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과 물질-1970년대 일본의 판화

경기도미술관

<영상과 물질-1970년대 일본의 판화>전은 경기도미술관이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전시로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1970년대 일본의 현대판화를 집중 조명합니다. 판화는 판(版)을 이용하여 찍어내는 독특한 조형예술로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다양한 방식의 실험을 보여줍니다. 우키요에(浮世繪)로 널리 알려져 있던 일본의 판화는 현대에 이르며 새로운 실험을 선보입니다. 독자적인 예술장르로서 자리매김한 이후 창작예술로서 일본의 판화는 국제무대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1957년 도쿄국제판화 비엔날레가 기획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세계의 현대미술 동향과 교류하던 일본의 판화는 197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그 기법과 주제 면에서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전시는 ‘영상 표현의 시대’라는 주제로 대중매체를 통해 넘쳐나는 영상의 시대를 반영했던 작품들을 담고 있으며, ‘물질 주체의 상’이라는 주제로 물질의 세계를 지향하는 예술 흐름 속에서 표현되었던 판화를 선보입니다. 특히 이번에는 일본 특유의 판화인 우키요에의 복각화(復刻畫)도 함께 전시하오니, 전통과 현대의 일본 판화를 아울러 관람하시며 일본현대판화에 담긴 실험의 정신과 자취를 감상하시기를 바랍니다.
Part1:영상 표현의 시대

노다 테츠야는 자신의 일상적인 삶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가족이나 지인, 아이들의 성장과정, 그리고 주변 풍경 등을 포착하여 거의 40년 가까이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시리즈를 제작하였습니다. 1968년부터 목판화와 실크스크린을 병용하여 시작한 이 시리즈는 그 해 개최된 제 6회 도쿄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국제대상을 수상했으며 1970년대에 실크스크린 판화가 더 활발히 등장하는 데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습니다. 이후 그는 세계 각국의 비엔날레에서 수상했으며 꾸준히 촬영한 일상에 관한 사진을 사용한 일기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일반적인 가족의 초상화와 달리 각 사람의 머리, 심지어 화분 위에 이름과 생년월일에 대한 정보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조형적인 터치나 내러티브를 드러내기보다 각각의 존재를 동등한 사물로서 나열시키며 사진영상을 화면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는 화려하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담담한 일상의 모습 자체가 미술이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대학에서 일본화를 전공한 뒤 광고대리점에 근무한 기무라 코스케는 1960년대 말부터 잡지 등에 게재된 다양한 종류의 사진영상을 모아 앗상블라주(여러 사물들을 한데 모아 표현하는 기법) 판화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그는 1970년대에 국내외의 비엔날레에 출품하여 다수 수상했고 개인전을 통해 활발히 활동했으며 조각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화면 안에 반복된 이미지와 단편 시각정보들의 조합은 영상과 정보의 홍수와도 같은 현대사회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1950년대에 마츠모토 아키라는 분업형태로 제작되는 우키요에 판화의 스리시(摺師, 목판의 인쇄를 담당하는 직인)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자신만의 판화 작품을 제작하면서 판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신문 지면에 판화로 표현하는 팝아트풍의 작품을 제작하였던 그는 1970년대에 풍경이나 사진을 망점으로 변환하는 작업을 해나갔으며, 국내외 비엔날레에 수상한 바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인쇄된, 혹은 브라운 관을 통해 보는 영상의 망점과 구조를 연상시키며 영상의 시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후반에 플라스틱 조각을 제작하였던 그는 1970년대에 본다는 것에 대한 구조를 탐구하며 사진을 사용한 작품 활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사이토 사토시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사진을 전사(轉寫)한 판화에 담긴 사진영상은 판에 의해 찍힌 상 속의 영상으로서 그 둘은 서로 미묘하게 차이를 드러냅니다. 사진영상을 이중으로 담은 그의 작품은 이미지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본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돌이켜보게 합니다.

1974년 제 9회 도쿄국제판화 비엔날레에서 연필을 쥔 손의 영상을 모눈종이에 인쇄한 실크스크린 판화로 수상했습니다. 그 후로도 기무라 히데키는 2차원의 평면 위에 표현된 상과 실제 사물 사이의 모호한 관계를 탐구하며 다양한 실험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영상을 반영한 판화로 시각에 대한 실험을 펼친 그는 나아가, 1980년대 말에 ‘맥시 그라피카(MAXI GRAPHICA)’라는 그룹을 조직하여 대형 판화의 가능성을 추구해갔습니다.

1960년대에 언더그라운드 연극배우로서 활동한 후 연출가, 영상작가로서 활동하였던 하기와라 사쿠미는 1970년대에 실크스크린 판화를 제작하여 1976년 제 10회 도쿄국제판화 비엔날레에서 수상하였습니다. 영상의 여러 장면이 한 화면에 순차적으로 담긴 판화는 비디오 영상의 주요 특성인 시간성을 작품에 담고 있습니다.

Part2:물질 주체의 상

다카마츠 지로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에 걸쳐 아방가르드 예술의 흐름 속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해프닝과 퍼포먼스를 행하였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외부세계에 대한 우리의 시지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을 제작한 다카마츠 지로는 물체에 주체성을 부여하는 일본현대미술의 한 흐름인 ‘모노하(物派)’의 등장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60년대 후반 이후에도 판화를 제작하였던 그는 70년대 초 판화의 개념을 묻는 작품을 제작하여 주목을 받은 바가 있습니다. 그는 원근법에 익숙한 우리의 타성적인 물체 인식 방법에 대하여 판화의 이미지요소로써 일깨우거나, 문자를 순열조합하여 복사기로 제작한 작품 등으로 판화의 새로운 개념을 실험하였습니다.

1960년대 말 요시다 카츠로는 물체를 조합한 작품을 발표하며 ‘모노하(物派)’의 작가로서 활동했습니다. 1970년에는 사진 영상을 실크스크린 판화로 표현한 작품을 제작한 그는 이후에도 판화 제작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습니다. 사진영상을 판화의 지지체에 찍히는 하나의 요소로서 무덤덤하게 겹쳐 표현한 그의 작품은 당시의 새로운 표현으로써 1970년 제1회 서울국제판화 비엔날레에서 동아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현대미술의 동향을 재검증하는 전시에 그의 작품은 종종 소개됩니다.

에노쿠라 코지는 1960년대 후반부터 신체가 물질에 감응하여 드러나는 긴장관계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장이나 상태를 보여주는 작품을 해 왔습니다. 그의 판화에서는 이미지의 번짐으로부터 잉크, 판, 종이 등 판화를 이루는 물질의 존재와 관계를 확인하게 됩니다. 1971년 파리 청년비엔날레에서 수상했던 그는 70년대 초반부터 판화 작품을 개시하여 1979년 제11회 도쿄국제판화 비엔날레에서도 수상을 했습니다.

이다 쇼이치는 팝아트적인 판화를 제작하다가 1970년대 중반부터 ‘표면은 사이이다Surface is the Between’ 라고 하는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이 제목은 그 자체로 판화의 제작과정에 포함되는 물질 간 관계를 제시합니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작업실에서 우연히 종이 위에 남겨진 누름돌의 흔적을 발견한 이후 사물과 사물이 우연히 만나는 접점과 판화의 과정에 대한 개념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판화를 중심으로 이를 표현하던 그는 회화, 공예 등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제작해나갔습니다. 끝없는 실험으로 그는 1976년 제10회 도쿄국제판화 비엔날레와 해외의 비엔날레에서 수상을 거듭했습니다.

가와구치 타츠오는 1960년대부터 물질과 인간은 등가라고 하는 사고를 바탕으로 하여 물질과 인간, 다른 물질 간의 상호 관계를 테마로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그는 1970년대에 철이나 동의 파편에 있는 녹을 헝겊에 전사(轉寫)하거나, 녹슨 못이나 꺾쇠를 넣은 종이를 뜨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이처럼 판화의 개념을 확대한 실험으로 그는 1979년 제11회 도쿄국제판화 비엔날레에서 수상한 바 있습니다.

이우환은 195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중퇴한 후 도일하여 니혼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습니다. 1960년대 초반부터 미술작품을 제작한 이래로 1960년대 후반에는 서로 다른 사물을 조합하여 그 존재와 관계를 드러내며 주체적 존재로서의 물질을 다룬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동시에 그는 논문이나 비평을 기고하면서 이후 ‘모노하(物派)’라 불리는 동향을 이론화하였으며, 자율적인 주체로서 물체의 존재와 관계맺음을 사유하는 작품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197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판화를 제작하여왔습니다. 판이라는 물체가 빚어내는 화면은 그의 이론을 담기에 효과적인 매체였을 것입니다. 또한 화면에서 여백과 점이 조응하는 관계는 판화에서 종이와 잉크 등 물질적인 요소의 존재와 관계맺음 생각하게 합니다.

가노 미츠오는 랭보 등의 시에 심취하였고, 1953년에 동판화를 제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인 다키구치 슈조(瀧口修造)에게 발굴되어 개인전을 개최하여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음각 기법을 통해 금속판의 질감을 종이 위에 구현하면서 거기에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를 부여함으로써 매우 물질적이면서도 시적인 성격을 가진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1962년 제3회 도쿄국제판화 비엔날레를 비롯한 국내외 전시에서 수상하였던 그는 음각판화나 석판화 외에 유화도 다수 제작하고 있습니다.

유년기를 홋카이도에서 지낸 이치하라 아리노리는1920년대 후반부터 우정성 직원으로서 근무하는 동안 일본 고유의 단시인 하이쿠(俳句)를 지었습니다. 1950년대 후반에 모노타이프 판화를 제작하면서 판화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한 그는 이어 다양한 금속 판자를 다양한 약품으로 부식시키고 그 요철을 인쇄해내는 방식으로 마티에르(재질감)가 강조된 판화를 보여주었으며, 대형의 모노타이프 판화도 다수 제작하였습니다.

경기도미술관
제공: 스토리

[주최]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미술관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전시]
전시총괄 | 최은주(경기도미술관 관장),양원모(경기도미술관 학예실장), 야마사키 히로키(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소장)
전시기획 | 다키자와 쿄지(마치다시립국제판화미술관 학예원)
한국측 큐레이터 | 방초아(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전시진행 | 다케다 야스타카‧고은강(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전시지원 | 박우찬‧박본수‧이채영‧황록주‧최기영‧윤가혜‧김윤서‧서주희‧오송아(경기도미술관 학예실)
전시연계 프로그램 | 황록주‧서지현(경기도미술관 학예실)
전시홍보 | 방초아‧서지현(경기도미술관 학예실), 고은강(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행정지원 | 이현경‧정승희‧이지연‧정수미(경기도미술관 학예실)
프로젝트 지원 | 김태용, 최서연, 김영대, 이학성, 박소현, 성형모, 김호균, 김경민, 조수진 (경기문화재단 홍보마케팅팀)
시설지원 | 신운수‧김경욱‧주남규‧조만흥‧문종욱(경기도미술관 시설운영)
도슨트 | 박혜진, 유수현, 정예지, 최유진(경기도미술관 학예실)
공간연출시공 | 경기종합공사
사인물제작설치 | B&B디자인
작품운송설치 | 한솔비비케이
디자인 | 이은솔(경기도미술관 학예실), 스튜디오 바프

참여: 모든 표현 수단
일부 스토리는 독립적인 제3자가 작성한 것으로 아래의 콘텐츠 제공 기관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Google 번역
찾아보기
주변
프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