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류의 바다

국립해양박물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약 200여 년 동안 12회에 걸쳐 일본에 파견된 평화적 외교 사절단을 조선통신사라고 한다. 한양에서 시작해 일본 에도까지 3,000km가 넘고, 기간은 무려 6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걸린 사절단이었다. 4~500명에 이르는 대규모 행렬이 머무는 곳에서는 성대한 환영 행사가 열렸고 현지인과 다양한 교류를 하였다. 이렇게 200여 년 간의 평화 관계 속 성신誠信 교류는 다양한 분야의 문화와 자료를 남겼다. 한∙일 양국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공동으로 총 111건 333점 자료를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의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였다. 그 결과, 201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의 최종 심사를 통과하여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중에 국립해양박물관 자료가 4점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표해록>과 같은 기록물로 바닷길을 통한 조선과 명나라의 교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수창시 酬唱詩
성완(成琬), 이담령(李聃齡), 홍세태(洪世泰), 야마다 겐킨(山田原欽) | 1683

‘수창酬唱’은 시가詩歌를 주고 받으며 부른다는 의미이다. 이 자료는 1682년 8월 29일에 일본인 야마다 겐킨(山田原欽)이 조선의 통신사 일행과 수창한 시를 필사한 것이다. 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제술관 성완(成琬)과 이담령(李聃齡), 홍세태(洪世泰) 등이 일본인 야마다 겐킨과 주고받은 시를 모은 두루마리 형태의 자료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2017)

‘조선의 시인이 신선이 타는 배와 말을 타고 와서 일본 도처에 새로운 흥취를 일으킨다仙査驛馬載詩人 到處定知發興新.’라는 표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본 문인들에게 통신사와의 문학 교류는 여러 면에서 매우 흥미롭고 의미 있는 기회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통신사의 조·일 문학 교류는 하나의 전통으로 정착되었으며, ‘사행 문학’이라는 문학의 한 범주를 형성하였다.

봉별시고 奉別詩稿
마츠자키 고도(松崎慊堂), 우에키 아키라(植木晃) | 일본, 1811

1811년(순조 11) 통신사 일행을 송별하면서 일본인들이 지은 시이다. 신미년 통신사는 윤3월 12일에 동래에서 출항하여 29일에 대마도 부중府中에 도착하였고, 7월 3일에 부산으로 돌아왔다.
앞의 1수 봉별도호이군奉別都護李君은 통신사 영접을 위해 파견된 당시 일본 최고의 유학자 마츠자키 고도(松崎慊堂)가 통신부사 이면구(李勉求)에게 지어준 칠언배율七言排律의 송별시이다. 이면구의 인품과 글씨에 대한 칭송과 이별 후의 그리움이 담겨 있다.
뒤의 8수 공부단율팔장요봉기恭賦短律八章遙奉寄는 칠언율시七言律詩로 지어졌는데, 동래 발항 전인 3월 15일에 지은 것으로 보아 일본인 우에키 아키라(植木晃)가 조선통신사를 송별하면서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행으로 일본에 성대한 이름을 남길것이라는 칭송과 양국의 우호에 대한 바람 등이 담겨져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2017)

시고 詩稿
동강 피종정(東岡 皮宗鼎) | 1811

1811년(순조 11)에 통신사의 사자관으로 일본에 간 동강 피종정(東岡 皮宗鼎)이 쓴 오언시이다. 사자관은 각종 문서나 문헌을 정사하는 일을 맡은 중앙관원이었다. 내용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소재로 삼았다. 왼편에 ‘조선동강朝鮮東岡’이라고 쓴 것으로 보아 일본인에게 선물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2017)

도화소조도 桃花小鳥圖
이의양(李義養) | 1811

조선 후기 화가, 이의양(1768~?)이 1811년(순조 11)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건너갔을 때 그린 그림으로 추정된다. 그림 좌측 상단에 ‘조선이신朝鮮爾信’ 이라는 이의양의 자字와 주문방인 2과가 찍혀 있고, 뒷면에는 도화소조도桃花小鳥圖라는 명칭이 기재되어 있어 그림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이의양은 여러 차례 각종 궁궐 일에 참여한 화원 화가 였으며, 당시 도화서圖畫署 화가라는 신분 자체가 직업 화가로서는 최고의 영예였다. 1816년부터 1826년까지 화원 화가 중 뛰어난 자를 뽑아 규장각에 배속시켜 왕의 지시를 받는 차비대령화원 시험에서도 수십 차례 참가해 여려 차례 일등했던 사실이 있는 점을 미루어보아 그의 상당한 회화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2017)

응도 鷹圖
이의양(李義養) | 1811

조선 후기 매 그림은 대일 외교상에서 대표적인 선물로서 통신사가 가져가는 예단이었다. 비단에 한 마리 매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별다른 제발은 없으나 상단 왼편에 있는 ‘이신爾信’이라는 서명署名과 ‘이의양인李義養印’ 인장으로 작가를 알 수 있다.

매서운 눈빛의 표현 등에서 매의 기질이 잘 묘사됐고 부리에 송곳니처럼 나온 치상돌기齒狀突起가 정확하게 표현돼 이 새가 우리나라에서 해동청海東靑 혹은 송골매로 불리는 매 임을 정확하게 나타냈다. 숙련된 필치로 그림 속 매의 몸 깃털을 그렸고 꼬리 쪽으로 모인 깃털의 문양을 한 두 번의 붓질로 표시한 뒤에 그 끝을 먹으로 선염한 표현법은 큰 시간을 들이지 않고서도 그림을 완성하려는 의도인데 수요에 쫓겨 그렸다는 정황으로 읽힌다.

조선과 일본이 문화 교류 속에서 매 그림이 제작된 사례는 적지 않게 확인된다. 매는 동아시아에서 용맹의 상징으로 여겼으며 통치자, 현자賢者, 영웅 등에 빗대어졌고 더구나 일본에서 매 사냥은 최고 지배자를 나타내는 지표였다. 또한, 기록을 보면 17세기부터 조∙일 교역품 중에 쌀 다음으로 중요한 대상이었다. 매의 상징성과 수요 두 측면은 당연히 시각적 조형물의 생산과 소비를 부추겼고, 18세기부터는 조선에서 일본 수출용 매 그림 제작이 부쩍 늘어났다.

조선인 의복 기물도 朝鮮人 衣服 器物圖
일본

조선의 의복과 기물 등 박물博物을 분류하고, 각 명칭과 크기를 적어 기록한 자료이다.

통신사선도 通信使船圖
일본, 18세기 말~19세기 초

일본의 화가 이시자키 유시(石崎融思, 1768~1846)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파도치는 물결과 네 개의 발톱을 지닌 청룡이 그려진 선박에서 돛을 내리고 돛줄에서 곡예 줄타기를 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통신사의 배를 장식한 용의 형태는 일본인들에게 위용 있는 용두선으로 인식되었고 아리타(有田)산의 <조선인 도해선문 접시朝鮮人渡海船文長皿>와 같이 살아있는 용두를 표현한 선단도 작품도 다수 전하고 있다. 또한, 공중의 마상재를 연상시키는 돛줄타기는 목판본으로 남아있는 <조선인 도해선도朝鮮人渡海船圖>와 유사한 구성이다.

판옥板屋의 형태와 색감은 붉은 칠과 흰 칠을 한 화려한 모습으로 그려졌고 이는 도쿄경제대학 도서관 소장의 『조선인내행렬기朝鮮人來行列記』(1748)에 묘사된 가마 형태와 동일한 지붕 모양으로 계미사행1643년 부사 조경(趙絅)이 쓴 『동사록東槎錄』의 「화방누선설畵舫樓船說」에 기록된 가옥형 배의 설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자료는 14명의 통신사 인원이 그려져 있다.

통신사 선단도
일본, 18세기

입항하는 통신사선단과 항구 주변의 경관을 세로 화폭에 펼쳐서 조밀하게 담아낸 작자미상의 그림이다. 좌측 하단부에는 작은 배에 갈아타고 뭍으로 향하는 통신사 고관들의 모습과 선창에서 일행의 도착을 기다리는 일본 사람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작자 미상의 이 그림은 카노 탄신(狩野探信, 1785–1835)이 그린 두 종류의 “조선통신사선단도병풍(朝鮮通信使船団図屏風)”을 조합하여 모사한 것으로 18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통신사 행렬도 朝鮮通信使 行列)
일본, 19세기

1711년의 행렬을 그린 통신사 행렬도를 후대에 배껴 그린 이모본이다. 석채를 한 채색 상태가 좋고, 표정과 무늬 표현 등이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통신사 행렬의 순서는 다른 행렬도와 다르게 부사와 종사관이 행렬에서 빠져있는 것이 특징이다.

역관 사행도 譯官 使行圖
일본, 1839(장황 1925)

1838년天保九年 일본 쓰시마對馬島를 방문한 역관사譯官使, 問慰行가 쓰시마 번주가 거주하던 이즈하라嚴原의 바바스지馬場筋 거리에서 행렬하는 모습을 보고 그린 그림이다. 현재의 두루마리에는 행렬의 서두를 이끄는 기수와 취타대, 가마에 좌정한 당상 역관의 행렬은 있으나 당하관의 모습은 누락되었다. 또한 행렬의 마지막을 호위하는 일본의 역관 봉행譯官奉行과 정봉행町奉行이 뒤따르고 있어 문위행의 중요 장면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기수, 군관, 소동, 취타대 등의 의복과 구성은 물론 주칠朱漆의 서계함書契函, 흑칠黑漆의 관모함冠帽函, 소통사小通事의 서판書板 표현 등 문위행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는 주요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귀로도중도 歸路道中圖
일본, 이케다 테이사이(池田貞齊)

이 작품은 에도東京에서 조선朝鮮國까지의 여정을 상세하게 그린 파노라마 형식의 회화식 지도 그림으로 10m에 달하는 2권의 두루마리 형식이다. 1권은 에도東京로부터 나고야名古屋를 지나 교토京都까지, 2권은 교토京都에서 조선까지의 육로와 해로를 중심으로 일본의 주요 도시와 사찰, 신사神社 및 명승지 등 풍부한 지리적 정보가 자세하게 표현된 회화식 지도 성격의 그림이다. 박물관 소장 자료는 19세기 전후 에도에서 조선에 이르는 전체 경로를 상세하게 그려낸 그림으로, 한일관계사 및 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1권에서 조선통신사 행로와 관련된 주요 지명은 에도江戶, 시나가와品川, 오이소大磯, 오다와라小田原, 세이켄지淸見寺, 에지리江尻, 시즈오카靜岡, 아라이江尻, 요시다吉田, 도요하시豊橋라고도 함, 아카사카赤坂, 나고야名古屋 등이다.

2권에서의 조선통신사 행로와 관련된 주요 지명은 교토京都의 비와코琵琶湖로부터 오사카大阪, 요도淀,효고兵庫, 무로쓰室津, 우시마도牛窓, 토모노우라鞆浦, 가마가리蒲刈, 가미노세키上関, 시모노세키下関, 옛 지명 아카마카세키赤間関, 아이노시마藍島(또는相島),이키壹岐, 조선국朝鮮國 등으로, 통신사 행로의 주요 지명이 대부분 확인된다. 특히 2권 중 오사카성에서부터 조선까지는 세토내해瀬戸内海의 연안을 지나 간몬해협関門海峡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붉은 선으로 항로가 표시되어 있다. 조선통신사가 항해했던 해로뿐 아니라 통신사 일행이 작은 배로 갈아타서 이동했던 주요 거점의 강 지류까지도 붉은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박주부 초상 朴主簿 肖像
19세기

족자 형식에 일본 종이를 사용한 이 그림에는 한 인물이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위에는 장문의 글이 적혀 있다. 장방형의 화면이 글과 인물 묘사 공간으로 균등하게 나누어져 있는 형식은 조선의 그림에서 찾기 쉽지 않다. 이런 형식은 일본 회화에서 확인이 된다. 이렇듯 이 작품은 여러모로 일본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은 화면 속의 글과 화풍에서도 확인이 된다.

이 점은 화면 속의 글과 화풍에서도 확인이 된다. 화면 위쪽에 있는 글은 자字가 도경道卿인 박재창(朴再昌, 1649~1720년 이후)의 제사題辭이다. 이 제사와 끝에 찍힌 인장은 그림에 담긴 사연을 말해주며, 시기 등에 대한 단서를 품고 있다. 그는 1713년에 예조에서 대마도를 지배하는 다이묘大名에게 보내는 사절단, 즉 문위행問慰行의 일본어 통역관 수장堂上譯官으로 참여하였다.

이 초상화의 제작지는 복식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인물은 흉배胸背가 달린 관복과 비슷한 옷을 입고 품대品帶를 차고 있어서 마치 조선이나 명明의 관복官服을 연상시킨다.

죽천이공행적록 竹泉李公行跡錄 (乾)
조선

『죽천이공행적록』은 1624년 인조(仁祖, 재위 1623~1649)의 책봉을 위해 주청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죽천 이덕형의 사행록이다. 1624년 6월 20일부터 10월 13일까지 사행의 전반부가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날짜 별로 기록되어 있다. 이 중 7월 24일부터 8월 23일까지는 해로사행에 관한 내용이다. 사행은 정사 이덕형 외 부사 오숙과 서장관 홍익한 삼사가 참여하였고, 이들은 여섯 척의 배와 사백여 명의 격군이 동원된 대규모 사행 선단을 이끌고 평안도 선사포에서 시작하여 중국 산동성 등주로 향하는 총 3,760리의 바닷길을 따라 항해하였다.

한사통어집 韓使通語集
일본, 1719

1719년(숙종 45)에 일본의 문인 핫다 세키겐(八田碩軒)이 필사한 책이다. 같은 해 11월6일 혼간지本願寺, 현 오사카에 위치에 마련된 통신사의 숙소에서 에도 막부의 제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하여 파견된 정사 홍치중, 부사 황선, 종사관 이명언, 제술관 신유한 등과 함께 필담을 나눈 것을 필사하였다.

서로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을 비롯하여 시를 지어주거나, 소개한 호 외에 다른 것이 있는지, 통역하는 방법 등 궁금한 점에 대해 문답을 주고받았다.

표해록 漂海錄
18세기

최부(崔溥, 1454~1504)가 풍랑으로 중국 절강성 영파부에 표착한 후 의주로 귀국하기까지의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

성종의 왕명을 받아 『중조견문일기中朝見聞日記』라는 제목으로 저술한 것인데, 당시 명나라의 정치 및 사회제도, 군사와 교통, 자연환경, 해로, 기후, 도시의 모습과 풍속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15세기의 명나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부를 방문한 명나라 지식인들과의 대담 내용도 알 수 있어 조선 전기 양국의 문화 교류 양상 또한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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