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해외취업 및 이주 역사

한국국제협력단

이 전시는 경제 성장을 위해 국민들의 해외진출을 장려했던 1960-70년대 한국의 모습과 국민들의 피와 땀이 서린 경험들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해외개발공사의 발족

1960년대 한국은 농업중심의 경제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열악한 사회 시설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국내경제를 활성화시키고자 정부주도의 경제개발을 추진하게 되었고 이는 곧 외국으로부터의 외화유입 등을 통한 방법을 의미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세계 속에 한국을 심자'는 기치를 내걸고 1965년 10월 6일 한국해외개발공사가 창립되었습니다.

재단법인 한국해외개발공사는 국내의 잉여인력을 해외에 진출시키고 또 이주를 장려하면서 실업자감소, 인구조절, 국제수지개선, 외화획득, 교역증진 등을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간호사의 독일 파견업무는 가톨릭교회와 재독 한인의사들에 의해 소규모로 이루어지다가,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한국정부가 직접 나서서 인력 업무를 맡았습니다.

당시 독일병원협회장이 한국에 방문하여 한인 간호사 인력 송출에 대한 계획을 협의하였습니다.

파독광부 및 간호사의 선발과 지원

1960-70년대 한국은 대학을 졸업해도 변변한 취직자리가 없던 시절로, 파독 광부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파독광부의 선발조건은 20~35세 남성으로 1년 이상 탄광 근무경력이 있는 자였으나 실제 광부경력이 있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특히 초기에는 대학 재학생 등을 포함한 젊은이들이 돈을 벌고 다양한 꿈을 이루고자 독일행을 지원했습니다.

한국해외개발공사는 파독간호사의 선발조건으로 20~30세 미혼 또는 독신녀로 간호원 자격 소지자라고 명시하였고, 계약기간 3년에 월급 627마르크(157달러)가 제공된다고 공고하였습니다.

한국의 광부들은 독일의 지하 1,200m 막장에서 땀과 탄가루를 뒤집어쓰고 자기 몸만큼 무거운 동발을 쉼 없이 뽑고 또 세워야 했습니다. 메탄가스가 폭발하여 지반이 무너지기도 하고 각종 장비에 의한 안전사고로 지상으로 영원히 올라오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발생하였습니다.

1966년 경제기획원이 독일에 간 간호사들에 관해 보건사회부에 질의하는 문서입니다. 주요 내용은 ‘현재 한국의 간호원들이 민간 자격으로 독일에 진출해 있는데 국가 간 협정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간호사들의 왕복 여비를 독일측에서 부담하는지’ 등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광부에 의해 쓰여진 일기장의 일부입니다. 그는 체력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기에 인내심을 기를 수 밖에 없던 고통스러운 상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상단에는 좁은 터널을 기어가며 몇 시간 내내 일을 해야했던 그의 모습을 그려놓은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말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에서 광부와 간호사들은 독일 국민이 감탄할 정도로 성실하게 일했고 그렇게 번 돈 대부분을 고국의 가족들에게 송금하였는데, 그 총 금액은 1억 달러가 넘었습니다. 1달러의 외화도 소중했던 당시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이 송금한 돈은 한국경제성장에 필요한 소중한 종자돈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서독방문

1964년 12월 6일 오후 박정희 대통령은 하인리히 뤼프케 서독대통령의 초청으로 서독 방문에 나섰습니다. 방문의 공식이유는 '라인강의 기적'이 무엇인지, 보다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1966년부터 1977년까지 약 만 여명의 간호사와 8천 여명의 광부가 서독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국가정책사업인 해외인력 진출사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고자 한국해외개발공사는 서독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중동 등 세계 각국으로 해외이주 및 취업의 알선과 이에 따른 모집, 송출, 신체검사, 교육훈련 그리고 해외진출자에 대한 현지지도, 정착지원 등의 사후관리까지 힘썼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해외인력 진출사업은 외화의 획득 및 선진기술 도입 등을 통하여 한국의 장기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70년대 한국인들은 광부, 간호사, 연수생, 의사 교육생 등으로 해외 곳곳에 파견되었습니다.

먼 타국에서 흘린 선조들의 땀과 눈물 덕분에 한국의 국력이 증진될 수 있었고, 오늘날과 같은 경제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제공: 스토리

전시기획 l 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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