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7년

한국 전통 건축의 미

JO SanKu

전통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한옥 '북촌댁'

안동 하회마을

산새와 물세가 변함없는 배산임수의 명당, 하회마을은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공간이며,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Living Heritage)으로써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한국인의 삶이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결의문

마을을 둘러싸고 흐르는 낙동강 물길을 닮은 300여년 된 노송이 하회마을 북촌댁에 자리잡고 있다. 

집안의 융성과 번영의 마음을 담아 300여 년 전 류사춘공(건립자)이 하회의 주산인 화산에서 옮겨 심었다.

북촌유거 큰 사랑 뒤편에 있는 한국 소나무

북촌댁

하회마을의 중심에 자리잡은 북촌댁은 1797년에 처음 건물이 세워진 뒤 200여 년 동안 온전히 사대부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하회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집이다.

북촌댁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 솟을 대문

큰사랑채 '북촌유거'

북촌댁의 건축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자연의 넉넉함과 푸근함을 가장 잘 받아들인 곳이 북촌유거이다. 

방 사이의 미닫이문과 방과 대청 사이 5분합 비대칭 들어열개문을 올릴 경우 건물 전체가 하나의 공간으로 이루어진다.  

북촌유거 현판은 조선 말엽 철종 때의 명필인 해사 김성근의 글씨로 북촌이 기품있게 기거하고 있다는 뜻이다.

북촌유거는 가장 윗어른인 할아버지께서 거주하시던 사랑으로 간혹 외빈 접객용으로도 사용되었다. 
12폭 묵매도 병풍과 경상, 연상이 놓여있는 북촌유거 사랑방
사랑방 실내야경

북촌유거 누마루

누마루에 앉으면 하회마을의 지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하회의 주산인 화산을, 북쪽으로는 부용대와 낙동강을, 남쪽으로는 남산과 병산을 마주할 수 있다.

7대 '학서' 선조 과거급제 홍패와 5대 '석호' 선조 현판이 걸려있는 대청
누마루 전경

화경당 북촌에는 큰사랑인 북촌유거를 비롯해 전통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건물들이 많이 있다.

중간사랑 '화경당'

화경당은 경제권을 가진 바깥주인이 기거하던 사랑이며 편액은 학서 류이좌공의 당호로 가족과 친족 간에 화목하고 임금과 어른을 공경하라는 뜻으로, 석봉 한호의 글씨이다.

Hwagyungdang, occupied by male member with economical responsibility; the building has small maru area, surrounded by short banister.
화경당 쪽마루 난간과 화방벽
대나무 병풍과 경상, 장문갑이 놓여 있는 화경당 사랑방
정조대왕의 어필이 쓰여 있는 시권액자와 화경당 대청

작은사랑 '수신와'

손자가 기거하던 곳으로 사랑 중 가장 작은 규모이다. 방 오른쪽에는 어린 손자가 안채의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 중문을 통하지 않고 출입할 수 있도록 조그만 문을 달아 배려했음을 엿볼 수 있다. 

수신와 현판은 어렵게 사는 이웃을 의식해 언제나 삼가면서 낮추어 살라는 화경당 북촌의 정신으로 어릴 때부터 방을 드나들 때마다 쳐다보고 일깨우라는 어른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겠다.

수신와, 손자가 기거하던 곳으로 사랑 중 가장 작은 규모이다.
수신와 마루와 석란 병풍이 둘러있는 사랑방
수신와에서 본 사랑채와 대문채

북촌댁 '안채'

독특한 밭전 자형의 안주인이 기거하던 안채는 일상기거와 접객이 이뤄지며 옷가지와 안살림을 수장하던 곳이다. 안채는 평면상으로 사랑채와 한 채로 연속되어 있으면서도 그 구조에 있어 월등히 격이 높다.

안채의 경우 전체평면의 모양은 '□' 자형으로 되어 중앙에 마당을 둔 단일 건물로는 민가옥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며 웅장하다. 우람한 대들보와 높은 천장만 봐도 그 웅장함을 알 수 있다.

안채, 일상기거와 접객이 이루어지며 옷가지와 안살림을 수장하던 곳이다. 
길이가 7 m 의 굵고 긴 안채의 대들보와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연등 천장
안주인이 타턴 가마
사인교

안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부엌과 안방, 오른쪽에 아들과 며느리의 방으로 쓰는 건너방(윗상방)이 있다.  건너방 앞에 툇마루와 연결된 방(아랫상방)은 살림을 물린 노부모가 사용하는 방이다.

독특한 田 자형의 안주인이 기거하던 4칸 규모의 안방은 앞줄 좌(아랫방), 우(윗방)2방은 일상기거와 접객이 이루어지며 뒷줄 좌(골방), 우(찬방)2방은 옷가지와 안살림을 수장하던 곳이다.

독특한 田 자형의 안주인이 기거하던 4칸 규모의 안방
건넌방 툇마루
윗상방
아랫상방
안마당
안부엌, 아궁이를 이용하여 취사와 난방을 겸하였다.
원형이 보존된 안채 뒷벽

북촌댁 '후원'

북촌댁의 후원은 나지막한 산자락에 걸쳐 있는 언덕아래에 자리잡고 있으며, 보호수로 지정된 탱자나무가 있어서 탱화산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뒷동산은 겨울에는 매서운 북서풍을 막아주는 방풍(防風)의 역할을 해주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불러와서 더위를 식혀 주기도 한다.

450여년 된 탱자나무
사당, 외벽을 돌과 흙벽으로 쌓아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고 웅장해 보이도록 했다.
안별당, 후원 뒤의 공간은 원래 딸들이 살던 안별당이었으나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있다. 

다양한 문화유산

화경당 북촌에는 학문과 벼슬 정신이 끊어지지 않고 도성팔도지도, 쌍벽가, 문집, 독립운동의 기록 등 유무형의 유물들과 조선시대 선비정신이 집안 곳곳에 남아있다.

하회마을의 전설

엄청난 홍수로 마을 사람들이 강물에 떠내려가자 류도성 선생은 주저 없이 집 안에 쌓여 있던 춘양목 일체를 강물에 띄워 많은 사람을 구하였다. 

이때 강물에 던져졌던 춘양목은 선대로부터 이어서 짓고 있는 집을 완공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 마련해놓았던 귀한 건축자재였다. 하지만 마을 사람을 위해 단숨에 던진 류도성 선생의 도량과 배포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하회마을의 위대한 전설로 남아 있다.

북촌댁에는 오랜 세월동안 고귀한 정신이 깃들어있다.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다.

대부분의 대갓집과 달리 집 안에 행랑채를 짓는 대신에 마을 안에 노비들의 집을 지어주어 퇴근 후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소작료는 다른 부자들이 6, 7할을 받았지만 화경당은 5할을 받았고 사정이 어려우면 4할도 받았다. 석호 류도성의 도량과 후덕한 인품으로 소작인 혁명이라 할 수 있는 동학농민운동 때도 집은 무사할 수 있었다.

대갓집의 외거노비가 살던 가람집, 150년 이상된 초가 흙집
북촌댁 담장 바깥쪽으로 낸 화장실은 길을 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다. 
도성팔도지도, 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독도와 간도를 우리 영토로 표기하고 있는 역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세화, 새해를 송축하고 재액을 막기 위한 그림으로, 학서 류이좌 공이 새해 선물로 왕으로부터 받은 하사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촌댁을 방문하여 하회별신굿탈놀이를 관람하였다. 그밖에 한류스타 배용준을 비롯한 많은 인사들이 한옥스테이를 체험하였다.

화경당 북촌은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지혜로운 건축양식과 나라와 이웃을 먼저 생각한 참된 선비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선조가 물려준 모든 유산을 후대에 고스란히 전하기 위해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 오랜세월이 흘러도 그 품격을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다.

제공: 스토리

큐레이터 — 권태준
코디네이터 — 박수민, 구하영
주관 — (주)코자자
협찬 — (사)한옥체험업협회
제공 — 유세호 주손 , 북촌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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