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해녀의 옷과 도구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박물관

Tradition and change in diving suits and gear
 
전통해녀옷인 물옷을 입고 물질하는 해녀
물소중이를 입고 물질나갈 준비를 하는 해녀들 

물소중이는 ‘소중기’, ‘속곳’ 이라고도 불렸으며, 물질 할 때뿐만 아니라 여성의 속옷으로도 많이 입었다. 소중기의 특징은 입고 벗기가 편하며 품을 조절할 수 있도록 옆트임이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흰색 옷이 많았으나 물질 할 때 쉽게 얼룩이 생겨, 검은색 등 짙은 색 천에 물을 들여 옷을 만들었다. 어깨 끈은 손바느질로 누볐으며 옆은 단추매듭(벌모작)과 끈으로 여며 임신하는 등의 신체 증감에 따라 조절할 수 있도록 하였다.

물적삼은 물소중이 위에 입는 흰 무명옷으로 이 옷이 일상화된 시기는 1960년대 이후이다. 물수건은 바다속에서 헝클어질 수 있는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보온을 하기 위한 사용하였는데, 뭍에서는 햇빛을 가리는 모자로서의 기능을 하였다. 물소중이와 물적삼은 고무옷이 등장하기 전인 1970년대 초까지 입었다.

트임과 바대에 장식을 한 검정색 물소중이 (해녀박물관 소장 유물)
물옷을 입고 있는 해녀
밀가루 포대로 만든 물소중이
어깨끈이 양쪽에 있는 어깨말이 소중이
빗창 녹이 묻은 물소중이
물적삼(해녀박물관 소장 유물)
물적삼을 입고 있는 어린해녀

까부리는 1960년대에 일본이나 육지로 출가했던 젊은 해녀들에 의해 물수건 대신 보급 되었다. 까부리는 머리에서 뒷 목덜미 전체를 덮을 수 있는 모자로 물수건보다 쓰기가 간편하고 더 따뜻하며 양뺨을 덮음은 물론 햇빛을 가림에도 더 좋다고 한다. 양쪽 귀 높이에 구멍이 뚫어져 있어 물이 빠져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까부리를 만들어 착용하는 해녀들은 소수였고, 여름철 개량 해녀옷인 고무옷의 모자대신 착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까부리
 1970년대 고무옷을 입고 고무모자 대신 까부리를 착용한 해녀들

현재 해녀가 입는 고무옷은 1970년대 초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다. 고무옷은 목까지 내려오는 통으로 된 ‘모자’와 고리가 달린 ‘상의’, 그리고 발목을 덮고 가슴까지 올라오는 바지 형태의 하의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 ‘오리발’이라고 부르는 물갈퀴를 발에 신고 작업한다. 

스펀지 형태의 고무옷은 부력이 있어 ‘연철’ 이라 는 납추를 몸에 매달아야만 물에 들어갈 수 있다. 원단은 일본에서 수입하는데 초창기의 원단은 질기고 딱딱했으나, 이후 부드러운 소재가 생산되고 재질이 더 좋아져 해녀가 작업하기 편리하도록 바뀌었다.

고무옷 세트(해녀박물관 소장 유물)
1970년대 해녀의 고무옷
2000년대 해녀의 고무옷
고무옷 입을 때 서로 도와주는 해녀들

고무옷이 등장하면서 해녀의 작업환경이 크게 변하였다. 

이전에는 작업하던 시간이 30분에서 1시간 내외였으나, 고무옷을 착용하면 3시간에서 5시간을 넘게 작업할 수 있으며 더 깊은 곳으로도 들어갈 수 있다. 

이를 통해 이전보다 몇 배의 수확을 올리고 있으나 잠수병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물질나서려고 채비하는 해녀
고무모자를 쓰고

연철(鉛鐵, 납벨트)은 고무옷을 입으면 부력이 생겨 물에 가라앉기 위해 허리에 차는 도구이다. 고무옷의 두께와 몸무게에 따라 납을 차는 무게도 달라진다. 두꺼운 고무옷 보다 얇은 고무옷을 입으면 연철을 덜 차도 되고, 두꺼운 고무옷은 그만큼 연철을 많이 차야 한다.

처음 고무옷이 보급되고 연철이라는 납벨트를 만들어 사용하기 전에는 옷에 돌을 넣어 주머니식으로 만들어 팔과 허리에 차고 물에 들어가기도 했다.

연철은 해녀들이 직접 만들거나 아버지나 남편들이 만드는 것을 도와주었다.

납을 여러 개 만들어 고무끈이나 나일론 끈을 끼워 연결하거나 벨트 형식으로 만들어 허리에 찼다. 또는 그물에 다는 작은 봉돌(납추)을 여러 개 나일론 끈으로 연결해서 만들어 허리에 빙빙 둘러 감기도 한다.

연철을 차는 해녀
유색 고무옷을 입고 물질하는 해녀

해녀들은 1년을 기준으로 고무옷 한 벌을 마련하는데, 보통 새 옷 한 벌과 수선해 입는 옷 한 벌을 가지고 있어 여름에는 헌 옷을 수선해서 입고, 겨울엔 새 옷을 입는 편이다.

2012년부터 바다에서 작업하는 해녀들을 쉽게 찾기 위하여 옷색깔이 오렌지색인 고무옷을 보급하고 있다.

해녀들이 물질할 때 쓰는 물안경을 ‘눈’ 이라고 한다.

과거 해녀들이 사용하던 물안경을 ‘족쉐눈’ 이라고 하며, 현재 해녀들이 사용하는 물안경은 ‘왕눈’이라고 한다.

수경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쓰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의 물안경은 소형 알이 두개로 분리된 ‘족쉐눈’을 사용했고, 1960년대 이후는 분리되지 않은 ‘왕눈’이 사용되었다. ‘왕눈’은 그 테두리의 재료를 처음에는 황동으로 만들어 쓰다가, 1970년대부터 고무옷이 보급되면서 테두리도 고무로 만든 ‘고무눈’을 사용하고 있다.

눈과 눈곽(해녀박물관 소장 유물)
족쉐눈(1960년대 이전 사용)
쉐눈(1960~1970년대 사용)
왕눈(1970년대 이후 사용)
물질가기전 쑥으로 눈을 닦고
쑥으로 수경을 닦고

테왁은 부력을 이용한 작업도구로서 물속의 해녀가 그 위에 가슴을 얹고 작업장으로 이동할 때 사용한다. 

테왁의 재료는 박이기 때문에 콕테왁이라 불리었다. 잘 여문 박을 따내어 둥그런 구멍을 뚫고 박씨를 빼낸 다음 물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구멍을 막아 만들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스티로폼으로 된 테왁으로 바뀌었다.

망사리는 '헛물망사리'와 '미역망사리'로 나누어지는데, '헛물망사리'는 촘촘하게 짜서 주로 전복, 소라, 성게 등을 캐서 담았고, '미역망사리'는 미역, 톳 등 해조류를 담는 용도로 쓰여 헐렁하게 짜여 졌다. 테왁망사리가 물결에 휩쓸려 이동하지 않도록 망사리 안에 돌추나 테왁닻을 넣는다.

테왁에는 망사리가 부착되어 있어 그곳에 채취한 수산물을 넣어둔다.

박으로 만든 테왁망사리(해녀박물관 소장 유물)
해녀들이 사용했던 테왁망사리
물질에 앞서 테왁을 손질하는 해녀들
태극기문양을 넣은  테왁망사리
수중에 떠 있는 테왁망사리

해녀가 해산물을 획득할 때 쓰는 도구로는 빗창, 호맹이, 작살, 종개호미 등이 있다. 

빗창은 해녀들이 물속 바위에 붙어있는 전복을 떼어내는 데 쓰인다. 빗창의 머리끝에 둥글게 끈을 다는데 그 끈 속에 손을 넣어 빗창을 잡았을 때 빠지지 않도록 하고, 전복을 채취할 때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까꾸리는 ‘골각지’라고도 하며, 오분자기, 성게, 문어 등을 채취할 때 쓴다. 긴 것은 문어를 잡을 때 쓰며, 짧고 날카로운 것은 오분자기를 채취할 때 쓴다. 김을 맬 때 사용하는 호미(골갱이)와 비슷하다.

작살은 소살이라고도 하며 해녀들이 물고기를 잡을 때 쓴다. 개호미는 모자반이나, 톳, 또는 미역을 벨 때 쓰는 낫 모양의 호미이다.

물구덕은 해녀도구와 채취한 해산물을 넣고 다니는 대바구니로 질구덕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등에 짊어져서 다녔다. 등에 무리를 가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등받침을 사용했는데, 이를 ‘고애기’라고 한다.

빗창
호맹이(까꾸리)
오른손에 빗창을 쥐고 바다속으로 들어가는 해녀
긴 호맹이로 문어를 
작살은 소살이라고도 하며 해녀들이 물고기를 잡을 때 쓴다.
종게호미는 모자반이나, 톳, 또는 미역을 벨 때 쓰는 낫 모양의 호미이다.
물질을 마치고 나오는 해녀모녀
질구덕을 등에지고 물질가는 해녀들
한라산을 배경으로  물질가는 해녀들
현대의 제주해녀들은 재질이 바뀌었을 뿐 예전 해녀들이 쓰는 도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제공: 스토리

Curated
by  — Kang
Kwon Yong, Kwon Mi Seon

Photos from  — Jeju
Photo Members, Haenyeo Museum,
Seo
Jae Chul, Kang Man Bo

Planning  — Haenyeo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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