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진화, 그 위대한 행진 

전곡선사박물관

약 6~7백만 년 전의 어느 때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진화를 시작하였다. 그들은 침팬지 ,고릴라의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시간을 나무위에서 보냈지만 때로는 땅위에서 쉽게 두발로 걸을 수 있었다. 두발로 서서 똑바로 걷는 특징은 과학자들이 인간을 정의하는데 가장 중요한 증거로 사용되곤 한다. 최초의 인류는 아프리카의 넓은 대지를 터전으로 위대한 진화의 행진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진화의 증거들을 찾는 일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고고학자, 인류학자, 고생물학자들은 화석, 유물, DNA 분석 같은 자료들에 의존하여 인류의 진화과정에 대한 매우 복잡하고도 어려운 퍼즐맞추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도 종종 어떤 종들이 언제 어디서 살았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불일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인간가족이 위대한 진화의 행진을 하였다는 것은 매우 명확하다. 과거는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어 내었다. 미래도 우리를 진화의 여정으로 인도할 것이다. 전곡선사박물관의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여러분은 수백만년 인류진화의 역사속으로 인류의 조상들과 함께 걷게 될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최초의 인류 : 동아프리카의 사바나 약 1000 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는 강력한 화산폭발이 자주 일어나 지반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고 대륙은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를 동서로 나누는 거대한 계곡인 리프트밸리(Rift valley)도 이때의 지각변동으로 생긴 것이다. 지각변동과 함께 기후도 계속해서 변했다. 바람의 상태가 바뀌고 더웠다 춥기를 반복하다가 비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마침내 아프리카대륙이 숲으로 둘러싸인 열대 우림 기후에서 서서히 나무가 듬성듬성한 초원지대인 사바나 환경으로 바뀌게 되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조상은 원숭이 처럼 열대우림의 나무 위에서 풍부한 먹이를 먹으며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후변동으로 삶의 터전인 숲이 초원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먹이가 부족해졌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바나 환경에 적응하여야만 하였다. 땅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들은 나무 위에서 내려와 두 발로 땅을 딛고 일어서게 되었다. 나무위에서 내려온 이들 사바나의 최초인류들은 식물을 채집하거나 곤충을 잡아먹었으며 가끔은 포식동물이 먹다남긴 고기를 주워먹기도 하였다. 하지만 너무나도 연약한 사바나의 최초인류들은 사자와 같은 육식동물의 먹잇감이 되기도 하였다. 사바나의 최초인류 이들은 숲속을 빠져나와 새롭게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길을 택했고 두발로 걸으면서 자유롭게된 손을 음식을 운반하고 자손을 돌보는데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중앙아프리카 차드 북부의 두라브사막에서 발견된 투마이는 600만 ~ 700만 년 전의 화석으로 알려지고 있어,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초기 인류화석 중의 하나이다. 2001년 프랑스 포와티에대학의 미셸 브뤼네 박사 연구팀에 의해 거의 완벽한 두개골과 턱뼈 일부, 치아 등이 발견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투마이는 현지어로 ‘삶의 희망’이란 뜻이며 학술명칭은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Sahelanthropus tchadensis)이다. 투마이의 침팬지보다도 약간 더 작은 뇌, 경사진 얼굴, 두드러진 눈두덩은 유인원과 같은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작은 송곳니와 두개골 중앙부에 있는 대후두공 (척추뼈가 두개골과 연결되는 부분으로 그 위치가 직립보행의 해부학적 증거이다)이 주요한 특징이다. 대부분의 화석인류들이 발견된 동아프리카의 리프트밸리로부터 2,500km나 서쪽으로 떨어진 내륙인 차드의 사막에서 발견된 이 화석은 초기의 고인류가 생각보다 더 넓은 지역에 퍼져 살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들은 나뭇잎, 과일, 씨앗, 뿌리식물과 작은 곤충들을 잡아먹으며 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두개골 아랫부분의 다른 골격들이 발견되지 않아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침팬지와 비슷한 크기였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학자들은 600만∼800만 년 전에 고릴라와 침팬지 등 다른 유인원과 인간이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투마이는 이 시기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일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여러 가지 풀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지만 인류가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살았던곳 : 차드 공화국
살았던때 : 600만년 ~ 700만년전
발견된곳 : 토로스 메날라
종명 : 사헬란트로프스 차덴시스
별명 : 투마이 (현지어로 '삶의 희망'이란 뜻)
두개골 용량 : 320 ~ 380cc
주요특징 : 작은송곳니, 두개골 중앙부에 있는 대후두공(척추뼈가 두개골과 연결되는 부분으로 그 위치가 직립보행의 해부학적 증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에 속하는 루시는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인류(호미니드)들 중에 가장 유명하고 친숙한 이름이다. 1974년 아프리카 에디오피아 북부의 하다르 지방의 아파르 저지에서 도날드 요한슨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머리뼈를 포함하여 전체 골격의 46%에 달하는 양이 발견되어 신체구조를 거의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복원되었다. 키는 약 107cm, 몸무게는 약 28kg 인 여자로 밝혀졌다. 루시는 적어도 280만 년 전에 동아프리카의 나무 위에서 내려와 네발이 아닌 두발로 사바나의 수풀속을 걸어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넓고 짧은 루시의 골반뼈와 안쪽으로 오므려진 넓적다리뼈는 루시가 현대인과 같이 두발로 일어섰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원뿔통같이 생긴 갈비뼈와 짧은 다리 그리고 작은 뇌는 유인원과 유사한 특징을 보여주며, 앞으로 툭 튀어나온 얼굴 역시 인간보다는 유인원과 비슷하다. 나무타기에 유리한 긴 손가락과 발가락으로 보아 이들이 비록 똑바로 일어서서 두발로 걸어 다니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나무 위에서 보내며 아직은 유인원과 비슷한 생활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루시라는 이름은 이 화석의 발견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흘러나왔던 비틀즈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에티오피아 현지어로 “당신은 아름답다”라는 뜻을 가진“Dinenesh”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루시는 수백만 년 전에 인류의 조상들이 이미 두발로 일어서서 걷기 시작함으로써 위대한 진화의 행진을 시작하였다는 것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화석이라고 할 수 있다.

살았던곳 : 에티오피아
살았던때 : 약 280만년 전
발견된곳 : 에티오피아 하다르의 아와시강 중류
종명 :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별명 : 루시, 발견 축하파티에서 흘러나오던 비틀즈의 노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한 푸른하늘의 루시’에서 유래
두개골 용량 : 약 450cc
주요특징 : 거의 완전하게 복원되는 골격, 송곳니틈이 남아 있음

1992년 루시가 발견되었던 곳인 에티오피아의 하다르 인근에서 요엘 락에 의해 루시와 같은 종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머리뼈 화석이 발견되었다. 약 60조각으로 부서져서 발견된 머리뼈 화석을 세밀하게 접합한 결과 머리뼈의 70%까지 복원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이 두개골의 용량이 약 500cc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대는 약 300 만 년 전으로 측정되었다. 이전에 발견되어 여성으로 확인된 루시의 머리뼈보다는 상당히 컸기 때문에 아파렌시스의 남성 머리뼈로 추정되었다. 머리뼈 크기의 차이를 통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몸집 크기의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루시앙은 루시에 남자임을 뜻하는 프랑스어 접미사 'en'을 붙여 남성임을 나타낸 별명이다. 고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신체크기가 서로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신체크기의 차이가 개별개체 간의 차이인지 정말로 성에 의한 차이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끝나지 않고 있다.

살았던곳 : 에티오피아
살았던때 : 약 300만년전
발견된곳 : 에티오피아 하다르의 아와시강 중류
종명 :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별명 : 루시앙 (Lucien, '루시의 남자친구'라는 뜻)
두개골 용량 : 약 500cc
주요특징 : 초기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성별에 따라 신체크기의 차이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해준 화석인류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는 1959년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계곡에서 유명한 고생물학자 가문인 리키가의 메리 리키에 의해 발견되었다. 발견 초기에는 “진잔트로푸스 보이세이”라고 이름 붙여졌고, 최근까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파란트로푸스의 해부학적 차이가 인정되면서 최근에는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로 불린다. 튼튼하게 발달한 턱 근육으로 인해 단단한 음식도 잘 씹어먹었을 것이라 하여‘호두까기 인간’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는 250만 년~120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 흩어져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몸무게는 약 45kg, 키는 1m를 좀 넘었고, 뇌용량은 약 530cc 정도였다.

살았던곳 : 탄자니아
살았던때 : 약 300만년 전
발견된곳 : 탄자니아 올두바이 고르지 유적
종명 :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별명 : 호두까는 사람, 강한 턱을 가진 특성을 표현하는 별명
두개골 용량 : 약 530cc
주요특징 : 넓적한 얼굴과 단단한 어금니, 튀어나온 머리능선, 애초에는 진잔트로푸스로 명명됨

이마가 나오면서 두뇌가 커지고 석기를 제작하기 시작하여 인류의 진화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던 약 250만년 전 초기 호모속의 화석인류이다. 1959년 루이스 리키와 메리 리키에 의해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올두바이 협곡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이전에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다른 오래된 화석인류들보다는 뇌용량이 커지고 얼굴과 어금니의 크기는 작아지는 등 사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긴팔과 앞으로 툭 튀어나온 얼굴에는 아직도 유인원과 비슷한 모습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자료들을 통해 호모 하빌리스의 키는 평균 약 130 ~ 150cm이며 두개골용량은 600~750cc 였음을 알 수 있다.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는 ‘손재주 좋은 사람’,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손쓴사람’으로 불리기도 한다. 팔과 다리뼈 화석을 보면 이들이 두 발로 걸어 다녔으며 정확한 손놀림으로 능숙하게 도구를 다루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최초의 석기제작자로 알려져 있다. 석기를 사용해 직접 동물을 사냥하여 가죽과 뼈를 발라내고 뼈를 깨트려 골수를 빼먹기 시작하면서 동물성 음식의 섭취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한 단계이다. 이들의 두뇌용적은 획기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여 650 cc를 넘어서게 되었으며 동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 일대에 150만년 전 까지 살고 있었다. 호모 하빌리스가 후대의 호모속과는 진화상 어떤 관련이 있는지 여런 의견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호모속에 속하는 종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에렉투스 사이 어느 시기에 출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살았던곳 : 동아프리카, 남아프리카
살았던때 : 약 180만 년 전
발견된곳 : 탄자니아 올두바이 고르지 유적
종명 : 호모 하빌리스
별명 : 손쓴사람,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
두개골 용량 : 약 600 ~ 750cc 

호모 루돌펜시스는 1986년 러시아 학자 알렉세프(V.P. Alexeev)가 1972년에 투르카나 호수 근처에서 발견된 'KNM-ER 1470'화석을 새롭게 연구하여, 이들이 호모 하빌리스와는 다른 특징을 가진 새로운 종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투르카나 호수의 옛날 이름인 루돌프 호수에서 착안하여 호모 루돌펜시스로 분류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호모 루돌펜시스는 호모 하빌리스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지만 호모 하빌리스 보다는 뇌의 크기가 약간 크고 이빨과 턱의 모양도 조금 다르게 생겼다. 하지만 이러한 해부학적인 구분이 종의 차이에 의해 생긴 것이라 보다는 성의 차이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호모 루돌펜시스를 인정하는 오늘날 대부분 학자들은 약 200만년에서 150만년 사이 케냐 북부의 투르카나 호수 근처에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그리고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가 함께 살았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호모속들처럼 호모 루돌펜시스도 도구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동아프리카의 투르카나 호수 근처에 모여 살았던 이 초기인류들 가운데 '누가 제일 먼저 석기를 만들어 사용했는지?', '누가 우리와 직접 연결되는 조상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 있다.

살았던 곳 : 케냐
살았던때 : 약 180만년 ~ 190만년전
발견된곳 : 케냐 투르카나 호수의 쿠비포라
종명 : 호모 루돌펜시스
두개골용량 : 약 750 ~ 800cc
주요특징 : 호모 하빌리스와 같은 종으로 여겨졌으나 해부학적으로 차이점이 있어 호모 하빌리스와는 다른 종으로 분류되었다.

1975년 투르카나 호수 동쪽 지역인 쿠비포라에서 완전한 형태의 두개골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 두개골은 용량이 약 880cc로 중국의 주구점에서 출토된 두개골 화석과 유사하며, 형태적 특성도 아시아에서 출토된 호모 에렉투스의 대표적인 특징과 닮아있다. 하지만 머리뼈가 상대적으로 얇고 눈두덩이가 덜 발달된 점 등 아시아 출토 호모 에렉투스와는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어 새로운 종인 호모 에르가스터로 분류되었다. 호모 에르가스터에 속하는 유명한 화석인 '나리오코토메 소년 (KNM WT 15000)'은 지금까지 발견된 고인류화석들 중 가장 완벽한 화석이다. 이 화석을 통해 호모 에르가스터는 긴 다리와 짧은 팔 그리고 큰 키를 가진 초기인류로서 신체의 비례는 본질적으로 현대인과 유사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긴 다리와 홀쭉한 갈비뼈는 덥고 건조한 동아프리카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 된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사바나의 개활지에서 먼 거리를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된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최초로 아프리카를 떠난 호미니드가 바로 호모 에르가스터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다.

살았던곳 : 동아프리카, 남아프리카
살았던때 : 160만년 ~ 175만년 전
발견된곳 : 케냐 투르카나 호수의 쿠비포라
종명 : 호모 에르가스터
두개골용량 : 850 ~ 880cc
주요특징 : 아프리카를 벗어난 초기인류,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와는 해부학적으로 차이가 있어 호모 에르가르터로 분류된다.  

유라시아로...

1887년 네덜란드의 의사 유진 드보아는 인간의 진화에 대한 화석증거를 찾기 위한 열망을 가지고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에 도착하였다. 그는 수년간의 탐사 끝에 1891년 솔로(Solo) 강 변의 트리닐(Trinil)에서 기적적으로 인류의 두개골과 넓적다리뼈 화석을 발견하였다. 드보아는 이 화석을 인류의 진화에 있어 “잃어버린 고리”라고 생각하여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라고 명명하였다.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Pithecanthropus erectus)는 똑바로 서서 걷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 화석이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발전하는 인류 진화과정의 중간단계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그 당시에는 인간의 조상이 똑바로 서서 걷게 된 원숭이과 짐승이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후 1969년 자바 중부의 상기란에서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잘 보존된 머리뼈 화석을 발견하였다. '상기란 17'이라고 명명된 이 머리뼈 화석은 호모 사피엔스에 비해 머리부가 낮고 뇌가 작다. 눈썹 부분이 발달되어 있고, 아래턱이 돌출하지 않은 튼튼한 턱은 호모 에렉투스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를 계기로 드보아가 발견한 화석들과 함께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되었다. 자바원인이라고도 불리는 불리는 피테칸트로푸스는 아프리카를 벗어난 호모 에렉투스가 빠르게 동쪽으로 퍼져 나갔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인도네시아의 호모 에렉투스인 피테칸트로푸스는 현생 인류가 세계 여러 지역에서 1~2백 만 년전에 호모 에렉투스로부터 진화하였다고 설명하는 다지역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로서 오랫동안 사용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DNA 연구에 기초하여 모든 현생인류의 공통조상이 약 15만년 전에 나타나 추정하는 아프리카 단일기원설이 보다 더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살았던곳 : 인도네시아 자바
살았던때 : 약 80만년 전
발견된곳 :인도네시아 상기란
종명 : 호모 에렉투스
두개골용량 : 1029cc
주요특징 : 아프리카를 벗어나 다른 대륙에 정착한 중요 사례를 보여주고 있음.

1920년대 중국의 주구점 인근의 오래된 동굴에서 파낸 화석들이 용의 뼈라고 하여 귀한 한약재로 팔리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뼈들은 오래된 인류의 화석으로 밝혀졌다. 1930년대 들어 주구점 동굴에 대한 과학적인 발굴조사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으며 조사를 통해 모두 40개체분의 고인류 화석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화석들은 2차 세계대전 중에 분실되고 현재는 두개골의 복제품만이 남아 있다. 이 두개골의 길고 경사진 앞이마와 얼굴의 두꺼운 눈두덩이 뼈 그리고 뒷머리에 툭 튀어나온 돌기는 전형적인 호모 에렉투스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고인류들은 발견된 곳의 지명을 따서 베이징원인 이라고 명명되었다. 화석과 함께 출토된 동물 뼈와 꽃가루자료들에 대한 고고학적인 분석을 통해 이들은 약 40~50만 년 전에 살았던 고인류로 밝혀졌다. 특히 화석이 출토된 지층에서는 불에 탄 재가 함께 발견되어 이들 베이징원인 불을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베이징원인은 아프리카를 떠나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였던 호모 에렉투스가 아시아에 넓게 흩어져 살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살았던곳 : 중국 베이징 인근
살았던때 : 약 70만년 ~ 30만년 전
발견된곳 : 베이징 주구점 동굴 제1지점
종명 : 호모 에렉투스
두개골 용량 : 1043cc
주요특징 : 불의 사용  

2003년 인도네시아와 호주의 연구팀은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의 리앙부아 동굴에서 이상한 두개골 화석을 발견하였다. 현대 어린아이의 두개골 크기 정도로 아주 작았지만, 매우 닳은 어른의 치아를 가지고 있었다. 이 화석을 발견한 연구자들은 이 화석을 지금까지 알려진 인류와는 다른 종으로 규정하고 발견된 지명을 따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로 명명하였다. 그 크기가 너무 작아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난쟁이족인 ‘호빗’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LB-1'으로 이름 붙여진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30세 정도의 여성으로 유인원과 비슷한 크기의 작은 뇌를 가졌고 키도 1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함께 발견된 석기들로 보아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능숙하게 석기를 사용하여 동물을 사냥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18,000년 전까지 살아 있었던 이들 플로렌시스는 인류의 진화연구에서 충격적인 화석증거로 받아들여진다. 새로운 종이 아니라 질병의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섬에 고립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장기간 진화하면서 음식자원의 한계 등 때문에 몸집이 작아졌으리라고 알려져 있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어떤 환경하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이렇게 작은 몸으로 진화하였는지? 그리고 진화의 역사에서 오늘날 우리와는 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여전히 궁금증을 남아 있다.

살았던곳 : 인도네시아
살았던때 : 약 18,000년 ~ 95,000년 전
발견된곳 :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 리앙부아 동굴
종명 :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별명 : 호빗
두개골 용량 : 417cc
주요특징 : 섬이라는 고립된 환경에 적응하여 작은 신체로 특수하게 진화한 인류

1856년 독일 뒤셀도르프의 네안데르계곡에서 석회석을 캐던 광부들이 이상한 뼈를 발견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동굴곰의 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8년후 이 뼈는 이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은 고인류의 한 종으로 밝혀졌으며 후에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i)로 이름 붙여졌다. 이후 유럽과 서아시아에서 많은 수의 네안데르탈인 유적이 발견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은 얼굴이 크고, 턱은 각이 졌으며, 코도 매우 컸다. 현생인류보다 강인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신체구조는 추운기후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약 20만 년 전에 나타나 약 3만 년 전에 사라질 때까지 네안데르탈인은 유럽과 서아시아 일부에서 빙하기의 추운기후를 이겨내며 번성하였다. 네안데르탈인은 훌륭한 석기제작자였다. 그들은 발달된 석기제작기술을 사용하여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진 박편들을 만들어냈고 이 박편들을 사용하여 훌륭한 창끝찌르개도 만들 수 있었다. 이 창으로 커다란 동물들을 사냥한 능숙한 사냥꾼이었으며 불을 다룰줄도 알았다. 동물가죽을 벗겨내어 추위를 이겨내는 옷도 만들어 입었고 몸을 치장하는 장신구도 사용하였다. 죽은자를 매장하고 꽃으로 장식하였다는 고고학적 자료들도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정교하지는 않지만, 언어도 가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네안데르탈인은 약 3만년 전, 현생인류가 유럽에 도착한 얼마 후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들이 호모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뒤처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 사멸한 것인지는 아직 수수께끼이다. 최근에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에서 DNA를 추출하여 분석해본 결과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는 유전적으로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여전히 네안데르탈인과 우리 현생인류가 유전적으로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네안데르탈인이 진화의 역사에서 오늘날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는 앞으로 새로운 화석자료의 발굴과 유전자 연구를 통해서 보다 더 자세히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살았던곳 : 유럽, 서아시아
살았던때 : 약 3만년 ~ 20 만년 전
발견된곳 : 독일 네안데르 계곡, 프랑스 라 샤펠오생, 라 페라시, 이라크 샤니다르 동굴, 러시아 오클리드니코프 동굴 등
종명 :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별명 : 골리앗, 올드맨
두개골 용량 : 1625cc
주요특징 : 두개골 용량이 크고 강인한 몸체, 강한 공동체 의식  

마지막 아웃 오브 아프리카 ; 현생인류의 출현과 확산

북한 평양 승호구역의 만달산에 있는 후기 구석기시대 동굴유적에서 발견된 고인류 화석이다. 만달동굴에서는 고인류의 앞머리뼈와 위머리뼈 뒷머리뼈와 아래턱이 출토되었다. 이 화석들은 25~30세 정도의 남자의 것으로 밝혀졌으며 발견된 동굴의 이름을 따서‘만달인(萬達人)’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만달인의 두개골은 전반적인 발달형태와 눈두덩의 모양, 아래턱의 특징이 현대인과 큰 차이가 없다. 만달인과 함께 출토된 동물뼈 중에는 원숭이, 털코뿔소, 말, 옛소, 동굴곰, 동굴하이에나, 동굴사자 등 지금은 살지 않는 동물화석들과 원숭이, 복작노루 등 따뜻한 기후에 사는 동물들도 포함되어 있어 만달인이 살았던 당시의 환경을 짐작할 수 있다. 만달인은 약 12,000년 전후 후기 구석기시대의 끝 무렵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한반도의 후기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로 여겨진다. 하지만 만달인이 오늘날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살았던곳 : 북한 평양인근
살았던때 : 약 10,000년 ~ 12,000년 전
발견된곳 : 북한 평양 만달동굴
종명 : 호모 사피엔스
별명 : 만달사람
두개골 용량 : 1,676 cc
주요특징 : 후기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살았던 고인류

1933년 북경원인이 발견된 용골산 꼭대기에서 발견되었다하여 산정동인이라 불린다. 약 18,000년전의 고인류화석이지만 머리뼈의 형상과 팔다리의 길이는 이미 현대인과 같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키가 남성은 평균 174cm 여성은 159cm 정도였으며 뇌의 용량도 오늘날 우리와 별 차이가 없었다. 다양한 타제석기와 동물의 뼈로 만든 장식품도 발견되어 이들의 기술 수준과 예술적 능력을 알 수 있다. 유골 주위에 붉은빛의 철광석 가루를 뿌려놓아서 죽은자를 위해 일종의 장례의식도 행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뼈로 만든 바늘이 출토되어 이들이 정교하게 옷을 만들어 입었음을 보여준다. 산정동인의 출토지에서는 118종의 동물화석이 함께 발견되었는데 이 중 30여 종은 이미 멸종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발견된 동물 중에는 표범이나 타조, 아시아 코끼리 등 열대 지역에서 서식하는 동물들의 화석도 발견되어, 이 지역의 당시 기온이 지금보다 상당히 높았음을 알려주었다. 산정동인은 오늘날 동아시아 사람들과 유사한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와 같은 옷을 입고 여러분 옆에 서 있다면 아마도 전혀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살았던곳 : 중국 베이징 인근
살았던때 : 약 18,000년 전
발견된곳 : 중국 북경 주구점의 산정동
종명 : 호모 사피엔스
두개골 용량 : 1,600cc
주요특징 : 뼈로 만든 바늘 사용, 장례의식  

북한 평양 승호구역의 만달산에 있는 후기 구석기시대 동굴유적에서 발견된 고인류 화석이다. 만달동굴에서는 고인류의 앞머리뼈와 위머리뼈 뒷머리뼈와 아래턱이 출토되었다. 이 화석들은 25~30세 정도의 남자의 것으로 밝혀졌으며 발견된 동굴의 이름을 따서‘만달인(萬達人)’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만달인의 두개골은 전반적인 발달형태와 눈두덩의 모양, 아래턱의 특징이 현대인과 큰 차이가 없다. 만달인과 함께 출토된 동물뼈 중에는 원숭이, 털코뿔소, 말, 옛소, 동굴곰, 동굴하이에나, 동굴사자 등 지금은 살지 않는 동물화석들과 원숭이, 복작노루 등 따뜻한 기후에 사는 동물들도 포함되어 있어 만달인이 살았던 당시의 환경을 짐작할 수 있다. 만달인은 약 12,000년 전후 후기 구석기시대의 끝 무렵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한반도의 후기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로 여겨진다. 하지만 만달인이 오늘날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살았던곳 : 북한 평양인근
살았던때 : 약 10,000년 ~ 12,000년 전
발견된곳 : 북한 평양 만달동굴
종명 : 호모 사피엔스
별명 : 만달사람
두개골 용량 : 1,676 cc
주요특징 : 후기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살았던 고인류 

극지로,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여 살아남는 생존능력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최고의 강점이다.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지구는 추워졌다 더워지기를 반복했다. 추워지는 빙기에는 극지방의 얼음이 늘어나고 더워지는 간빙기에는 반대로 극지방의 얼음이 줄어든다. 기후가 바뀌면 바닷물의 높낮이도 변하고 모든 자연환경이 바뀌었다. 이런 기후변화가 찾아올 때 마다 지구 위 모든 생명체는 생존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무더운 사바나기후에서 진화를 시작하였던 인류는 극심한 추위가 찾아왔던 빙하기에도 위대한 진화의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두꺼운 가죽털옷으로 무장하고 더 정교한 석기를 만들어 더 많은 동물을 사냥하였다. 다양한 식용식물도 찾아내어 먹을거리를 늘려나갔으며 따뜻한 집을 짓고 추위를 견뎌내었다. 이렇듯 빙하기의 혹독한 자연환경을 이겨내고 추운 기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적응력을 키워나갔던 구석기인들은 마침내 남극을 제외한 전 지구의 모든 곳에 퍼져나가 살 수 있게 되었다. 

맘무투스 프리미게니우스(Mammuthus primigenius)는 우리에게 '울리 매머드(털매머드)'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빙하기에 살았던 이 거대한 동물은 코끼리보다는 코가 짧지만, 어금니는 땅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커서 눈 속에서 먹이를 파헤치는데 알맞았다. 추운 겨울에도 먹이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빙하시대의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의 툰드라 지대에서도 살아갈 수 있었다. 시베리아의 꽁꽁 언 땅속에서 잘 보존된 화석상태로 발견되어서 이들의 신체적인 구조와 습성에 대해서 잘 알려져 있다. 울리 매머드는 추운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온몸이 8cm 나 되는 지방으로 덮여 있고 그 위에 다시 두껍고 거친 털이 두 겹으로 나 있었다. 귀가 코끼리 귀보다 훨씬 작았는데 이는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울리 매머드는 그 어떤 동물보다도 추위에 잘 적응했다. 그래서 빙하기의 혹독한 추위에도 시베리아를 포함한 유라시아 북부 및 알래스카와 북아메리카 북부까지 널리 퍼져 살 수 있었다. 울리 매머드의 뼈에 초기 북아메리카인들이 사용하던 창 끝이 박힌 채 발견되기도 하여 이들의 멸종원인의 하나가 인간들의 무분별한 사냥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매머드를 사냥하는 모습은 동굴 벽에 그림으로 많이 남아 있다. 지나친 사냥 때문에 매머드들은 점점 사라져 갔으며 이들이 좋아하는 추운 환경도 차츰 따뜻하게 변하여 결국은 멸종되고 말았다. 함경북도 온성, 화대, 길주 등지에서 뼈와 어금니 등이 발견되어 한반도에서도 매머드가 살았었음을 알 수 있다.  

털코뿔소는 홍적세인 180만 년 전부터 아시아와 유럽의 북부 초원에 살았다고 생각되는 코뿔소류의 한 종이다. 울리 코뿔소는 털코뿔소라고도 하며 정식명칭은 코엘로돈타 안티쿠이타티스(Coelodonta antiquitatis)이다. 유럽과 시베리아에서 영하 40◦의 강추위 속에 꽁꽁 얼어붙은 채 잘 보존된 털코뿔소가 발견되었다. 이들은 보통 어깨높이 2.2m에 몸길이는 4m에 육박하고 몸무게도 3t이 넘는 몸집이 매우 큰 동물이었다. 머리 앞쪽 두 눈 사이에 2개의 커다란 뿔이 있었고, 몸은 두꺼운 털가죽으로 덮여 있었다. 육중한 몸과 길고 북실한 털, 작은 귀, 짧고 굵은 다리가 특징이다. 빙하기에 맘무투스 프리미게니우스(울리 매머드)를 제외하면 제일 덩치가 큰 동물이었다. 울리 코뿔소는 빙하가 없는 좀 더 온화한 지역의 초원에서도 서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울리 매머드와 같이 석기시대의 벽화나 조각에도 자주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강원도 태백에서 화석이 발견되었다. 

전곡선사박물관
제공: 스토리

총괄|배기동
기획|이한용
큐레이터|김종헌, 심현철
전시설계|X-TU
디자인|장효진
교육|이정원, 이정현
행정지원|박희주, 박영휘, 최원영
프로젝트지원|김태용, 최서연, 김영대, 이학성, 박소현, 성형모, 김호균, 김경민, 조수진
고인류모형|ATELIER DAYNÈS, 꽃미녀
사진촬영|김경하

참여: 모든 표현 수단
일부 스토리는 독립적인 제3자가 작성한 것으로 아래의 콘텐츠 제공 기관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찾아보기
주변
프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