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31. - 2016. 12. 31.

유물로 보는 130년의 기억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이화 창립 130주년 기념 특별전

유물로 보는 130년의 기억
창립 130주년을 기념하여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은 유물자료를 통해 이화 130년을 추억하는 전시를 마련했다. 1886년 미국 감리교 해외 여성선교부 선교사 메리 F. 스크랜튼(Mary F. Scranton)부인이 정동의 자택에서 한 명의 여성을 가르치며 이화 130년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당시 이화는 한국 여성을 위한 최초의 교육기관으로서, 여성들이 사회인으로 진출하여 남녀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이화는 일제강점이라는 암울한 시기를 극복하고, 1946년 국내 최초로 종합대학교 설립인가를 받아, 여성고등교육의 새 지평을 열었다. 1950년대 한국전쟁이라는 국가적 수난시기를 극복하고, 1960-70년대에는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대학으로 발전하며, 당시 여성문화를 선도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에 이르러‘학문하는 이화, 연구하는 이화’라는 기치아래 대학 본연의 기능을 강화하였다. 1996년 세계여자대학 최초 공과대학 설립은 당시 여자대학의 위기라는 시대적 상황을 극복하고, 종합대학으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더욱 견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대에 이르러 이화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화교가 철거되고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가 건설되면서, 이화캠퍼스는 교육과 문화공간 이자 국내·외의 명소로 자리매김하였고, 21세기에 맞는 여성 리더 양성을 위한 다양한 변화를 지속하고 있다. 이렇듯‘이화 130년’의 역사는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 하며 발전하고 있다.‘이화 130년’은 이화만의 역사가 아닌, 한국 근현대사·교육사·여성사의 흐름이며, 미래 이화의 방향과 정체성을 생각해보게 한다.
EWHA 이화 梨花
다섯 꽃잎과 중심에 여러 개의 술이 있는 꽃무늬는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매화梅花 등의 도상을 통해 형상화되어 왔다. 근대기에 들어 이러한 꽃무늬는 정형화된 모습과 명칭을 갖춘 도안으로 정착되는데, 대한제국의 황실 문장이자 국가문장으로 사용된 이화문李花文도 그 한 예이다. 초기의 이화문은 전통적인 매화와 유사하면서도 우표, 화폐, 예복, 훈장 및 궁중용 공예품과 양식기 등에서 각각 세부가 상이하게 나타난다. 오늘날 알려진 것과 같이 다섯 개 꽃잎이 정확히 구획되고 각 잎마다 가운데가 긴 세 줄기 꽃술을 갖춘 이화의 형태는 190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일반화되었다. 이후 이러한 도안은 일종의 전형으로 배꽃과 같은 유사한 특징의 다른 꽃무늬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10~20년대 이화학당의 공식 문서에서 보이는 이화梨花(배꽃)는 뚜렷하게 구획된 다섯 개 꽃잎에 각 잎마다 꽃술이 3개씩 들어있는 모습으로, 대한제국기 이후 우리나라 황실 문장으로 사용되었던 이화李花(오얏꽃)의 도안과 매우 흡사하다. 오얏꽃 문장과 구별되는 배꽃 문장의 형태가 나타난 것은 1930년이다. 당시 이화여전의 밴 플리트 교수가 이화여전과 보육학교의 교표를 새롭게 디자인했다고 전해지며, 두 개의 원을 그리고 가운데 남대문 위쪽에 태극, 아래쪽에는 작은 배꽃을 두었다. 몇 년 뒤에는 원 바깥에 끝을 둥글린 다섯 꽃잎을 그리고 아래쪽에 태극, 위쪽에는 십자가를 두었으며 태극 좌우편에는 이화여전과 보육학교의 명칭 및 창설연도인‘1910’과‘1925’를 넣었다. 하지만 1930년대까지는 새로 제정된 교표와 함께 기존 도안도 일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1939년경에는 일제 총독부가 교표에서 남대문과 태극을 없애는 등 수난을 당하였으나, 해방과 함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현재 교표는 1930년에 디자인된 기본틀에 이화학당 창설연도와 종합대학교 설립연도인‘1886’과‘1945’를 새겼다.
1886-1945
이화의 시작은 19세기, 한국사회에서 봉건적인 틀에 갇혀 억압받고 소외된 삶을 살았던 여성의 지위와 인권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886년 미국 감리교 해외 여성선교부에서 한국으로 파견된 스크랜튼 여사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여학교인 이화학당을 설립하고 초대 당장을 지냈다. 그녀는 한국 여성들에게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주고, 존엄성을 회복시키기 위해 소명을 다하였다. 1910년 한국은 일본 통치하에 온갖 수난을 겪었으나 이화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어려운 현실의 억압을 뛰어넘어 여성의 무한한 발전과 자유의 성취를 이루려는 불굴의 의지를 보였다. 이에 프라이 당장은 대학과를 설립, 여성 고등교육의 새 장을 열었으며 훗날 종합대학교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화는 1925년 이화여자전문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고, 기존의 교양 중심 교육에서 탈피하여 전공학과를 설치하고 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실시했다. 1935년에는 신촌으로 캠퍼스를 이전하여 진보적이고 세계적인 종합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
1945-1980
이화는 일제강점의 암울한 시기를 극복하며, 1946년 국내 최초로 종합대학교 설립인가를 받아, 여성고등교육의 새 지평을 열었다. 1950년 대학원의 설립 으로 최고의 여성 지도자 양성 기관이자 연구 중심 대학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이러한 주목할 만한 발전에는 당시 김활란 총장을 비롯한 한국인 교수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고, 이화는 보다 많은 여성들에게 전문적 고등교육의 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50년 한국 전쟁과 1953년 서울환도라는 국가적 수난 시기에도 이화는 의연히 수업을 재개하고, 파괴된 건물을 재건했다. 특히 1956년 개교 70주년은 전쟁의 상흔을 씻고 재도약의 계기로 이어졌다. 1960-70년대의 이화는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대학으로 발전하며, 한국사회의 여성문제 인식의 틀을 마련하였다. 또한 당시 여성문화를 선도하며, 쌍쌍파티, 메이퀸 대관식 등 이화 창립 기념행사가 각종 언론 매체의 특종 기사가 되기도 했다.
1980-2016
이화 130년의 역사는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며 발전하였다. 1980년대 이화는‘학문하는 대학, 연구하는 대학’이라는 새로운 교육이념 아래 학제를 정비하고, 교육여건과 연구풍토 확립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였다. 1996년 세계여자대학 최초 공과대학 설립은 당시 여자대학의 위기라는 시대적 상황을 극복하고, 종합대학으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더욱 견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대에 이르러 이화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화인의 추억이 어린 이화교가 철거되고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가 건설 되면서, 이화캠퍼스는 교육과 문화공간이자 국내·외의 명소로 자리매김하였고, 21세기에 맞는 여성 리더 양성을 위한 다양한 변화를 지속하고 있다.
이화인이 함께 만드는 이화 130년
<이화인이 함께 만드는 이화 130년>은 이화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재학생, 졸업생, 교직원, 이화 가족과 함께 만드는 참여형 전시이다. 이화인들은 2016년 4월부터 on/offline을 통하여 이화 교정의 옛 모습과 이화에서의 추억이 담긴 자료, 그리고 이에 담긴 이야기를 박물관에 제공 하였고, 박물관은 이 자료와 기록을 모아 새로운 형식의 전시영상을 제작하였다. 이화인들이 보내준 자료는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되어 새로운 영상으로 전시되고 있으며, 이 전시는‘130년 전시’홈페이지를 통해 2016년 12월 20일까지 참여할 수 있다. 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통하여 학생, 동창, 교직원, 이화 가족 모두가‘함께 이화 130년의 역사를 이루어왔음’을 기억하고 이화공동체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학교 구성원이자 박물관의 관람객이며 일반 대중인 이화 구성원과 전시를 함께 진행함으로써 대중과 소통하는 박물관 전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제공: 스토리

기획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총괄 장남원
전시진행 권민경, 이정선, 전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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