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치의학100주년 10대인물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연세 치의학 100년의 역사는 근현대 한국 치의학의 역사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이며 기독교 종합대학교인 연세대학교의 역사이다. 연세 치의학 100주년을 맞이하여 이 땅에 선교와 치과의료와 치의학교육의 씨앗을 뿌리고,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으로 열매 맺도록 헌신하신 열 분의 스승을 기억하고자 한다.

에비슨(Oliver R. Avison)
캐나다 출신의 의료선교사로서 1892년부터 1935년까지 제중원 원장,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 연희전문학교 교장으로 활동하면서 연세대학교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치과의료선교사 쉐플리를 초빙하여 Severance Union Medical College에 한국 최초의 치과학교실을 개설(1915)하였다. 치과의학교의 설립 청원서(1921)를 제출하고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조선총독부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쉐플리(William J. Scheifley)
한국 최초의 미국 북장로회에서 조직적으로 파견된 치과의료선교사로서 세브란스연합의학교 치과학교실의 초대 주임교수로 부임하여 1915년부터 1920년까지 치과과장으로 활동하였다. 미국의 현대적인 치의학 교육과 진료 제도를 도입하여 치과의사를 양성하고자 노력하였다. 의학전문학교 졸업생을 조수로 선발하여 2년 동안 교육을 시키고 졸업장을 수여하였으나 조선총독부에서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부츠(J. L. Boots)
치과의료선교사로서 쉐플리의 후임으로 세브란스 병원 치과과장으로 부임하여 1921년부터 1939년까지 활동하였다. 에비슨과 함께 치과의학교 설립 청원서를 제출하였으나 일제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미국 치과의사협회의 지원을 받아 진료실, 강의실, 도서실 등을 갖춘 3층 건물의 치과센터를 건립하였다. 정보라, 이유경 등의 미국 유학을 지원하여 치과계 지도자를 양성하였다.
맥안리스(J. A. McAnlis)
미국 노스웨스턴 치과대학을 졸업한 치과의료선교사로서 1921년부터 1941년까지 세브란스 병원 치과에서 활동하였다. 부츠와 함께 근무하면서 주로 치과보존과와 치과보철과 진료를 담당하였으며, 치과의사와 치과기공사 교육에 힘썼다. 부츠의 후임으로 치과과장에 취임하여 1939년부터 1940년까지 봉사하였다. 
안종서
세브란스 병원 치과의 첫 수련의로 1925년에 들어와 1931년까지 근무하였다. 해방 이후 결성된 조선치과의사회의 초대 회장으로 이후 4회에 걸쳐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1945-1946, 1950-1954, 1958-1960, 1962-1963). 대한치과의사협회장 자격으로 치과대학 설립을 위하여 연세대학교 재단에 건의서(1963)를 제출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이유경
세브란스 병원 치과에 1929년에 들어와 부츠의 조수와 부수를 거쳐 1935년에 한국인 최초로 미국 유학을 하여 피츠버그 치과대학을 졸업하여 미국 치과의사 학위를 받았다. 세브란스 병원 치과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과장으로 취임하여 1940년부터 1944년까지 근무하였다.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장(1964-1968)으로 활동하였다.
정보라
세브란스 병원 치과에 1932년에 들어와 부츠의 조수로서 근무하다가 1937년에 미국 노스웨스턴 치과대학에 유학하여 미국 치과의사 학위를 받은 후 6개월간 총의치 과정을 이수하고 돌아 왔다. 미군정시기에 보건후생부 고문,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보철부 교수를 역임하고, 도미하였다. 1959년 FDI(세계치과의사연맹) 총회에 대한치과의사협회 수석대표로 참여하여 회원국 가입을 성사시켰다. 노스웨스턴 치과대학 교수, 미국 보철학회장, 시카고 한인 치과의사회장, 시카고 친선영사 등을 역임하였다.
박용덕
해방 후 세브란스 의과대학(1947)으로 승격한 치과학교실의 첫 주임교수로서 1934년에 수련의로 들어와 일본에 유학하여 동경치과대학에서 구강외과를 전공하였으며 1944년부터 1956년까지 치과과장을 맡았다. 경성치과대학 병원장으로 초빙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남아서 세브란스 병원 치과의 발전과 우수한 임상의의 양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설립 후 초대 학장으로 봉사하였다.
이동섭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과대학의 통합으로 출범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치과학 교실의 초대 주임교수로서 1943년에 세브란스 병원 치과에 들어와 1963년까지 재직하였다. 한국 전쟁 기간 동안 세브란스 병원 치과를 지켰으며, 전문과목별로 교수를 충원하고, 수련의 제도를 확립하여 치과대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치과대학 설립 건의서(1963)를 제출하고, 재단의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크게 공헌하였다.
메키너스(John McInnes)
세브란스 병원 치과의 전후 복구를 위해 1956년에 미국 북장로교가 파송한 치과의료선교사로서 미네소타 치과대학에서 구강외과를 전공하였다.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과대학의 통합(1957) 직후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창설에 관한 보고서’를 썼고, 미국 치과의사협회지(1958)에 ‘한국의 치과의료에 대한 논평’을 기고하였다. 이밖에 치과대학 설립 준비 과정에서 많은 공헌을 하였다.
제공: 스토리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연세치의학100주년 기념준비위원회
편찬분과 위원회
위원장 : 김광만
위 원 : 조영식, 유형석, 이주연, 이민형, 신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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