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왕조의 역사를 왕대별로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입니다.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하게 되기까지 험난한 역사를 거쳐 왔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제1대 태조부터 제25대 철종에 이르기까 지 역대 왕들의 행적을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한 것으로, 총 1700여 권에 달합니다. ‘실록實錄’은 국왕의 재위기간 동안 그 언행과 통치 행위 등 역사적 사실을 날짜 순서에 따라 있는 그대로 기록한 책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472년에 이르는 장구한 기간의 역사를 수록한 방대한 양과 풍부하면서 도 상세한 내용에서 세계 다른 왕조의 기록을 압도합니다. 이러한 중요성 이 인정되어 현재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습니다.

2016년 7월 25일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五臺山史庫本/국보 제151-(3)호)’이 우리 박물관 수장고의 새 식구가 되었습니다.

조선왕조의 모든 왕대에 걸쳐, 왕의 사후 재위 기간 중 있었던 일을 정리하여 편찬한 국가기록물을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합니다. 실록은 당대에 열람하거나 활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왕도 함부로 볼 수 없었으며, 후세의 평가를 염두에 두고 바르게 기록하고 안전하게 잘 보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실록 같은 중요한 기록물은 전쟁이나 화재, 천재지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같은 책을 여러 부 만들어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였습니다. 그 중 오대산의 사고에 보관하던 실록이 ‘오대산사고본’입니다.

오대산 사고는 임진왜란 직후(1606년경) 설치되어 1910년경까지 운영되었습니다. 오대산 사고는 다른 사고와 마찬가지로 실록을 비롯한 의궤, 왕실 족보 등 중요 문헌을 봉안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대산 사고에 있던 태조~철종까지의 실록 788책은 일제에 의해 1913년 일본 동경제국대학 부속도서관으로 이관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23년 일본 동경의 지진으로 대부분의 실록이 소실되는 참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당시 대출 중이던 74책은 지진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 74책 중 27책(중종실록 20책, 선조실록 7책)은 1932년 서울의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되어 광복이후 서울대학교에서 소장 관리하게 되었고, 나머지 47책(성종실록 9책, 중종실록 30책, 선조실록 8책)은 광복이후에도 여전히 동경대학교에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일본 동경대학교에 남아있던 실록 47책은 2006년 7월에 93년 만에 환수되었습니다. 이후 문화재청이 국립고궁박물관을 오대산사고본 실록 74책의 관리단체로 지정함에 따라서, 2016년 7월 25일부터 우리 박물관이 이를 인계받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오대산사고본 실록이 다른 사고의 조선왕조실록과 다른 점은 실록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교정을 보았던 ‘교정본’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 실록에는 군데군데 붉은 글씨(朱書)와 검은 글씨(墨書)로 수정·삭제 등을 지시하는 교정부호가 남아 있는 교정본입니다. 그런데 왜 완성본도 아닌 교정본을 책으로 만들어 사고에 분상하였던 것일까요?

당시 어려웠던 경제 상황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실록을 재 간행하던 시기는 임진왜란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활자도 모자라고 종이도 몹시 귀했습니다. 전란으로 많은 물자가 유실되었고 공급도 원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종이의 질은 떨어지지만 내용상 완성본 실록과 다름없는 교정본을 그냥 버리기는 아까웠을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은 임진왜란이라는 전쟁 끝에 태어나서 망국으로 인해 국외로 떠돌다 지진이라는 천재지변을 만나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그런 시련을 이겨내고 끝까지 살아남은 74책이 오늘 우리와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공: 스토리

국립고궁박물관

김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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