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다양성의 목소리

한글의 창제와 한글이 사람들의 삶에 끼친 영향

조선 정부의 간택단자(揀擇單子)한국학중앙연구원

한글

1446년 세종대왕(재위:1418-1450)이 창제한 한국 고유의 문자 한글은 백성들을 위한 세종의 사랑을 보여준다. 세종 자신이 훈민정음(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을 통해 말했듯이, 한글의 창제 목적은 백성들이 글을 쉽게 배우고 일상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는 성공적이었다. 창제 이후 570여년 동안, 한글은 모든 계층을 아울러 사용되었으며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조선 1462년 (세조 8년))한국학중앙연구원

한글의 창제와 취지

세종대왕은 백성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도모하고, 국가의 정책을 백성들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한글 창제 이후, 국가의 정책과 이상적인 유교 교육을 다룬 서적들이 반포되었다. 여기에서는 초기 한글 서적들, 그리고 교육과 유교 윤리를 다룬 서적들을 살펴 보자.

월인천강지곡한국학중앙연구원

한글은 한국어를 적는 완벽한 문자인 동시에 언어사적으로 길이 빛날 독창성과 과학적 원리를 갖고 있다. 한글은 빠르면 하루만에 글자를 모두 익힐 수 있는 체계적인 문자이다.

삼강행실도 삼강행실도(1730)한국학중앙연구원

이렇게 쉬운 글자를 이용하여 국가에서는 한자를 익히기 어려운 백성들을 교육하기 위해 한글로 된 책을 편찬하였다.

이 책은 유교의 삼강, 즉 군위신강, 부위자강, 그리고 부위부강을 실천한 사람들의 일화를 그림과 한자로 설명한 <삼강행실도>이다.

그림의 윗부분에 한글로 내용을 번역해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고, 이것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1796)한국학중앙연구원

부모의 은혜가 크고 깊음을 설명하는 불교경전인 <부모은중경>에도 한글은 사용되었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한국학중앙연구원

그림과 한글을 함께 사용한 이런 책들은 백성들에게 유교적 가치를 널리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조선 정부의 천자문(千字文)(조선 19세기)한국학중앙연구원

연민과 소통, 그리고 백성들의 삶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배경에는 백성들에 대한 연민과 백성간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따라서 한글의 창제는 의학서, 무술교본, 왕실 교서 등 다양한 서적의 번역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서적들은 당시 국가가 백성들의 삶을 굽어살폈으며, 국가와 국민간의 의사소통을 돕고자 했다는 증거이다. 또한 여기에서 다룰 다양한 문서들은 조선시대 백성들의 삶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신간구황촬요한국학중앙연구원

국가에서는 백성들의 생활과 관련된 정책들을 한글을 사용하여 편찬하였다. 이 책은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죽는 일이 벌어지자 다양한 대용 식물과 그것을 먹을 방법을 알려준다.

자휼전칙한국학중앙연구원

뿐만 아니라, 흉년에 버려진 아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여려가지 방법도 한글로 쓰인 책을 간행하여 전국에 배포하였다.

언해두창집요 언해두창집요(1608)한국학중앙연구원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도 한글로 책을 편찬하여 백성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노력하였다.

언해두창집요한국학중앙연구원

이 책에 남은 메모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사용하고 그것을 서로 공유했음을 알려준다.

가체신금사목한국학중앙연구원

여성들의 가체(가발)을 금지하는 <가체신금사목>도 한글로 제작하여 배포했다.

가체신금사목한국학중앙연구원

당시 여성들의 큰 가체가 유행하면서 그 가격이 급등하고, 무거운 무게에 부상자가 자주 발생했기 때문에 이를 금지하게 되었다.

얼마나 무거워 보이는가! 그리고 저 가발은 가격이 얼마나 되겠는가!

무예도보통지언해한국학중앙연구원

창술과 검술을 다룬 책도 한글로 제작되었다.

무예도보통지언해 무예도보통지언해(1790)한국학중앙연구원

무관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그림과 함께 한글 설명을 읽으면 누구나 창술을 익힐 수 있었다.

조선 정부의 간택단자(揀擇單子)(조선 1882년 (고종 19년))한국학중앙연구원

여성의 삶과 목소리

조선은 다른 전근대 사회와 마찬가지로 철저히 남성 위주의 사회였다. 이러한 조선 사회에서 한글은 여성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조선의 여성들은 한글 문헌의 소비자이자 작가로서, 점차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한글로 작성하고 서로 나누었다. 여기서부터는 여성이 집필했거나 혹은 당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문헌을 살펴보자. 앞으로 나올 다양한 분야의 여성 문헌은 조선시대 여성의 저평가된 삶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것이다.

언문후생록 언문후생록(19세기 후반 ~ 20세기 초)한국학중앙연구원

사람의 기억과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음식조리서가 한글로 편찬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만두와 과자를 만들 수 있다. 이 책을 남겨준 여성에게 감사를!

언문후생록한국학중앙연구원

석박김치를 담그는 방법도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남겼다.

여사서언해 여사서언해(19세기 후반 ~ 20세기 초)한국학중앙연구원

여성들이 가져야 할 태도와 몸가짐을 정리한 <여사서>도 한글로 간행되었다.

여사서언해한국학중앙연구원

왕실에서 편찬한 책으로, 궁체로 쓴 글씨가 매우 아름답다.

소훈이씨 치제문 소훈이씨 치제문(1721)한국학중앙연구원

먼저 떠나간 소훈 이씨를 그리워하며 영조가 지은 글은 한글로 번역되어 그녀의 제사를 지낼 때 읽혔다.

이 글을 대신 읽을 궁녀를 위하여 쉬어야 할 곳을 붉은 점을 찍어 알려주는 세심한 배려가 보인다.

1644년 적모이씨 분급문기(1644)한국학중앙연구원

지방의 한 여성은 재산을 분배하면서 직접 한글로 문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한글은 여성이 주체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

미상의 홍루몽(紅樓夢)(조선 후기)한국학중앙연구원

소설과 일기

한글의 창제와 함께 조선의 사람들은 누구나 길이가 긴 산문, 소설, 그리고 일기를 집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작가층과 이러한 작품들의 인기는 한글의 폭넓은 사용을 보여준다. 여기에서는 한글 소설을 통해 역사가 당대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재해석 되었는지 알아보고, 다른 문헌에서는 다루지 않는 그 시대 삶의 여러 모습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미상의 낙셩비룡(洛城飛龍)(조선 후기)한국학중앙연구원

한글 소설은 장서각에만 약 500여종 소장되어 있다. 이것은 모두 왕실에서 보관하던 것이다.

낙천등운(19세기)한국학중앙연구원

민간 소설을 포함하면 매우 방대한 양의 소설들이 읽혀졌던 것을 알 수 있다. 한글의 반포는 다양한 문학작품의 저작과 독자층의 확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학석집한국학중앙연구원

효명세자가 여동생을 위해 자신의 시를 한글로 번역해서 선물하기도 했다.

산성일기 산성일기(조선 후기)한국학중앙연구원

비극적인 병자호란의 하루하루를 기록한 <산성일기>도 한글로 쓰여 전해졌다.

산성일기한국학중앙연구원

남한산성 안에 갇혀 항전할 때의 고통을 여과없이 기록하였다.

산성일기한국학중앙연구원

<산성일기>는 같은 내용을 다른 사람이 베껴 쓴 것이 출판될 정도였다. 서체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무오연행록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에서 중국으로 사행하고 돌아와 쓴 <무오연행록>과 같은 여행기도 한글로 번역되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영조의 어제자성편(御製自省編)(조선 1746년 (영조 22년))한국학중앙연구원

한글

570여 년 전 한국어는 중국의 글자를 빌려 한국인의 생각과 경험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말과 글이 다른데다 한자는 수가 많고 어려워 백성들은 소통이 힘들었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는 모든 백성들이 쉽게 글을 익히고 쓰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었다. 모든 소리를 글로 담을 수 있는 한글은 한국인에게는 큰 보물이다.

제공: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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