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의 행차

국립고궁박물관

"화성능행도 병풍(華城陵行圖 屛風)"을 통해 보는 조선왕실의 행차

<정조 수원 화성 행차 그림[華城行幸圖屛]>은 1795년(정조 19)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 누이 청연군주·청선군주와 함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화성 현륭원(顯隆園) 참배 및 혜경궁의 회갑잔치를 위해 경기도 화성에 행차하였을 때 거행된 8가지 주요 행사 장면을 그려 만든 것이다.

‘한양으로 돌아오는 행렬’은 화성에서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숙박을 위해 시흥 행궁으로 가는 왕실 행차의 행렬을 묘사한 것이다.

화면 중간 부분에 둑과 교룡(蛟龍) 깃발을 필두로 한 국왕 의장 행렬로

혜경궁 홍씨의 가마, 이를 3중으로 호위하고 있는 군병이 보인다. 호위 군병 등 6,200여 명에 달하는 인원과 1,400여 필의 말이 동원된 행렬의 장대함이 한눈에 느껴질 정도로 탁월한 구성력을 보여준다.

정조의 말

혜경궁 홍씨의 가마

수라를 실은 수레, 음식을 준비하는 막차(幕次)

시흥행궁

‘환궁길 한강 배다리’는 노량 행궁에서 출발해 배다리를 통해 한강을 건너 용산으로 향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배다리의 가운데 홍살문을 혜경궁 홍씨의 가마가 지나고 있으며, 그 뒤로 정조의 말이 뒤따르고 있고, 청연군주·청선군주의 가마는 한강을 건너기 위해 노량 행궁 앞에 대기하고 있다. 배다리에는 총 36척의 배가 동원되었으며 오방색 깃발이 꽂혀 있다. 어가 행렬을 구경하는 백성들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노량행궁

청연군주, 청선군주의 가마

정조의 말

혜경궁 홍씨의 가마

국왕의 지휘권을 상징하는 의장기로 용기(龍旗), 용대기(龍大旗), 황룡대기(黃龍大旗)라고도 한다.

어가 행렬 시 주로 선두 호위군사와 국왕의장 사이에 위치하여 국왕이 전체 행렬을 움직이고 통솔함을 보여준다.

각의 옥색 바탕에 올라가는 용과 내려오는 용 2마리와 구름 문양을 그리고, 주변에 불꽃 모양을 나타내는 테두리[화염각(火焰脚)]를 둘렀다.

3m에 이르는 이 깃발은 어가 행렬 시 군복을 입은 장교가 말을 탄 채 받쳐 들고 4명의 군사가 깃대에 잡아맨 끈을 사방에서 한 가닥씩 잡아 당기게 되어 있다.

의장기는 그림의 내용에 따라 종류가 구분되는데 청룡·백호·주작·현무는 동서남북을 지키는 방위신이다. 어가 행렬의 의장기에 사신(四神)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중국의 당나라 때부터다. 대가노부와 법가노부에 사용되었고, 대오방기로 군대의 진영(鎭營)에도 쓰였다.

백호 깃발

주작 깃발

현무 깃발

의장은 크게 의장기, 의장물, 악기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조 수원 화성 행차 그림[華城行幸圖屛]> 제7폭 ‘한양으로 돌아오는 행렬[환어행렬도(還御行列圖)]’ 중 교룡기 뒤로 고취악대가 따르고 있다.

어가행렬의 앞에 위치하는 전부고취(前部鼓吹)는 태평소·나발·나각·북·장구·징·자바라·운라[점자(占子)] 등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 태평소는 행진음악을 비롯하여 종묘제례악, 농악이나 굿, 불교의식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나각은 소라껍데기 끝부분에 구멍을 내어 부는 악기로, 태평소, 징 등과 함께 행진음악인 대취타(大吹打) 연주에 사용된다.

의장물에는 권력·군사력을 상징하는 도끼·칼·창 등이나 그늘을 만들어 주는 등 실용적 성격의 당(幢)·개(蓋)·산(傘)·부채[선(扇)] 등이 있었는데, 2m 정도의 붉은 자루 위에 그 형태를 올렸다.
그 중, 금장도와 은장도는 나무로 만든 칼을 금색과 은색으로 칠하고 각종 길상문을 그려 화려하게 장식한 의장물이다.

반차도 부분

의장물에는 권력·군사력을 상징하는 도끼·칼·창 등이나 그늘을 만들어 주는 등 실용적 성격의 당(幢)·개(蓋)·산(傘)·부채[선(扇)] 등이 있었는데, 2m 정도의 붉은 자루 위에 그 형태를 올렸다.
그 중, 금월부와 은월부는 용이 도끼를 물고 있는 나무 조각을 각각 금칠・은칠하여 봉에 꿰어 만든 의장물이다.

반차도 부분 중 금장도

반차도 부분 중 은장도

의장물에는 권력·군사력을 상징하는 도끼·칼·창 등이나 그늘을 만들어 주는 등 실용적 성격의 당(幢)·개(蓋)·산(傘)·부채[선(扇)] 등이 있었는데, 2m 정도의 붉은 자루 위에 그 형태를 올렸다.
그 중, 봉황부채는 방형의 부채 모양을 한 의장물이다. 종이로 초배접한 후 붉은 명주로 배접하고 그 위에 날아오르는 봉황을 좌우에 그렸다. 앞뒤 양면의 문양이 같다. 푸른색 명주로 드림을 드리웠다.

의장물에는 권력·군사력을 상징하는 도끼·칼·창 등이나 그늘을 만들어 주는 등 실용적 성격의 당(幢)·개(蓋)·산(傘)·부채[선(扇)] 등이 있었는데, 2m 정도의 붉은 자루 위에 그 형태를 올렸다.
그 중, 쌍용부채는 둥근 부채 모양을 한 의장물로 양쪽으로 청룡과 황룡 두마리를 내려오는 모습과 오르는 모습으로 그렸다.

가마는 의례를 행하기 위한 왕실의 주요 이동 수단이다. 왕실 가족들은 궁궐 내의 행사와 궁궐 밖의 행차를 위해 가마를 타고 이동하였다. 그 중, 연은 지붕과 벽체가 있는 가마로, 타는 사람에 따라 문양과 장식 등에 차등을 두어 만들었다.

반차도 부분 중 연(輦)

가마는 의례를 행하기 위한 왕실의 주요 이동 수단이다. 왕실 가족들은 궁궐 내의 행사와 궁궐 밖의 행차를 위해 가마를 타고 이동하였다. 그 중, 여는 지붕과 벽체가 없는 가마로 간단한 이동 때 주로 사용하였다.

도성 밖 먼 길을 가야 할 때에는 말이 끌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가마는 가교(駕轎)라고 한다. 1795년 정조가 어머니와 함께한 화성 행차 때 혜경궁 홍씨가 사용한 정가교(正駕轎)가 이와 같은 형태였다.

사람이 끄는 외바퀴의 높은 탈것이다. 세종 때 처음 만들어진 조선 고유의 것이다. 2품 이상의 관원이 탔으나 무관은 탈 수 없었다. 앉는 자리가 높게 올라가 있어 권위의 상징이었으므로 왕자와 부마도 타고 다녔다.

대한제국기에 새롭게 등장한 가마로 전체를 봉황 문양으로 화려하게 꾸몄다. 지붕과 출입문을 비롯한 가마의 네 측면을 봉황으로 장식하였고, 길이를 짧게 한 붉은색 휘장에도 봉황을 금박하였다. 지붕의 네 모서리의 봉황 장식에 유소를 길게 드리웠다.

제공: 스토리

국립고궁박물관

최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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