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대왕신종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은 현존하는 한국의 종 가운데 가장 빼어난 작품이다. 아름다운 종의 형태와 무늬, 심금을 울리는 종소리는 세계적으로도 손꼽을 만하다. 특히 종 한 가운데 향로를 받들고 있는 비천의 모습은 마치 성덕대왕의 극락왕생을 간절히 염원하는 듯하다. 조형적 아름다움, 완벽한 주조기술에 더해 정신적인 면모까지 투영된 당대 최고의 종교적 조형물이자 최상의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범종
범종梵鍾은 절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사람들을 모을 때,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는 종을 말한다. 범종 소리는 부처님의 말씀에 비유되기도 하며 지옥에 떨어져 고통 받는 이들이 소리를 들으면 구제받을 수 있다고 한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 한자로 종은 ‘쇠 금金’ 변에 ‘아이 동童’자가 있는 ‘鐘’자를 쓰는 반면 한국에서는 종에 기록된 명문에서도 볼 수 있듯 ‘쇠 금’ 변에 ‘무거울 중重’자가 있는 ‘鍾’자를 쓴다. 한국의 종은 중국, 일본의 종과 쓰는 한자가 다를 뿐 아니라 모습에도 차이가 있다. 중국이나 일본 종의 경우에는 종뉴鍾鈕(용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용뉴龍鈕라고 부르기도 함)가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등지고 있는 데 반하여 한국은 한 마리의 용이 머리와 다리를 뻗고 있는 모습인데다 옆에는 중국이나 일본 종에서는 볼 수 없는 용통甬筒(음통音筒, 음관音管이라고도 함)이 있다. 또한 종 표면 위 아래로 보상화 무늬나 모란당초무늬를 새긴 띠와 4개의 연곽蓮廓(유곽乳廓이라고도 함)이 있고, 연곽 안에는 각각 9개의 연두蓮頭가 있다. 그리고 몸통에 비천상飛天像과 종을 치는 부분에 당좌撞座를 새겼다. 한국의 종은 아름다운 곡선과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종소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에밀레종 - 설화와 진실
성덕대왕신종은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에밀레’는 아이가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나라에서 종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거듭 실패했다. 이때 한 노인이 나타나 누군가가 아이를 보시하겠다는 불경한 농담을 했기 때문에 종을 완성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약속을 지켜 쇳물에 아이를 넣어야만 종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이에 종을 만들기 위해 공양을 받아 온 승려들에게 물어보니 한 부인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일이 있었다고 하였다. 이에 왕은 그 부인을 찾아내어 아이를 빼앗아 쇳물에 넣도록 하였다. 그렇게 하여 비로소 종을 완성할 수 있었는데, 종을 칠 때마다 마치 아이의 원망이 서린 듯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인 “에밀레~, 에밀레~” 소리가 났다 한다. 또 다른 설화에서는 장인의 누이가 옛날에 부정한 짓을 저질렀기에 종을 완성할 수 없었고, 결국 누이가 아이를 종에 보시하여 종을 완성했다고 한다. 1999년 종의 성분을 분석하였는데, 구리(Cu)가 80~85%, 주석(Sn)이 12~15%이며 이 외에 납(Pb), 아연(Zn) 등을 확인하였다. 흥미로운 점 가운데 하나는 사람을 재료로 썼다면 있어야 할 인(P)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로서 아이를 쇳물에 녹였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아마도 설화는 이처럼 훌륭한 종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던 데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성덕대왕신종 명문
성덕대왕신종에는 두 군데에 글을 새겼다. 한 면(현재 동면)에는 종의 조성 과정을 기록한 ‘명銘(한문 산문 형식의 일종)’을, 그 반대 면(현재 서면)에는 네 글자씩 50줄로 ‘사詞(한문 운문 형식의 일종)’를 새겼다. 명의 제목은 「聖德大王神鍾之銘성덕대왕신종지명」으로 이를 통해 이 종의 이름을 알 수 있다. 명은 신라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년) 이 선대왕인 성덕왕(재위 702~737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구리 12만 근으로 큰 종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昇遐하자 경덕왕의 아들 혜공왕惠恭王(재위 765~780년)이 그 뜻을 이어 즉위 7년만인 대력大曆(중국 당나라 대종代宗의 연호) 6년(771) 신해년辛亥年 12월 14일에 종을 완성하였다는 내용과 종의 제작에 참여한 이들의 관직과 이름을 기록하였다. 사는 삼국을 아우른 신라를 예찬하고 선왕(경덕왕)과 태후(景垂王后)의 공덕을 예찬하는 내용으로 급찬級湌김필오金弼奧(또는 김필중金弼重)가 지었다.

성덕대왕신종에는 두 군데에 글을 새겼다. 한 면(현재 동면)에는 종의 조성 과정을 기록한 ‘명銘(한문 산문 형식의 일종)’을, 그 반대 면(현재 서면)에는 네 글자씩 50줄로 ‘사詞(한문 운문 형식의 일종)’를 새겼다. 명의 제목은 「聖德大王神鍾之銘성덕대왕신종지명」으로 이를 통해 이 종의 이름을 알 수 있다. 명은 신라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년) 이 선대왕인 성덕왕(재위 702~737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구리 12만 근으로 큰 종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昇遐하자 경덕왕의 아들 혜공왕惠恭王(재위 765~780년)이 그 뜻을 이어 즉위 7년만인 대력大曆(중국 당나라 대종代宗의 연호) 6년(771) 신해년辛亥年 12월 14일에 종을 완성하였다는 내용과 종의 제작에 참여한 이들의 관직과 이름을 기록하였다.

성덕대왕신종에는 두 군데에 글을 새겼다. 한 면(현재 동면)에는 종의 조성 과정을 기록한 ‘명銘(한문 산문 형식의 일종)’을, 그 반대 면(현재 서면)에는 네 글자씩 50줄로 ‘사詞(한문 운문 형식의 일종)’를 새겼다. 사는 삼국을 아우른 신라를 예찬하고 선왕(경덕왕)과 태후(景垂王后)의 공덕을 예찬하는 내용으로 급찬 김필오金弼奧(또는 김필중金弼重)가 지었다.

음통과 종뉴
음통音筒은 큰 피리 모양의 원통으로 속이 비어있어 종 내부의 소리가 이곳을 통해 밖으로 전달된다. 신라의 종에만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음통이 음관의 역할을 하여 고주파 음들을 흡수하여 소리의 잡을 감소시켜 준다. 종뉴鍾鈕는 종을 매다는 고리로, 용이 조각되어 있어 용뉴라고도 한다. 용의 조각은 힘이 넘치나 균형을 잃지 않고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세부 표현은 섬세하고 미려하다.
연두蓮頭
연꽃봉오리 형태로 돌출된 장식으로, 연뢰라고도 한다.
당좌撞座
종을 치는 자리이다. 종을 만들 때 장소를 정해두고 그곳에 8개의 잎으로 된 연꽃을 2중으로 겹쳐 보상화 무늬를 만들었다. 당좌는 신라종의 고유한 용두 방향을 기준으로 종의 전후방에 각각 1개씩 2군데 배치하였다.
비천飛天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상은 신라의 미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천인은 연화좌에 무릎을 꿇고 향로를 받들고 있으며 하늘로 휘날리는 옷자락 주위로는 보상화가 구름처럼 피어나고 있다. 섬세하고 미려한 조각이 돋보인다.
일승원음一乘圓音
성덕대왕신종은 경덕왕이 부왕 성덕왕聖德王(재위 702~737)의 명복을 기원하며 만든 종이다. 그러나 경덕왕은 종의 완성을 보지 못했고 이어 아들 혜공왕惠恭王이 771년에 완성하였다. 성덕대왕신종에는 “신종을 높이 달아 일승원음을 깨닫게 하였다”고 한다. 일승원음은 부처의 음성처럼 세상 모든 이들을 향한 깨달음의 소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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