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이어진 문화와 예술

국립해양박물관

전통의 아름다움이란 실용과 멋이 공존할 때 더 가치가 있다. 우리 전통 목공예는 자연스러운 나뭇결을 살린 인위적이지 않은 가공과 이상적인 비례로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때로는 조개 껍질로 빚은 나전 장식과 대모, 어피같은 가죽 장식을 더해 화려함으로 목공예 세계를 확장해나가기도 했다. 백색에 선을 더한 문양을 표현한 도자 공예 역시 우리 조상들의 해학과 예술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바다로부터 나온 재료, 소재들을 통해 생활 속 예술품으로 이어진 우리 전통해양문화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고자 한다.

각게수리
‘각게수리(가께수리)’는 보통 가로·세로 40~50㎝ 정도의 단층장 가구로 여닫이문 안에 여러 개의 서랍이 설치되어 있어 주로 귀중품이나 문서 등을 보관하였던 금고金庫나 약장으로 이용되었다.

박물관 소장 각게수리는 소나무로 만들어진 몸판에 어피를 부착하여 장식하고 무쇠 장석을 부착하여 만들어졌다. 각게수리를 감싸고 있는 어피는 상어의 껍질鮫皮을 가공하여 장식하였다. 어피를 가공할 때는 돌기를 그대로 살려 돌기 사이의 틈새를 옻칠로 메워 내구성을 강하게 하거나, 돌기를 갈아내어 표면을 평평하게 만들어 돌처럼 단단한 작은 흰돌기를 나타나게 한다. 이렇게 가공한 어피는 마찰에 강한 내구성과 습기에 강한 방수성이 있어 귀중한 물품을 보관하는 함函이나 가구로 제작하여 사용되었다.

각게수리의 문판에는 은혈자물쇠가 달린 원형의 앞바탕을 부착하였고,

양쪽 옆면에는 반달형 들쇠를 부착하였다.

내부는 가로형 서랍 6개와 세로형 서랍 2개로 구성되어 있다.

나전이층농 螺鈿二層籠
나전螺鈿은 소라를 뜻하는 ‘나螺’’자와 자개를 박는다라는 뜻의 ‘전鈿’자가 합쳐 ‘조개를 박다’라는 뜻으로 조개패를 이용한 옻칠 장식기법을 일컫는다. 박물관 소장의 나전이층농은 각 층이 분리되는 형태로 주로 옷가지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층농 전면(뒤판 제외)에 나전 장식을 하였으며, 농의 윗단과 아랫단은 같은 형태의 문양을 시문했다. 농의 몸통 전면에는 여백 없이 나전을 장식하였는데, 크게 3개의 주제로 구성하였다. 농의 문판 모서리 및 윗부분에 박쥐 5마리를 모조법을 사용하여 부착하였고 가운데 원형의 테두리 안에는 뇌문과 구름·여의주를 줄음질과 모조법을 사용하여 채워 넣었다. 뇌문은 번개의 모습을 형상화하며 직선으로만 구성하였다.

박쥐문은 중국에서 성행한 것으로 조선시대에 유입되어 우리 풍토에 정착, 흡수된 문양이다. 박쥐는 중국어 발음의 복蝠 [fù]자와 동일하다는 이유로 복을 상징할 때 가장 많이 쓰인다. 그뿐만 아니라 박쥐는 밤에 활동하는 동물로 밤을 지켜주는 의미와 눈을 밝게 해주는 영물이라는 의미도 있다.상상의 동물인 용은 권위의 상징이며 길상과 벽사의 개념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무늬의 소재로 사용된다. 주로 나전 문양에서 용은 구름, 여의주와 함께 구성돼 해학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전 장식에 산수문과 인물이 함께 배치하는 형태는 길상의 의미로 조선 후기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하였으며 당시 나전의 높은 기술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통영지도 나전농 統營地圖 螺鈿籠
나전으로 통영지도를 묘사하여 장식한 농이다. 이 자료는 농이 만들어진 19세기 통영 지역의 바닷가 마을 모습을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문판 전면은 통영 지역의 지도를 나전으로 장식하였다.

문판 전면은 통영 지역의 지도를 나전으로 장식하였으며 목재의 모서리를 보호하기 위해 전면의 네 귀와 상·하 4개, 좌·우 2개씩 원형의 귀장식과 감잡이를 부착하였다. 또한, 여닫이 구조의 문판에는 원형 앞바탕에 원형 경첩을 달아 통일성을 주고 있다.

농의 전면에는 통영지도를, 좌·우측면과 천판에는 산수문양을 장식하였다.

대모이층농 玳瑁二層籠
마대를 포함하여 제작된 2층 농이다. 다리 역할을 하는 마대는 낮고 안정감 있게 제작되었으며 다리의 앞뒤는 족대를 이용하여 고정하였다. 문판은 여닫이 구조로 앞바탕은 원형으로 좌우에 각각 4개씩의 원두정을 박아 고정하였고, 가운데 원형의 고리를 걸어 문 열림을 방지하였다.

각 단마다 정면에는 용과 봉황이 한 쌍을 이루고 있으며, 측면에는 용을 한 마리씩 표현하였다. 용과 봉황은 나전 및 대모거북 등껍질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는데 농의 윗단은 좌측에 봉황, 우측에 용을 배치하였다.

농의 천판에는 용이 몸을 뒤틀며 서기를 내뿜고 있는 형상을 장식하였으며 전체적인 제작방법은 농의 측면에 표현된 것과 동일하다.

산수도 山水圖
이 작품을 그린 정선(鄭歚, 1676~1759)은 조선 후기의 화가, 문신이다. 박물관 소장 산수도는 좌측 상단에 겸재라고 묵서하고 각각 정,선이라 새긴 백문인을 찍어 마무리했고, 화제는 보이지 않는다. 정선은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 한강을 따라 유람遊覽하면서 볼 수 있었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실경을 남겼는데, 이 작품 또한 선박을 이용하여 조운로인 한강을 건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쌍룡도 雙龍圖
제주도에서 제작된 민화民畵 쌍룡도이다. 청룡과 황룡이 서로의 몸을 감고 서기瑞氣를 내뿜으며 여의주와 함께 하늘로 승천하려고 하는 모습을 좌우대칭의 구성으로 담아낸 것이다. 쌍룡도는 부富와 복福을 기원하는 기복祈福의 의미를 담고 있는 뱀과 관련된 제주도의 대표적인 무속신앙인 칠성신앙七星神仰을 기반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의 하단에 물과 암석, 수초를 배치하고 쌍룡 사이로 구름을 간략하게 표현하여 용이 가지고 있는 신화적 특징을 잘 구현하고 있다. 간략하고 빠른 필선을 사용하여 승천하려는 용의 모습을 역동감있게 표현했으며, 제주 민화의 특징인 단순한 선묘법線描法에 담백한 채색을 가하였다. 색깔은 오방색인 청색과 황색, 붉은색, 흰색, 검은색만을 사용하였으며 보색대비를 가하여 평면적인 구성 속에서 독특한 공간감을 표현하고 있다. 마치 <복희여와도伏羲女媧圖>와 같은 화면 구성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백자철화운룡문항아리 白磁鐵畵雲龍文壺
백토로 상·하의 몸체를 따로 만든 후 접합한 원호圓壺 형식의 백자항아리이다. 구연은 주판알 모양으로 예리하게 각을 세워 깎아낸 형태이고, 동체는 원형이지만 상·하의 몸체를 따로 제작해 동체부 중앙에 가로로 접합 흔적이 남아 있고 좌·우가 비대칭으로 성형되어 있다.

두 마리의 용과 구름이 조합된 운룡문雲龍文으로 장식되어있다.

구연부에 표현된 23개의 철화퇴점鐵畵堆點은 국내에 알려진 유일한 예로 그 가치가 인정되어 2017년 07월 19일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되었다.

백자청화운룡문쌍항아리 白磁靑畫雲龍文雙壺
조선시대 19세기 말부터 근세 초까지 유행하였던 대호로 용문양이 화려한 한 쌍의 항아리이다. 긴 목은 직립하면서 약간 외반하며 어깨 부분은 살짝 벌어졌다가 동체가 길게 내려오는 전체적으로 긴 형태의 항아리이다. 구연에는 연판문과 구름을 둘렀고, 어깨에는 구름과 여의두문을 돌렸다. 동체에 구름 속의 용을 힘차고 용맹스럽게 표현하였다. 청화 안료를 풍부하게 사용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색감이 엷으나 용의 모습이 잘 표현되었다. 하단부에도 연판문으로 둘레를 장식하고 있다.

푸르스름한 맑은 백자유를 시유 하였고, 부분적으로 빙열이 있다.

해주항아리 海州壺
황해도 해주지방에서 생산한 청화철화백자항아리(靑畵鐵畵白磁壺)이다. 동체 전면에 코발트와 산화철 안료를 이용해 문양을 새겼다. 항아리의 형태를 살펴보면 구연부는 직립한 구연 끝을 둥글게 말아 올렸다. 동체는 상단은 넓고 하단으로 내려올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전체적인 기형이 옹기甕器와 비슷한 모습을 띤다.

문양은 기물 전면에 물고기漁文와 국화문菊花文을 각각 배치하였다.

물고기는 해주항아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양 가운데 하나로 다산의 상징, 출세의 염원을 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구연부에서 견부방향으로 파초문을 그렸다. 견부는 문양대로 구획 후 파도문을 배치하였다.

동체부에 그려진 물고기의 형태는 머리는 짧고 주둥이는 뾰족하게 벌어져 있으며, 주둥이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과 작은 물고기를 반쯤 물고 있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해주항아리에서 나타나는 물고기 표현 방식은 크게 물고기 단독으로 그린 것, 두 마리가 X자 형태로 교차하는 것, 물고기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 물고기가 군집을 이루고 다니며 헤엄치는 것, 물 속 풍경 등 물고기와 물 속 풍경을 소재로 한 다양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와 같은 표현방식은 물고기 전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해주백자 만의 독특한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어피갑 쌍룡도 魚皮甲 雙龍刀
조선 후기, 관제官製로 제작된 환도環刀이다. 칼자루와 칼집 모두 나무 재질에 어피魚皮로 처리하였고, 장식은 황동으로 마감되어 있다. 끝이 매우 예리한 칼날은 육각도 단면이고 완만한 곡률을 이루며, 칼코등은 황동으로 두 마리의 용을 투조 하였다. 호인護刃은 주재질인 황동 외에 적동赤銅판을 덧대어 이중으로 처리했다. 칼자루는 주칠로 된 어피를 감싼 후 황동으로 양 끝을 마감했고 유록색柳綠色의 끈으로 교차 감기를 했다. 칼자루의 병부혈에는 붉은색 술이 달려져 있다. 띠돈에는 귀면문과 매화문이 장식되어 있다. 칼집 패용장식은 두 마리의 도롱뇽을 이용하였고 끈목과 띠돈, 비녀장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특히 귀면과 매화로 장식된 띠돈은 고리를 통해 360도 회전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특성을 보인다. 이 칼은 칼코등에 쌍룡문이 투조되어 있고 칼자루와 칼집 끝 장식에 용문과 매화문이 새겨져 있는 점, 칼집과 칼자루 등이 어피로 장식된 점 등으로 볼 때 관에서 수준 높게 제작한 환도라 할 수 있다.

칼집의 잠금장치는 칼집의 패용장식에서 연장된 비녀 형태의 고리를 칼코등 상부에난 구멍에 꽂는 ‘비녀장 방식’이 활용되었다.

투구 冑
조선 후기에 두정갑주에 사용된 투구이다. 투구 덮개의 상부頂蓋部는 반구형의 개철蓋鐵로 위쪽은 당초문을 투조했고 아래는 대선帶線을 둘러 투구 몸체鉢部의 근철筋鐵을 고정하는 작은 못을 박았다. 투구 몸체는 위는 좁고 아래로 점차 퍼지는 형태이며 재 질은 가죽에 흑칠을 하였다. 전후·좌우에 황동의 근철을 늘어뜨렸는데 근철 중앙에 당초문을 조성했다. 투구 상부의 장식은 모두 손실되고 상모와 상모 드림판만 남아 있는데, 상모 드림판에도 당초문이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투구 품이 좋고 상부 장식이 손실되었으나 장식이 정갈하고 투구 표면의 ‘용문’, ‘봉황문’ 등의 장식기법이 정교해 의례용이거나 국왕의 하사품일 가능성이 높다.

전면부의 좌우에 용문龍紋이 있고, 후면부 좌우에는 봉황문이 조성되어 있다.

전면의 햇빛 가리개에 용 문양이 투조되어 있다.

아래 이마 가리개에는 목숨 수壽자가 새겨져 있는데, 끝마무리는 백동을 이용하여 장식하였다.

농기 農旗
농기는 두레 풍물패의 상징으로서 두레패들이 노동할 때 세워두는 깃발이다. 보통 농기에는 용(龍)이 그려지는데, 이는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물을 수신∙용신에게 기원하여 풍요와 풍작을 바라는 의미이다. 기폭 좌측에는 ‘大韓光武九年乙巳正月十五日造成 避暗里施主邑內晉宣殿必琪 座上崔奉學 公員金漢洙 畵工池士凡’ 라고 묵서해 놓았다. 묵서 내용은 “광무 9년1905 음력 1월 15일, 피암리避暗里 기폭이 만들어졌으며, 후원자는 임실 읍내의 선전관 진필기이다. 마을 대표자座上는최봉학이고 실무자公員는 김한수, 그린 이畵工은 지사범이다”라고 되어있다. 기면의 중앙에 용을 자리하고 앞발과 등, 꼬리 부분 주변으로 운문雲紋 7개를 배치하였다. 아래쪽 다리 하단부에는 잉어와 용의 머리를 한 거북 모양의 귀룡이 자리하고 있다.

기폭은 흰색 무명 재질의 천 7장을 바느질로 꿰매 만들었다. 기면의 가장자리는 4면에 검은색 테를 넣었고, 깃대 쪽 왼편을 제외한 상·하·우측면 바깥으로 삼각천지네발을 이어 붙였다.

용의 형상은 해학적인 민화풍이며 왼쪽을 향해 용 수염으로 여의보주를 감은 채, 기운차게 용트림하며 나아가는 형상이다. 용안은 사슴 뿔, 토끼 눈, 돼지 코, 잉어 비늘, 매 발톱 등과 같아 보인다. 용의 눈과 뿔, 입 주변에는 더욱 푸른색이 선명하다. 비늘에는 청·홍색을 넣었지만, 청색 더 드러나며 몸통과 꼬리 부분의 강령한 기운이 뻗치는 청룡으로 판단된다.

잉어는 얼굴 부분은 해학적이지만 몸통은 상세하고 정성스럽게 그려 넣었고,

귀룡은 발톱이 4조이며 거북 등에는 마름모 형태의 문양을 그려 넣었다.

국립해양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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