.

무소뿔로 만든 흑각잠은 장례의식에 사용하던 것으로 국상이나 부모상, 남편상을 당했을 때 꽂았으며 긴 것은 제사 때, 짧은 것은 상중에 꽂았다. 비녀머리에 석류꽃과 매화, 대나무를 조각한 대형비녀는 왕실이나 상류층에서 사용하던 비녀이다.

국화꽃, 매화꽃에 날아드는 나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뒤꽂이들은 조선시대 뒤꽂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부녀자들의 머리 장식에 쓰이는 첩지를 얹은 머리로, 첩지는 장식과 형태, 재료에 따라 신분을 나타내고, 예장할 때 쓰던 화관이나 족두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왕후는 용첩지, 정경부인은 광금 개구리첩지, 정부인은 후미만을 광금한 개구리첩지를 사용하였다.

가체를 크게 땋아서 머리 위 정수리에 얹는 것으로 개화기에 유행한 반가 노부인들의 머리형이다.

Sookmyung Women's University Museum
제공: 스토리

총괄 │ 이진민
기획 │ 홍경아, 정혜란
진행 │ 박혜경, 김나현, 김송림, 이혜원
영상 │ 김나현
사진 │ 한정엽(한국문화재사진연구소), 서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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