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와 과장

조선시대 여성 복식의 변화와 유행
조선시대의 여성의 옷은 치마와 저고리가 기본과 중심을 이루며 부분적인 변화와 유행을 가져 왔다. 엄격한 신분사회의 구조 속에서도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위해 적극적으로 패션을 수용하였습니다.
16세기
이 시기 여성의 저고리가 허리를 덮을 정도의 길이로 품이 넓어 몸을 완전히 가린다. 저고리와 함께 입는 치마는 허리에서 끈으로 허리를 돌려 묶어 입었다.

강릉김씨 저고리
1482 - 1520

1520년대 전후의 인물인 강릉김씨(38세 사망)의 묘에서 출토된 길이가 긴 저고리이다. 이 유물은 연꽃과 길상무늬의 비단으로 겉감과 안 사이에 솜을 두어 만든 솜옷이다. 깃의 길이가 서로 같은 맞깃형으로 깃 바로 아래에 주름이 잡혀있다. 단저고리를 입은 위에 장저고리를 덧입는다

적삼
1481 - 1538

조선 중종中宗 시기에 통례원 찬의 벼슬을 지낸 정온(1481~1538)의 무덤에서 출토된 옷이다. 이 유물은 정온의 관 안에 보공품으로 넣어준 불문이 그려진 여성용 홑적삼이다. 유물은 연화무늬의 얇은 비단에 보살상, 비천상, 다라니경 등의 불교 관련 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정온의 부인이 남편의 영혼 영생을 염원하여 특별히 관에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치마
1481 - 1583

조선 중종 때 벼슬을 지낸 정온(1481~1538)의 무덤에서 출토된 옷이다. 이 유물은 정온의 관 안에 다리니경 적삼과 함께 보공품으로 넣어준 홑 치마이다. 무늬없는 얇은 비단 상부에 판으로 조각한 다라니경을 찍어 장식하여 치마를 만들었다. 부인이 남편의 영혼 영생을 염원하여 다라니적삼과 함께 특별히 관에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은진송씨 회장저고리
1509 - 1580

깃, 끝동, 옆구리를 금선단 옷감으로 꾸민 의례용 저고리이다. 은진 송씨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다. 몸판은 구름이 물결치듯한 무늬의 비단이며 깃, 끝동, 곁마기는 연화무늬 금선단으로 장식하여 만들었다. 깃 모양은 목판깃형태이며 소매가 일자형이고 옷품이 넓고 허리를 가리울 정도의 옷길이 등 전형적인 16세기 여성의 저고리 양식이다.

강릉김씨 저고리 1520

1520년대 전후의 인물인 강릉김씨(38세 사망)의 묘에서 출토된 길이가 긴 저고리이다. 이 유물은 연꽃과 길상무늬의 비단으로 겉감과 안 사이에 솜을 두어 만든 솜옷이다. 깃의 길이가 서로 같은 맞깃형으로 깃 바로 아래에 주름이 잡혀있다. 단저고리를 입은 위에 장저고리를 덧입는다.

청주한씨 스란치마
1501 - 1600

조선시대 중종 임금의 둘째딸 의혜공주의 손녀인 청주한씨의 묘에서 출토된 의례용 치마이다. 이 유물은 연꽃넝쿨 무늬 바탕에 연금사 스란단이 있는 긴치마로 의례용으로 입었다. 치마 중간 부위에 28cm 너비로 동자포도무늬를 금실로 짠 스란단을 두 줄로 대어 주었다. 치마를 입을 때 앞을 걷어 올려 허리끈으로 고정하여 입으면, 앞길이는 신발이 보일정도가 되고 뒤는 길게 늘어진다.

강릉김씨 묘 출토 신발
1482 - 1520

조선 중기 사대부가 여성들이 실생활에서 신었던 신이다. 시신의 발 옆에 놓여있던 것으로 강릉김씨가 생존 당시 신었던 신발로 추정된다. 유물은 조선 말기에 여성들이 즐겨 신은 운혜와  비슷한 형태이다. 겉면은 무늬없는 비단이고 안은 가죽으로 만들었다. 앞축과 뒷축을 봉술, 금실 등으로 장식하여 멋을 더하였다.

17세기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여성의 의복에도 실용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16세기에 비해 품이 작고 길이가 짧아져 몸에 맞는 저고리와 여전히 허리 둘러 입는 치마를 입었다.

원삼, 혜평윤씨
1581-1633

양반가 여인들이 큰 잔치에 입었던 대례복이다. 해평윤씨 여인이 수의壽衣를 입을 때 가장 겉에 입었다. 앞이 짧고 뒷길이가 길어 입었을 때 뒤가 끌리게된다. 연화무늬가 있는 얇은 비단[蓮花紋紗]으로 만든 홑 옷이다. 깃이 좌우 맞깃 형태이며 넓은 소매 끝에 2줄 색동과 한삼이 달려 있다.

저고리
1581-1633

17세기 무관인 신경유의 무덤에서 출토된 여자저고리이다. 비상하는 봉황 무늬가 있는 비단으로 만든 겹옷이다. 깃 모양은 17세기의 대표적인 목판 당코깃 형태이다. 겨드랑 아래에 무를 달아주서 옆선이 곡선형이고 도련이 옆으로 넓게 퍼져있어 부풀려진 치마를 입기에 적합한 구조이다.

당의
광해군비, 1700년대

저고리 보다 길고 옆자락이 트여 있는 예복용 상의. 조선 15대 광해군의 비[光海君妃] 유씨(柳氏)가 입었던 당의이다. 유물은 봉황무늬 초록색 비단으로 만든 것으로 동정 안쪽에 "丙子生王妃柳氏顧命衣"라는 명문이 적혀있어 광해군비의 것임이 확인되었다. 깃 모양이 전형적인 17세기의 목판당코깃형태이며 저고리 길이가 길고 옆이 트여있으며 좁고 짧은 고름이 달려 있다. 색과 형태 등이 완벽하게 남아 있다.

당의
해평윤씨, 1660-1701

양반가 여인들이 예복용으로 즐겨 입은 상의上衣이다. 치마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덧 입는다. 몸판은 연화무늬가 있는 비단[蓮花紋緞]이고 화문능花紋綾 비단으로 만들었다. 깃 모양이 목판 당코깃 형태이며 앞 시대에 비하여 품이 줄어들고 옆선이 곡선화 되어 아래까지 트여있다.

너울
순흥안씨, 1551-1609

상류층 여성이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는 쓰개. 너울은 단독으로 사용되지 않고 너울의 틀에 해당하는 입모笠帽와 함께 사용하며 입모를 고정하는 드림과 매듭으로 장식한다.

너울 쓴 여인
조선시대 멋과 유행 중에서

장옷
순흥안씨, 1551-1609

조선시대 여성들의 외출복으로 순흥안씨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다. 깃 모양이 사각형태이고 깃, 겨드랑이, 끝동을 몸판과 다른 색상을 사용하여 멋을 내었다. 옆선에 큰 무를 이어 붙여서 밑자락을 넓게 하였기 때문에 부풀려진 치마를 입기에 적합한 구조이다.

수저고리
해평윤씨, 1660-1701

갖은 무늬를 수繡 놓은 의례용 저고리로 해평윤씨(1660-1701)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몸판을 문창살과 꽃무늬가 있는 비단格子花紋緞으로 만들고, 겨드랑이 부분과 소매 끝을 자수로 장식하였다. 자수무늬는 만개한 매화와 가지 위에 앉아 있는 새 한 마리, 벌과 나비 등의 곤충이 있으며 서각犀角, 호리병 등의 보배무늬寶紋을 곁들여 수 놓았다.

치마
해평윤씨, 1660-1701

저고리와 함께 입는 가장 기본적인 여성의 옷이다. 해평윤씨의 무덤에서 출토된 치마로 길이가 땅에 끌릴 정도로 긴 예복용치마이다. 연화문사로 된 아름다운 치마이다. 이시기의 저고리는 길이가 허리선을 가릴 정도여서 치마를 입을 때 허리춤에서 끈을 둘러 매어 입었다.

바지
해평윤씨, 1660-1701

여셩이 치마 속에 입는 하의용 속옷으로 해평윤씨의 묘에서 출토되었다. 겉감은 화문단이고 안감은 명주이며 허리말기는 원형의 학 무늬로 만든 겹 옷이다. 바지부리가 치마 처럼 넓고 밑이 막혀 있으며 바지 하단에 12.5㎝ 너비의 스란단이 달린 것이 특징이다.

18세기
이전 시기에 비해 저고리 길이와 품, 그리고 소매가 짧아지고 좁아진다. 저고리의 길이를 따라 치마는 허리선 보다 위쪽으로 올라가고 치마허리가 드러나 여성의 몸매가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회장저고리
1700년대

깃, 끝동, 고름, 겨드랑[곁마기] 등에 길의 색과 다른 색의 천을 대어 만든 여자 저고리. 평소에 예의를 갖추기 위해 입었다. 유물은 두 마리의 용이 원안에 들어있는 무늬의 비단으로 만들었다. 앞 시대에 비하여 깃은 더욱 굴려지고 저고리 길이와 품, 소매가 짧아지고 좁아지며 직선화 되어 간다. 치마와 함께 입으면 치마의 허리선이 드러난다.

저고리
경주이씨, 1684-1753

치마와 함께 입는 여자의 가장 기본 옷이다. 유물은 꽃과 보배 무니가 들어있는 비단으로 만든것으로 옷에 특별히 장식이 없어 평상시에 입었다. 저고리 길이와 품, 소매가 좁고 일자형태이며 치마와 함께 입으면 치마의 허리선이 드러난다.

장옷
경주이씨, 1684-1753

치마 저고리를 입고 덧입는 여성의 외출복이다. 유물은 무늬있는 얇은 비단을 겹 옷으로 만들고 줄줄이 좁게 누벼준 누비 옷이다. 장옷은 시대가 지나도 형태는 변화가 없지만 유물은 앞 시대에 비해 품이 좁아지고 겨드랑이에 장식한 삼각무도 입으면 모양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 매우 작게 변하였다.

장옷을 입은 조선 여인
조선시대 멋과 유행 중에서

저고리
파평윤씨, 1735-1754

겉감과 안감사이에 솜을 두어 줄줄이 누벼준 솜 누비옷. 방한용 저고리이다. 깃모양이 버선코 모양으로 곡져 있는 목판당코깃형태이며 소매는 일자형으로 팔에 밀착될 정도 매우 좁은 것이 특징이다. 치마는 허리선에서 조금 위로 올려 입었으며 저고리를 입으면 치마의 허리 말기가 조금 겉으로 드러나 보인다.

배자
파평윤씨, 1735-1754

여성이 저고리 위에 덧입었던 소매 없는 방한용 솜 옷이다. 소매가 없는 조끼 형태이며, 깃머리 끝이 네모진 모양이다. 앞중심에 단추를 부착하여 여밈하였으며 앞판과 뒷판 사이가 넓은 띠로 연결되어 있다.

19세기
여자의 저고리는 여러 부분이 곡선으로 처리되어 더욱 여성스러움이 강조되었다. 저고리의 길이는 더욱 짧아지고 품과 소매가 좁아졌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가장 짧은 저고리가 입혀졌다. 치마는 허리 위쪽으로 좀 더 올라가 허리말기가 드러나고 길이는 좀 더 길어진다.

저고리
덕온공주, 1822-1844

조선 23대 순조 임금의 막내딸 덕온공주(德溫公主:1822~1844, )가 어렸을 때 입은 의례용 저고리. 저고리를 세 벌 갖추어 성장 차림할 때 가장 위에 입은 저고리의 하나이다. 유물은 겉감은 도류사(桃柳紗) 얇은 비단이고 안감은 다듬이한 모시를 이용하여 만든 겹옷이다. 겉감 전체에 수(壽)․복(福) 자 금박이 찍혀있으며 소매 끝에 흰색 거들지를 달았다.

저고리와 마고자, 그리고 배자-복원품

덕온공주 녹색당의

덕온공주가 입었던 하절기용 홑당의이다. 두록색(豆綠色) 도류사(桃榴紗)로 만들었으며 옷 전 체에 ‘수복(壽福)’ 무늬 금박이 찍혀 있다.

장옷
덕온공주, 1822-1844

조선 23대 순조 임금의 막내딸인 덕온공주가 입었던 외출복 겸용 쓰개. 외출복으로 입었던 장옷이 18세기 중엽 이후 쓰개용과 병행하여 사용되었다. 유물은 겉감은 초록색 평견직물이고 안감은 옅은 분홍색을 띠는 다듬질한 모시를 사용하였다.. 깃은 자주색 목판깃이 대칭으로 달려 있으며, 일자형 소매의 끝에는 흰색 거들지가 달려있으어 접어서 착용하였다.

예복 치마
1800년대

평치마 보다 길어 입었을 때 바닥면에 길게 끌리는 의례용 치마이다. 겉감은 남색 구름무늬의 얇은 비단雲紋熟紗)이고 안감은 곱게 도련한 명주를 사용한 겹 치마이다. 치마의 선단과 밑단 안쪽에는 6㎝ 너비로 겉감과 동일한 운문사를 대었다.

원삼
1800년대

원삼은 왕비 이하 내·외명부들이 입었던 대례복으로 민간에 혼례복으로 특별히 허용되었던 예복이다. 이 유물은 궁중의 상궁이 예복으로 입었던 옷이다. 검정빛에 가까운 짙은 자색 운문사로 만든 홑옷이다.

원삼
1900년대

개성지방에서 유행한 여성의 혼례복이다. 목단꽃 무늬의 비단을 사용하여 만든 홑 원삼이다. 깃모양이 배자깃형이며 고대 부분은 활옷 깃 처럼 덧붙여 주었다. 선단이 겉면에 둘러진 것이 특징으로 수구와 앞뒤 도련, 옆트임 등에 홍색(紅色)선이 둘러져 있으며,한삼이 없이 소매끝에서 수구까지 둥굴려진 형태이다.

활옷-앞
1900년대

반가에서 혼례용으로 입은 옷이다. 겉감은 홍색 공단(貢緞)에 다양한 색사(色絲)로 수를 놓았으며, 안감은 청색의 영초(英綃)로 만들었다. 앞길이가 짧고 뒷길이가 길고 옆선이 트여 있다. 양어깨에는 백복지원(百福之源)과 이성지합(二姓之合)등의 문자문(文子紋)이 수놓아져 있으며 흰색 한삼에는 봉황, 모란, 뒷길에는 수파문, 괴석, 백로, 연꽃 등을 화려하게 수 놓아 장식하였다.

활옷-앞
1900년대

활옷의 뒷모습으로 앞보다 뒤가 길다. 소매는 청색, 황색, 적색의 공단 색동과 흰색의 한삼으로 장식하였다. 길조인 봉황과 모란 문양이 자수되어 있다.

배자

타이트한 저고리 위에 덧입은 옷으로, 20세기에 유행한 여성복식이다.

두루마기
석주선, 1900년대

고 석주선 박사가 단국대학교 석수선기념 민속 박물관 개막식에 입었던 두루마기. 원형무늬가 있는 평견직물로 만든 겹 옷이다. 같은 무늬로 만든 저고리와 치마가 한벌로 남아있다.

저고리
1900년대

신부가 혼례 때에 입었던 저고리로 녹색의 큰꽃무늬 비단으로 만든 겹 옷이다. 깃, 고름, 끝동을 홍색 공단으로 만들고 은박으로 장식하였다. 소매는 심하게 둥굴려진 붕어배래 모양이다. 도련의 곡선이 심화되었다.

저고리와 치마
1900-1970

여성의 기본적인 전통의복인 저고리와 치마로 1900년대 신부가 입었던 옷이다. 가슴을 덮는 저고리 길이와 둥근 소매가 특징적이다

갓저고리
1900-1935

겨울철에 입는 방한용 털 저고리. 겉감은 짙은 남색 소화무늬 비단으로 하고 광목을 심감으로 하여 저고리를 만들고 안감 대신에 양털을 대어주었다.도련, 섶선, 수구 등에도 양털로 선을 둘렀다. 저고리 위에 덧입으므로 길이와 옷품이 넉넉한 편이다.

두루마기
쥬리아여사, 1900년대

여자 어린이의 겨울용 외출복으로 치마 저고리 위에 걸친 겉옷이다. 자주색과 녹색실을 이용하여 무늬를 제직한 양색고단(兩色庫緞)을 겉감으로 하고 진분홍색 명주로 안을 받친 고급스러운 옷으로 사이에 솜을 두어 만들었다.

제공: 스토리

이 전시는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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