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경기도 전통문화 - Part 1

경기문화재단

의식주, 일생의례

의식주: 음식

경기도는 수도 서울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식재료 중심의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 대체로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어 품질 좋은 쌀이 생산되고, 서해안에서 각종 해산물, 도시와 산촌에서 각종 채소류, 밭곡식이 생산되었다. 경기도의 식문화는 음식은 소박하고, 양념은 수수하고, 간은 적당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천쌀·김포쌀·강화쌀 등은 미질이 좋고 맛이 있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서해안의 소래포구를 비롯한 각 포구에는 각종 젓갈과 수산물이 유통되었다. 근래에 와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주민들의 여가생활이 활발해지면서 경기도에서는 각종 먹거리 중심의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이천 영양쌀밥, 포천 갈비, 의정부 부대찌개, 강화 순무와 생선회, 연천 꿩만두, 오이도 굴회덕밥, 행주 웅어요리 등이 개발되어 지역의 새로운 별미가 되었다. 이 밖에 칼싹두기, 올방개묵무침, 게걸무 김치 등도 지역의 독특한 음식으로 꼽힌다.

의식주: 주거공간
남양주 궁집

남양주 궁집은 남양주시 평내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중요민속자료 제130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제21대 임금 영조의 막내딸인 화길옹주 和吉翁主, 1754영조 30∼1772영조 48가 12살에 능성위 綾城尉구민화具敏和에게 시집가자, 왕이 옹주를 위해 궁궐에서 재목과 목수를 보내어 지어준 집이라고 하여 ‘궁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화길옹주가 12살에 출가하여 19살에 죽을 때까지 1765~1772 거처한 사실에 근거하면 그 건축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궁궐목수가 지은 당시 최고의 집으로서 그 학술적 가치가 큰 가옥이라 할 수 있다.

화성 정용채 가옥

화성 정용채 가옥은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중요민속자료 제 124 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말기에 지어진 살림집으로 안채·사랑채·대문채·행랑채 등 50여 칸 규모의 건물이며 전체적으로 ‘달 월月’ 자 형태를 띠고 있다.
사랑채의 남쪽 방 2칸 뒤쪽에는 안채 대청과 연결되는 복도를 두어 외견상 내외를 명확하게 구분하면서도 일상생활의 편의를 꾀하였다. 대문칸은 상량문을 통해 1887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여주 김용구 가옥

여주 김영구 가옥은 여주시 대신면 보통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중요민속자료 제 126 호로 지정되어 있다. 1753년조선 영조 29년에 건립된 사대부의 살림집으로, 마을 중앙의 약간 높은 언덕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종 때 판서를 지낸 조석우가 살던 집으로 안마당을 중심으로 ‘ㄷ’자형의 안채와 ‘-’자형 사랑채가 자리하여 전체적으로 ‘ㅁ’자형 배치를 이룬다. 특히 사랑채 앞에 누마루가 돌출되어 가옥의 품격을 더욱 높인다.
이 밖에 경기도에는 양주 백수현 가옥, 이천 어재연 장군 생가, 남양주 진접 여경구 가옥 등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일생의례
혼례

경기도의 혼례는 다른 지역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 대례는 신부의 집에서 치르며, 혼례의 순서도 유사하다. 양가에 혼담이 오가고 정혼을 한 후에, 신랑의 집에서 납채로 사주를 보낸다. 그러면 신부의 집에서 날을 받는다. 초례는 신부집에서 이루어지는데, 신랑의 행렬은 기럭아비, 함진아비, 신랑, 상객의 순서로 들어온다. 전안례는 기럭아비가 가져온 기러기를 상에 놓고 신랑이 재배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 이때 함진아비의 함을 상 옆에 놓는데 , 대체로 함 속에는 혼서지와 예물을 넣으며 , 청홍색 실·목화씨 등도 포함된다.
예식은 서로 맞절을 하는 교배례와 술잔을 주고 받는 합근례 중심으로 진행된다.
신행은 가까우면 당일에 , 멀면 하루를 머문 후 다음날에 이루어진다.
혼례의 과정은 지역이나 가정 형편에 따라 약간 차이를 보인다. 1940 년 광주 목현리의 혼례에서는 동상례에 해당하는 신랑다루기에서 마을 청년들이 신랑에 게 재꾸러미를 뒤집어씌우는 풍습도 있었다.

상례

경기도 지역의 장례를 보면, 시신을 매장할 때 관을 그대로 묻는 탈관법거관법과 관을 해체하고 시신만을 묻는 두가지 방식이 공존한다. 예부터 “ 살아 진천, 죽어 용인”이란 말이 전할 정도로 용인지역은 풍수상 뛰어난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초종의의 과정은 임종 후에 곡을 하고 시신을 칠성판 위에 눕히는 수시 收屍를 한 후, 지붕 위에 올라가 초혼 告復,복을 한다. 이후 염습을 하는데, 습은 시신을 목욕시키고 수의를 입히고 입에 쌀을 넣는 반함의 과정이다. 그리고 소렴은 시신을 네모 형태로 싸며, 대렴은 시신을 끈으로 묶어 관에 넣는 입관절차이다. 이후에 상주들이 상복을 갈아입는 성복이 이루어진다.

발인과 치장은 상여의 조립, 운구 시 중상을 피하기 위한 목적의 바가지 깨기, 발인제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이후 시신을 상여에 모시고 행상이 나가는데, 선소리꾼이 앞소리를 매기면 상두꾼들이 뒷소리를 받는다. 장지에 도착하면, 산역으로 광중을 파고, 관을 제거한 다음에 시신만을 하관한다. 좌향을 맞춘 다음에 취토하고, 봉분이 꺼지지 않도록 여러 사람이 달구소리에 맞추어 달구질을 한다.

근래에 상례는 큰 변화를 보이는데, 장례식장 중심의 장례의식에 상조회가 개입된다. 3년상은 거의 사라졌으며, 상복도 며느리, 딸 이외에는 거의 입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Gyeonggi Cultural Foundation
제공: 스토리

600년 경기도

기획 |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진행 | 경기문화재연구원 경기학연구팀
집필진 | 강진갑(경기대학교 교수)
김종혁(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이상대(경기개발연구원 미래비전실장)
이지훈(경기문화재연구원 책임연구원)
정형호(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지원 | 김태용, 최서연, 김영대, 이학성, 박소현, 성형모, 김호균, 김경민, 조수진(경기문화재단 홍보마케팅팀)

이 전시는 경기도 600년(1414-2014)을 맞아 우리 역사에서 핵심역할을 담당한 경기도의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고 통일한국의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약의 계기로 삼고자 제작한 『육백년 경기도』를 바탕으로 기획되었습니다.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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