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수원국으로서 한국의 역사

한국국제협력단

2018년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불과 60년 전만해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았던 한국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한국전쟁 기간 중 남쪽 사망자만 50만 명을 넘었고, 행방불명된 사람을 합하면 그 숫자는 80만 명을 넘었습니다. 주택 61만 채가 폐허가 됐고, 760만 명의 이산가족이 생겨났습니다. 사회 기반시설은 모두 붕괴돼 재건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구체적으로 공업시설의 43%, 발전시설의 41%, 철도 312km가 파괴되었습니다.

원조 수원국으로서 한국

한국전쟁의 피해자를 돕고 한국사회를 복구시키고자 지원된 해외 원조는 총 약 127억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이 중 무상원조의 70% 정도가 1945년부터 1960년 사이에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한국의 첫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이 구호물자의 부정처분을 방지하기 위해 수기로 써내려간 문서입니다.

1953년 7월 31일 이승만 대통령이 국무총리에게 한국전쟁 후 국가 재건계획을 수립할 것을 지시한 문서입니다. 재건의 핵심 내용으로 시멘트·비료공장 건설, 발전소 신설, 철로의 확대, 선창 확대, 광업 및 조선업 확대 등 국가 기간시설의 확장과 건설 등이 강조되었습니다.

이처럼 한국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해놓았지만, 한국 국민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무너뜨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야외에서 또 전차 안에서 배움을 이어나갔습니다.

인도적 지원 및 재건활동

교과서 제조를 위한 공장이 유엔한국재건단(UNKRA)과 유네스코(UNESCO)의 지원을 받아 한국에 설립되었습니다.

이 구호원조제공표는 당시에 어떤 나라가 어떤 물품의 원조를 한국에 제공하였는지 보여줍니다. 보통 식량, 의복, 의약품과 같은 생활필수품이 주를 이루었고 대만, 코스타리카, 캄보디아, 에티오피아 등 총 36개국에서 한국을 지원하였습니다.

1950년 12월 유엔총회의 결의에 따라 설치된 유엔한국재건단(UNKRA)은 1953년부터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이후 1954년 5월 한국경제원조계획에 관한 대한민국과 국제연합재건단과의 협약을 체결, 본격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전후 경제의 복구

미국은 1953년 8월 유엔군 한국 민간구호처(CRIK) 또는 대외활동본부(FAO) 등과의 한국 원조활동 조정 및 관리를 위해 유엔군 총사령부 취하에 경제조정관실(OEC)를 설립하였습니다.

실무적으로는 한국민사처(KCAC)가 운송, 통신, 공공행정, 전력, 복지사업, 공중위생, 노동, 농촌교도, 철도와 항만 등의 업무를, 유엔한국재건단(UNKRA)은 산업, 어업, 광업, 주택, 교육 분야를 주로 담당하였습니다. 특히, 주택과 교육 분야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고자 두 단체가 긴밀한 협조체계를 유지하였습니다.

이처럼 유엔한국재건단(UNKRA)은 회원국이 각출한 7천만 달러의 기금으로 출발하였으나, 1960년까지 약 1억 2천만 달러 이상을 원조하며 한국의 경제 회복에 이바지하였습니다.

미국의 원조와 국제협조처(ICA)

미국의 원조기관은 1955년 FOA에서 국제협조처(ICA)로 변경되었습니다. ICA 원조는 광공업용품 공급과 교통업 및 광업의 발전을 위한 원자재 제공에 집중되었으며 그 규모가 매우 방대하여 1950년대 한국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1953년부터 1961년 사이에 연평균 2억 달러 이상이 도입되었으며 1957년을 기점으로 점차 축소되었습니다.

국제사회의 원조 덕분에 한국은 불가능해보였던 회복을 할 수 있었고, 나아가 단기간에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발돋움하는 쾌거를 이룩하였습니다.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제공: 스토리

전시기획 l 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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