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31. - 2013. 11. 20.

포, 선비정신을 입다

재단법인 아름지기

아름지기 기획전시 - 한국 전통 남성 복식 '포(袍)'
재단법인 아름지기 / 2013

선비의 옷,

청백(淸白)과 순명(純明)의 정신을 입다

선비 정신은 선비들의 삶의 지향점이자 일상의 문화로 발현되어 가깝게는 조선 시대에서부터 멀게는 삼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 정신문화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포(袍)는 조선 시대 선비들이 평상복으로 입던 다양한 종류의 겉옷입니다. 포의 간결한 선, 절제된 면,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색상에서 우리는 자연과의 교감, 깊은 학문, 자기 수양과 절제로 상징되는 남성의 멋과 품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선비들의 가장 대표적인 편복인 포는 선비의 정신과 문화가 빚어낸 미 의식의 산물로서, 맑고 깨끗한 성품과 더불어 예술적 면모까지 겸비한 선비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대변해줍니다.

아름지기는 포를 통해 한국의 전통적인 남성 의복 문화를 소개하고, 그 안에 담긴 멋과 아름다움을 많은 분에게 새롭게 선보임으로써 그 옛날 선비들의 삶에 자리하던 품격과 정신이 현대에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전문가와 함께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누비 중치막 Quilted Jungchimak> 유선희 Yu Seon Hee, W 51cm x L 135cm
현대 디자이너의 공간

포(袍), 선비 정신을 입다

조선의 선비는 21세기 사회가 요구하는 융합형 지식인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현대 지식인과 같이 자기 전공 분야만을 탐구하지 않았다. 진정한 인격체가 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하여 문학․역사․철학의 인문학은 기본이요, 더 나아가 이른바 풍류라 하는 시(詩)․서(書)․화(畵)를 교양으로 연마함으로써 학문과 예술의 일치를 추구한 융․복합적 지식인이었다. 시를 지으며 통찰력을 기르고, 붓글씨를 쓰며 정신 수양을, 그림을 즐기며 자연 속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감각을 키워나갔다. 우리의 선비들이 이렇게 자연과 예술 분야를 중요하게 연마한 것은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룰 때 완벽한 인격이 완성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학(小學)>에 ‘容貌必端莊, 衣冠必肅整’이라 하여 선비는 항상 의관(衣冠)을 단정히 하여 용모를 다듬고 절제된 생활양식을 유지하는 것을 기본으로 했다. 의복으로 예의범절을 가늠하던 조선 시대에는 관복뿐 아니라 평상시 집 안에서도 의관을 정제하고 포(袍)를 갖추어 입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선비의 옷, 관직에 나갈 때 입는 전형적인 형태의 관복이 아니라, 평상시 입는 편복(便服)은 그들의 품격 있는 정신문화가 빚어낸 미의식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선비 편복의 대표 주자인 다양한 디자인의 포 종류는 선비의 맑고 깨끗한 품격과 맞아떨어지고 거기에 예술적 감각을 겸비한 선비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대변해준다. 포의 간결한 선, 절제된 면,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색상에서 우리는 선비들이 추구하던 자연미와 절제미, 그리고 격조 있는 품격미를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아름지기 전시 목적으로, 선비들이 착용해온 남성 한복의 재현 과정을 통해 전통적 봉제 기법을 계승함은 물론이거니와 그 속에 내제된 선비 정신과 격조 높은 조형미를 찾아내고자 노력했다. 또한 이러한 연구 결과를 현대 디자이너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전달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선비 정신이 스며 있는 21세기 남성 복식의 새로운 장면을 펼쳐보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한복 장인들의 손으로 유물을 재현한 작업과 현대 디자이너들이 유물을 현대화한 작업의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유물 재현 작업에는 아름지기의 협력 연구소인 온지음 연구소 김정아․장정윤 연구원이 참여, 심의·도포·답호·전복·액주름·창의·철릭·두루마기 등을 제작했다. 그 밖에 전 문화재위원 박성실 교수, 한국을 대표하는 이홍순·안인실·유선희 작가들이 특별 출품했다. 이번 재현 작업은 유물의 봉제 방법과 착장 시 느낌을 가능한 옛 모습 그대로 계승하되, 의복의 치수를 현대인의 신체 비례에 맞게 총길이·화장·고대·깃 너비 등을 수정 제시했다. 옷감의 소재와 색감도 유물과 문헌 자료에 기초하여 복식사 전공 교수들과 현대 디자이너들의 토론을 통해 선비 정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결정했다. 

소재와 색상의 아름다움은 물론, 오랜 세월 한복을 지어온 장인들의 숙련된 손끝에서 빚어지는 정교한 봉제 기법에서 선비의 정신과 멋을 흠뻑 느낄 수 있다.

- Section 1 -

전통복식

장인의 포

< 심의 >

심의는 주자학의 전래와 함께 고려에서 받아들인 유학자의 예복(禮服)으로, 조선 시대 선비 정신을 대표하는 복식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 시대의 명망 있는 선비들은 심의를 즐겨 입었는데, 관례복은 물론 수의(壽衣)나 제복(祭服)으로도 착용했다.

<심의 Simui>   김정아 Kim Jeong Ah, W 48cm x L 135cm

<선비의 상징, 도포>

도포는 조선 시대 선비들이 평상복이나 예복으로 착용하던 대표적인 포다. 도포의 색상은 주로 청색과 백색을 많이 사용했는데, 신분이 낮은 사람은 도포를 착용하지 못하도록 금하기도 했다.

도포의 형태는 깃이 곧은 직선으로 되어 있고, 소매가 넓으며 뒤트임이 있다. 옆선에서 연결되는 무는 뒷길의 중심선에서 트여 있는데, 이를 뒷자락이 덮어 두 겹을 이루며, 트임이 벌어져도 하의(下衣)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영조도포 King Yeongjo's Dopo>   박성실 Park Sung Sil · 이명은 Lee Myoung Eun, W 51cm x L 135 cm
<홑도포 Single-Layered Dopo>   장정윤 Jang Jung Youn, W 60cm x L 137cm
<겹도포 Double-Layered Dopo>   김정아 Kim Jeong Ah, W 55cm x L 135cm

<트임이 있는 옷, 창의>

창의(氅衣)는 ‘트임이 있는 옷’이라는 뜻으로 뒷중심이나 양옆에 트임이 있는데, 트임의 위치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창의의 형태는 곧은 깃에 시대에 따라 소매의 넓이와 길이, 트임의 길이 등에 변화가 있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창의를 외출복이나 실내에서 입는 겉옷으로 입었는데, 소매가 넓은 포의 안에 착용하기도 했다.

<창의 Changui>   김정아 Kim Jeong Ah, W 55cm x L 127cm
<누비 소창의 Quilted So-changui>  유선희 Yu Seon Hee, W 52cm x L 111cm
<누비 중치막 Quilted Jungchimak>   유선희 Yu Seon Hee, W 51cm x L 135cm

<두루마기>

두루마기는 우리 민족이 즐겨 입는 가장 기본적인 포로 한자로는 주의(周衣)라고도 하며 옷에 터진 부분 없이 두루 막혀 있다는 뜻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조선 후기에 소매가 넓은 포의 착용이 금지되면서 두루마기의 착용이 보편화되었고, 바지․저고리와 함께 남성 복식의 기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두루마기는 계절에 따라 소재를 달리해서 만들어 입었는데 여름에는 얇은 소재 사용하여 홑으로 만든 두루마기를 입었고 봄․가을에는 겹두루마기, 겨울철에는 솜두루마기나 누비두루마기를 입었다.

<솜두루마기 Cotton padded Durumagi>   김정아 Kim Jeong Ah, W 54cm x L 127cm
<모시두루마기 Ramie Durumagi> 장정윤 Jang Jung Youn, W56cm x L130cm
<갖두루마기 Gat-Durumagi>   이홍순 Lee Hong Soon, L 128cm

<소매 길이에 변화를 준 답호>

답호(褡護)는 반소매 옷으로 고려 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선비들이 겉옷 위에 덧입거나 집무할 때 착용하던 상복(常服)의 안에 밑받침 옷으로 입었다. 답호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형태가 달라졌는데, 직선의 깃에 짧은 소매가 있는 형태에서 깃의 모양이 변하고 소매가 없는 형태로 변화했다. 형태에 따라 옆선에 트임이 있기도 했고 앞여밈이 배자와 같이 맞깃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깃․소매․섶이 없는 전복(戰服)을 많이 입었는데, 전복은 소매 색상이 다른 두루마기 형태의 동달이 위에 주로 착용했다. 전복은 답호가 군복으로 사용되면서 유래한 명칭으로 보인다.

<답호 Dapho>   장정윤 Jang Jung Youn, W 60cm x L 123cm
사저교직연화문단 직물제직
<전복 Jeonbok> 장정윤 Jang Jung Youn, W 42cm x L 121cm
<전복 Jeonbok>  장정윤 Jang Jung Youn, W 42cm x L 125cm
<반수의 Bansuui>   김정아 Kim Jeong Ah, W 56cm x L 100cm
<답호 Dapho>  장정윤 Jang Jung Youn, W 47cm x L 110cm

<활동에 편한 포 철릭, 액주름포, 구의>

철릭은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즐겨 입던 옷으로 허리 아래 치마 분을 따로 재단하고 치마 리 부분에 주름을 잡아 허리와 연결한 옷이다. 치마폭이 넓어 활동적인 복식으로 착용할 수 있었는데,철릭 위에 답호를 입기도 했다. 철릭 형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깃과 소매 양, 주름 모양 등이 변화했다. 허리 분에 가로로 선 식을 한 옷은 요선 릭이라고 했는데, 요선은 옷감으로 만들거나 실을 꼬아 만들기도 했다.

액주름포(腋注音袍)의 주음(注音)은 주름의 한자 표기로 겨드랑이 아래에 주름이 잡혀 있기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곧은 깃이 달려 있는 포로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 만들었으며, 조선 중기에 많이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요선철릭 Yoseon-cheollic>   김정아 Kim Jeong Ah, W 45cm x L 130cm
<액주름 Aekjureum>   장정윤 Jang Jung Youn, W 60cm x L 100cm
<명주요선철릭 Yoseon-cheollic> 장정윤 Jang Jung Youn, W 57cm x L 125cm
<구의 Guui>  안인실 An In Sil, W 56cm x L 143cm

- Section 2 -

현대 디자이너의

<진태옥>

디자이너 진태옥은 국내 최초 컬렉션인 SFAA(Seoul Fashion Artist Association)의 창립자이자 초대 회장이었을 만큼 명실공히 한국 패션계의 큰 어른이다. 또한 90년대에는 파리 컬렉션에 진출하여 한국 패션의 위상을 높혔다. 지금도 매년 새로운 컬렉션을 갖고 신선한 감각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art to wear 1-2회> (국립 현대 미술관 초대전, 1987-88) 등 다수의 기획전시에 참여하였고, 2005년 <jintaeok(beyond nature)40주년> 작품집 발간 및 개인전을 가졌다. <paris chambre syndicale collection>에서 1993년부터 1997년 까지 여성복과 남성복을 매년 2회씩 발표했다. 공공디자인 작업에도 관심을 갖고 <88서울 올림픽 유니폼>(1988), <아시아나 항공 유니폼>(1988), <국민은행 유니폼>(2007), <공군 1호기 및 공군 파일럿 유니폼>(2008) 등 다수의 국내 행사 및 국가기관 그리고 기업의 유니폼을 디자인했다. <동아일보사 제정>(1988) 87년도 디자이너 상, <상공부 장관>(1994) 최고 디자이너 상, <무역의 날>(1996) 대통령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2007년에는 <문화훈장>화관을 수여 받았다. 영국 PHAIDON사 발행<the fashion book>(1998)에 한국 디자이너로서는 유일하게 20세기에 활동한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선정되었다.

<코트 Coat> 노방 Silk

진태옥 포(布)는 그의 절제미를 한껏 끌어올린 모양새다. 자칫 격하게 넘쳐 흐를 수 있는 있는 포의 부감을 진태옥은 그대로 두지 않았다. 그는 결코 긴장을 늦추지 법이 없다. 부감이 안정을 찾고 담백한 마무리를 이루는 건 진태옥의 절제 덕분이다. 간단치 않은 50여년, 옷짓기에서 그가 이룩한 절제의 비례미가 그의 포에 녹아 있다. 쉽게 쉽게 본래 포의 폭신한 어깨선을 따 오면 될 것을 진태옥은 가죽 코트의 단아한 선으로 바꿔 매무새를 다듬었다.

“고전을 그대로 재현해선 안되죠. 이 작업에서 가장 경계한 게 단순한 재현이었어요. 포의 재단법, 포의 선을 공부했지만 그걸 그대로 답습해선 안됐어요.”

진태옥은 “포에서 바람이 인다”고 했다. “선과 선이 맞닿은 어딘가로 바람이 일렁이고 일렁이는 기류를 따라 팔랑거리는 포 자락이 풍류를 만들어 낸다”고 했다. 진태옥에게 선으로 비춰진 포는 바람을 벗삼을 때 비로소 입체가 됐다.

”요즘 코트에 부족한 여유가 포에선 보이더군요.“ 포의 여유를 찾아낸 그는 옛것이 불편하다는 고정관념에서도 벗어났다. ”전통이란 힘들고 어려운 것, 불편한 것이란 생각 탓에 전통적인 무엇을 내 작업에 어떻게 끌어 들일까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했죠.

우리의 진짜 전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없었던 거에요. 그런데 이 작업에선 전통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확실히 깨닫게 됐어요.“

<코트 Coat> 울 Wool, 가죽 Leather
<망토 Manteau> 가죽 Leather

미색 가죽으로 다듬어낸 포, 그 허리춤에 매어논 각대 닮은 은장식이 그렇다. 거기엔 진태옥이 받아들인 우리 전통의 정체가 담담하게 깃들어 있다. 수차례의 실험 끝에 완성한 은장식은 미색 가죽 진태옥 포 위에 오롯하게 올라 앉았다. 정말로 오롯해 그 품새만 봐도 진태옥 포가 의도한 선비의 기품이 읽힌다.

“복식이란 전통과 완전하게 분리될 수 없죠. 어차피 시공을 함께한 사람들이 같이 만들어 나가는 생활상이 옷이니까요. 그런데 우린 일상에서 서양복을 입고 지내요. 역사ㆍ전통과 고스란히 동떨어진 채로요. 패션 디자이너가 게을러서였을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였을까요. 이유가 무엇이든, 역사를 따라 다듬어지고 발전해온 옷짓기, 거기에 깃든 우리 정신을 현대 디자이너가 들춰볼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그러니 이번 작업이 정말로 뜻깊을 수 밖에요. 전인적인, 그야말로 요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이성과 감성을 고루 갖춘 인물이 우리 선비였어요. 격식에 얽매인 신사도, 엄격함만을 고집하는 무사의 모습도 아니죠. 포를 입었던 선비는 삶을 알고 즐기는 사람입니다. 스스로를 제대로 살피고, 스스로를 찬찬히 돌아보며, 스스로를 책임질 줄 아는 그런 사람 말이죠. 새로 만들어 낸 포가 본래 선비들의 외양 뿐 아니라 거기에 품었던 기개까지도 현대에 전할 수 있길 바라 봅니다."

<코트 Coat> 가죽과 순모의 이중직, 은장식 벨트 Double wearing of leather & wool, Silver
<코트, 밍크 모자, 손 워머 Coat, Mink Cap, Hand Warmers> 울, 가죽 Wool, Leather

<김서룡>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다. 1992년 독학으로 패션을 공부한 후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6년 남성복 ‘김서룡 옴므’를 론칭하였다. ‘CIVAS REGAL'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였으며(2011,2013) GS SHOP과 'so wool' 콜라보레이션을 진행 중이다(2013). 2012년 싸이 강남스타일 뉴욕 록펠러광장 공연의상 제작 및 각종 CF 촬영의상을 제작하였고, 가수 이문세 30주년 공연 전체의상 제작 및 스타일 디렉팅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2013년 패션위크 오픈 스튜디오 박원순 서울시장 스타일링 클래스에 참가하는 등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그리고 그는 ’김서룡 옴므 패션스튜디오‘를 통해 젊은 디자이너 양성에 힘쓰고 있다.

포를 마주한 김서룡의 첫 기억은 '화려(華麗)'로 요약할 수 있다. ”다채로운 색감의 조화, 나긋나긋한 비단이 품은 낭만적 여유가 화려함으로 다가왔어요. 지레짐작으로 알던 포에 대한 고정관념과는 다른 것이었죠. 단선적인 느낌, 고전적인 선비에 대한 편견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포는 화려하더군요. 거기서 멋내기를 즐기던 선비의 모습이 그려졌어요.“

김서룡은 화려, 환하게 빛나고 고운 느낌을 담아 자신의 포를 지었다. 그의 포는 농담김서룡은 화려, 환하게 빛나고 고운 느낌을 담아 자신의 포를 지었다. 그의 포는 농담이 은은하게 배어나는 수묵화가 됐다. 우리 비단으로 만들었는데 겉모습은 그냥 서양 외투를 닮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제야 김서룡 포의 매력이 보인다. 비단은 오간자, 즉 평직으로 짰다. 씨실과 날실을 엮어 속이 살살 비치는 정도의 실크 오간자다. 그 소재 그대로 두면 전형적인 전통 포의 모습일 텐데 김서룡은 여기에 새것을 더했다. "현대 서양 복식을 기본으로 하는 남성복 디자이너로, 늘 공들이는 부분이 소재 개발입니다. 맵시가 달라야 하는 건 물론이고 디자이너의 개성과 혼이 묻어나게 하려면 소재 자체에도 그 느낌이 그려져야 하거든요. 그래야 옷 입은 사람과 공감할 수 있고, 또 입은 사람이 소재 차이를 발견하고 즐길 수 있으니까요. 당연히 포를 현대화하는 작업에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여겼죠.”

<코트 Coat> 실크 Silk
<코트 Coat> 실크 Silk

김서룡의 포에서 실크 오간자는 도톰하게 여러 겹 겹치며 무늬를 만들어낸다. 마치 수십 장 얇디얇은 실크 오간자가 폭신한 비단신의 결을 만들어낸 듯 보인다. 매끈한 데서 끝난 것도 아니다. 잘 셈해서 균형을 이룬,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작은 무늬가 밋밋할 수 있는 외투 겉면을 수놓고 있다. 대담하게 드러낸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대신 보고 또 볼수록 화려한 매력이 솟아나는 새 소재, 새 포의 결이다. 검은 포, 흰 포 두 가지다. 빛 아래 둘라치면 새겨 있는 무늬, 겹친 오간자의 결에 따라 소재의 강약이 다르게 물결친다.

김서룡 포에는 서양 옷 짓기에선 보기 어려운 농담의 변주가 올려 있다. 오간자 한 켜 한 켜가 닮은 듯 다른 듯 이어져 맵시를 뽐내니 풍류에 젖은 선비처럼 춤을 출 수밖에. 지극히 화려하나 절제를 알아 담백하다. 김서룡이 느낀 선비의 멋이 뭔지 짐작이 간다.

<베스트, 셔츠 Vest, Shirts> 실크 Silk
<자켓, 셔츠 Jacket, Shirts> 실크 Silk

<정욱준>

1992년 서울 에스모드(ESMOD Seoul)를 졸업하였다. 남성복 브랜드 CHIFFONS의 디자이너(1992~1995), 내셔널 브랜드 CLUB MONACO(1996~1997) 및 NIX(1997~1998)의 디자인 팀장을 거쳐 1999년 디자이너 브랜드 LONE COSTUME 을 런칭하였다. 2001년 10월 첫 쇼를 시작으로 2006년까지 Seoul Collection에 참가하였으며, 2003년 아시아 <타임>이 뽑은 아시아 최고 디자이너 4인으로 선정되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2007년 브랜드 Junn.J 를 새롭게 런칭하고 ‘PARIS MEN‘S COLLECTION’에 참가하는 것을 시작으로 파리무대에 데뷔,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도약하였으며, 2008년 프랑스의 권위지 ‘르 피가로’가 뽑은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 6인’ 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Reebok, Speedo, 빈폴 등의 브랜드와 다수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였으며 현재 Juun.J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제일모직의 상무로 재직 중이다.

<笑 소> 데님, 가죽 Denim, Leather

정욱준의 작업은 모더니티(modernity), 현대성에 대한 탐구다. 현대성을 학습하고, 현대성을 연구하며, 현대성을 옷에 그려내왔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일곱 해를 넘기며 자신의 패션쇼를 펼치고 있다. 파리에서 늘 반발짝 앞선 현대성을 패션쇼 무대에 올리고 있는 정욱준. 상업 패션 디자이너의 임무는 대중의 취향보다는 조금 앞서야 하는 법이다. 너무 멀리 가면, 직물로 작업하는 예술가로 남을 뿐이다. 국내외에서 그가 이뤄낸 상업적 성취는 대중성, 대중의 취향을 읽어내는 감각적 디자인 능력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에 정욱준의 현대성이 큰 몫을 한 것은 물론이다.

그에겐 포(布) 역시 현대성으로 읽혔다. 정욱준은 “놀랐다”는 말로 포와의 첫 대면을 묘사한다. ‘포는 이미 현대성을 갖춘 의복이다’ 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지극한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 패션 디자이너들이 흔히 ‘미니멀(minimal)’이라고 표현하는것이죠. 정제된 선, 정돈된 절개선의 아름다움이 본래 포의 모습입니다. 이미 거기에 현대성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樂 락> 데님, 가죽 Denim, Leather
<堅 견> 데님, 가죽 Denim, Leather

그는 포의 현대성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선택은 짙푸른 청바지 천과 가죽이다. 흔히 ‘데님’이라 부르는 도톰한 면 소재에 물빠짐이 전혀 없는 짙푸른 청바지색이 ‘정욱준 포’의 첫인상이다. 동정을 닮은 옷깃은 검정 가죽으로 그의 포에 녹아들었다. 정욱준의 현대성은 직관적으로 서양 문화의 표본처럼 여겨지는 청바지 천으로 연결됐다. 검정 가죽은 “인류가 가장 처음 선택한 의복 소재” 란 점에서 그의 흥미를 자극했다. 허리 아닌 가슴부위를 조이는 여밈이며 가죽 벨트의 한 끝을 길게 늘어뜨린 촘촘한 세부 묘사는 전통에 발을 디뎠으나 어색함 없는 현대성, 정욱준 포의 모습이다.

긴 옆트임도 현대성의 한 축이다. “선비의 멋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지점이죠. 포, 즉 외투란 동서양과 남녀를 막론하고 힘을 부여하는 의복입니다. 몸의 대부분을 단단히 감싸는, 그래서 입은 사람에게 당당함을 선사합니다. 서양 외투가 온전히 이런 목적에 충실하다면, 포에는 당당함과 여유가 공존하는 것이죠. 어쩌면 서양 복식 위주의 현대성이 간과하는, 또 다른 현대성이 옆트임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옆트임은 관능(官能)의 또 다른 표현이다. 정욱준이 포에서 배운, 지금껏 알아채지 못하던, 그래서 더 새로운 현대성이다. 옛 사람들에게 어찌 관능이 없었겠느냐만, 그는 오히려 옛것의 관능에서 새로움을 느꼈다.

관능과 여유로 풀어낸 현대성은 조금 큰 듯한 ‘오버사이즈(over-sized)’ 경향으로 옮아간다. “의복과 유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때마침 요즘 대중의 취향에 잘 맞는 게 오버사이즈 외투입니다. 한데 포는 본래 약간 과장된 품새가 특징인, 낙낙한 옷이잖아요. 포의 오버사이즈는 본래 외투의 힘을 한층 도드라지게 합니다. 흥미롭지 않나요.”

“우리 문화의 결에 유유하게 자리 잡은 선비 문화는 포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가 작업 과정에서 배운 것을 정리하며 고백한 말이다. “풍류와 여유가 포라는 옷에서 그대로 전해집니다. 포는 오늘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선비 정신의 대표 형상이기도 하죠. 옷으로서 포는 닫아 입었을 땐 한없이 갇혀 있습니다. 또한 권위적이고 답답한 모습만 드러낼 수 도 있는 옷이 포입니다. 그런데 대단히 갖춰 입은 듯하면서도 여유와 넉넉함을 담아내는 것 또한 포입니다. 자신을 품고 있으나 타인도 함께 품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하니까요. 포를 입은 선비의 그런 마음가짐을, 보는 사람도 절로 느낄 수 있습니다. 겉으로 이미 다 보여주는 옷이니까요. 모든 것을 품는 여유, 현대적인 담백함, 드러내는 솔직함, 이 모두가 이 시대 선비의 포에 계속해서 담기길 바랍니다.”

<言 언> 데님, 가죽 Denim, Leather
<詩 시> 데님, 가죽 Denim, Leather
제공: 스토리

한복 장인 Hanbok Artisan — 김정아 Kim Jeong Ah, 장정윤 Jang Jung Youn, 안인실 An In Sil, 이홍순 Lee Hong Soon, 유선희 Yu Seon Hee
현대 디자이너 Contemporary Designer —  진태옥 Jin Tae Ok, 김서룡 Kim Seo Ryong, 정욱준 Juun. J
전시자문 Adviser — 조효숙 Cho Hyo Sook, 진태옥 Jin Tae Ok, 박경미 Park Kyung Mee, 박성실 Park Sung Sil, 정민자 Chung Min Ja
전시코디네이션 Coordination — 고정아 Ko Jeong Ah, 남지현 Nam Ji Hyun, 김운경 Kim Un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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