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27. - 2016. 1. 30.

조선백자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개관 80주년 기념 소장품 특별전

조선왕실과 백자
우리나라에서 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고려 초부터로 이미 10세기경부터는 한반도 중부지역의 자기 가마에서 청자와 함께 백자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제도적인 틀이 갖추어지고 생산품의 규범이 마련되면서 본격적으로 제작이 이루어지는 것은 조선 왕실이 경기도 광주군에 사옹원(司饔院) 산하의 ‘분원(分院)’ 도자기 제작소를 설치하는 15세기 후반부터이다. 왕의 일상식과 궁중연향, 사신접대 등 격식과 절차가 수반되는 음식관련 업무가 사옹원 소관이었으므로 분원은 15세기 이래 19세기 말까지 조선의 백자 제작을 주도하였다. 유교적 예제의 실천과 위계적 질서가 근간이었던 조선왕실은 오례(五禮)로 체계화된 의례의 준행에 많은 기물(器物)들이 필요했다. 의례용 기물을 통해 왕실의 권위와 명분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고자 했기에 법식에 맞추어진 공예품을 만들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왕실은 왕대비나 임금의 환갑 등에서 백자나 의장물을 법도에 맞게 사용함 으로써 효孝를 다하고자 하였으며 백자 항아리에 술을 담고 꽃을 꽃아 만민화친(萬民和親)의 이상을 구현하려고 하였다. 특별한 왕실 행사에 소용되던 백자에 대해서는 여러 의궤류의 기록이나 도설(圖說) 등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고 있어 필요했던 백자의 수량과 종류, 조달방법 등에 대해서 알 수 있다. 

<백자철화 포도문 호>의 세부

<백자철화 운룡문 호>의 다른 면 1

<백자철화 운룡문 호>의 다른 면 2

문인문화의 유행
조선은 학자 관료인 사대부가 사회를 주도하였기에, 그들이 수용한 기명(器皿)인 백자에는 성리학적 이념을 실천했던 문인들의 가치관과 미감이 반영되어 있다. 소나무(松), 대나무(竹), 매화(梅), 난초(蘭), 국화(菊) 등의 소재들은 군자의 덕과 충절, 상서로움 등을 상징하며 백자문양으로 즐겨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문인들이 가까이하던 시, 잠언(箴言), 고전산문의 구절 등과 그들이 동경하던 이상적인 삶의 공간인 산수풍경을 백자에 장식하여 문인의 아취를 더하기도 하였다. 한편 조선후기에는 골동품과 그림, 글씨 등을 수집하고 감평하는 풍조가 문인들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하면서, 도자기를 감상과 수집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특히 문방구류에 대해서만은 사치와 호사를 용인하였던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백자 문방용품의 생산과 소비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이러한 문화는 점차 비양반 출신 중서층인 여항문인(閭巷文人)으로까지 확대되면서 백자에는 더욱 다양한 수요층의 취향이 반영되었다.

<백자청화 송하인물문 호>의 세부

이 시는 본래 이정귀李廷龜(1564~1635)의 문집인 『월사집月沙集』에 실려 있는 것으로, 원본과는 첫 구의 ‘呑’이 ‘天’으로 바뀐 부분이 다르다. 이정귀의 문집에는 해당 시에 “술 취하여 병에 쓰다[醉書甁面]”라는 제목이 있어 술자리에서 백자 주기酒器의 미덕을 기려 지은 것임을 추정해볼 수 있다.

<백자양각 재명 매죽문 선형 필세·필가>의 바닥

조선백자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은 개관 80주년을 맞이하여 소장품 특별기획전 <조선백자>를 마련했습니다. 이 전시는 양식과 편년을 넘어 시대에 부응했던 조선백자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최근 연구 성과와 경향에 비추어 다채롭게 펼쳐 보입니다. 박물관 1, 2층 전관에 걸쳐 열리는 전시에서는 국보107호 ‘백자철화 포도문 항아리’ 등 그동안 수집해 온 조선백자 600여점과 가마터 발굴 백자 자료가 함께 공개됩니다.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제공: 스토리

기획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총괄 장남원

전시진행 김주연 김태은 문기윤 박기희 송인희 신일지 이정선 장미 장효진 황이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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