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제도팔곡병풍(孝悌圖八曲屛風)

국립무형유산원

자수장
천위에서 탐스러운 모란꽃이 피어나고, 구름이 몰려오고 용이 날아오른다. 옛 부터 손끝이 매웠던 우리 어머니들 은 ‘수’를 놓았다. 섬세한 손으로 한 땀, 한 땀 실을 감아 꽂아 엮어가는 예술이다. 자수에는 크게 복식자수와 생활자수. 예술자수에 이어 종교자수가 있다. ‘자수’는 제한된 공간에서 살아야했던 아낙들이 즐겼던 천위의 산책이고, 수틀은 그들의 해방공간 이었다. 조용히 수를 놓는 여인의 여린 손끝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 그것은 옛 여인네들 고유의 멋이며, 가족을 위한 여유이다. 손끝으로 달리고 가슴으로 칠해놓은 그림인 우리 자수는 기법이 매우 섬세하고 치밀해 숙련된 솜씨와 인내와 정성을 필요로 한다.
실의 꼬임과 굵기의 변화를 이용해 대상의 질감과 입체감·원근감을 살리는데, 특히 우리만의 ‘가색자수’ 기법은 수의 밑그림을 채색까지 완성한 후 시작하는 독특한 기법이다. 이제 수를 놓으면 밑그림 이 수실사이로 올라와 색과 선이 분명해 지고 명암까지 표현되어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바탕으로는 무늬없는 공단을 주로 쓰며, 용도와 도안에 따라 면·마·합성섬유 등을 쓴다. 자수의 방법에는 평수·자련수· 이음수가, 이 밖에 실의 굵기와 꼬임, 배색, 용도 등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자수의 종류에는 보와 흉배 및 기타 여러 장식들을 옷에 직접 수를 놓는 복식자수와 베갯모·수저집·바늘집·골무 등을 만드는 생활자수 , 또 자화상이나 십장생, 안녕과 수복을 기원하는 병풍따위를 만드는 예술자수와 함께 수불·번기·불방석·연수식·다라니주머니 등 종교적인 내용에 이르기까지 그 사용범위가 매우 넓다 .

효제도팔곡병풍(孝悌圖八曲屛風), 1985~1987. 128x408cm 8첩병풍
1987년 제12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국무총리상 수상

효자도(孝字圖)는 중국 효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상징하는 자연이나 물품으로 대치되었다. 왕상(王祥)의 잉어는 잉어는 비늘 하나하나에 깊이감이 생기도록 속수로 처리한 후 이음수로 마무리하여 금방이라도 퍼덕거릴 듯 한 잉어의 생동감을 잘 나타내고 있다.

책 위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해태상은 속수를 이용하여 입체감을 강조하고 있다. 몸체는 색의 농담을 표현하며 전체를 수놓았고, 눈코입은 색을 달리 하여 표정을 만들었다

제자도(悌字圖)의 제자(悌字)는 2획과 3획이 새 가운데 형제간의 우애가 깊은 할미새 두 마리가 벌레 한 마리를 나눠먹으며 형제애를 과시하고 있다. 잡아먹히는 벌레의 불안한 눈동자 마저도 놓치지 않고 표현하고 있다

수반 위의 수석은 다양한 농도의 잿빛 계열 실로 겹쳐 수놓아 괴석의 질감과 형태를 잘 살렸다. 수선화는 가늘고 여린 여러겹의 꽃술이 미묘하게 움직이는 느낌을 씨앗수와 이음수로 마무리하여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을 잘 표현하였다

용의 꼬리를 물고 용과 함께 승천하고자 하는 잉어의 간절한 모습을 표현했다. 비늘의 경우 배쪽으로 가면서 점점 가늘게 수를 놓아 용의 꼬리를 문 볼록한 배를 가진 잉어의 형태를 익살스럽게 묘사했다

그릇에 담긴 포도알은 안에 속심을 넣고 알마다 우련수로 농담을 달리하여 한 알, 한 알이 톡 튀어 나온 듯 탄력이 느껴지도록 묘사하였다.

신(信)자도의 1-2획은 꽃이 활짝 핀 복숭아 나무 위에 서왕모의 메신저이자 가릉빈가처럼 사람의 머리를 한 새인 청조가 깃들여져 있다

여의주를 문 청룡을 손잡이로 장식한 오리주자는 평수와 격자무늬 이음수, 가름수로 표현하여 사물이 갖는 특징을 독창적으로 해석하여 수를 놓는 보유자의 열정이 느껴진다.

효제도팔곡병풍(孝悌圖八曲屛風), 1985~1987. 128x408cm 8첩병풍
1987년 제12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국무총리상 수상

예자도(禮字圖)의 첫 획은 낙수(洛水)에서 중국 최초의 길자인 낙서(洛書)를 등에 지고 나오는 신령스런 거북이 이다. 이 거북이에는 최유현 보유자가 새롭게 개발한 여러 자수기법이 모두 녹아있다.

화면 중앙에는 당시에 귀했을 수박이 도자기 사발안에 들어있다.

화면 하단의 어항속에는 금붕어 4마리를 배치하고 흔들리는 물결을 이음수로 마무리하여, 어항안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모습을 자수로 잘 표현하고 있다. 금붕어는 집안이 여유롭고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상징이다.

의(義)자도는 1,2획에 날카로운 꼬리를 가진 물수리를 배치하였다. 명도와 채도차이가 미묘한 다양한 색실을 이용해 농담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여 화려한 새의 깃털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공작 꼬리털은 출세를 상징한다.

부채의 선면은 송학 한 쌍이 소나무에 앉아있고 아래에는 불로초의 모습이 보인다. 보유자는 아무리 작은 기물이라 할지라도 있어야 할 자리에는 반드시 표현하는 섬세하고 정갈한 감수성을 보여준다

염자도(廉字圖)의 첫 획에는 게가 등장하는데 이는 발음이 유사한 송나라 성리학자 주염계(周濂溪)를 가리킨다

귀면이 조각된 필통에 꽂힌 붓은 붓털과 뚜껑, 붓대의 문양까지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고, 필통에 꽂힌 부채는 선추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는 자태가 매우 아름답다

윤도는 십이간지 글자까지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화면 전체에 분포된 다양한 서갑을 묘사하기 위해 규칙적이고 엄정한 질서를 유지하는 자수기법으로 표현하였다.

치자도(恥字圖)의 책거리에는 보통의 민화 문자도에 등장하지 않는 고려청자 주전자를 숨은그림찾기처럼 이들 사이에 포함시켜 놓았다.

최유현선생의 자수철학과 이념 <정신세계>
최유현보유자의 자수철학과 이념은 남다른 장인 정신과 전통을 고수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녀에게 있어 작품들은 단순한 물체가 아닌 자식과 애정을 가지고 평생의 유작들을 길이 후세에 남기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어느 장인보다도 한국적인 작품이미지의 정체성을 고수하기 위하여 전통을 중요시 하였으며 회화와는 다른 입체적 생동감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이 묻어있다. 작품 하나, 하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창의적 기법과 생명감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녀만의 독창적인 자수기법과 사실적 표현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즉 굵고 가는 색실의 조합과 다양한 실의 질감을 활용한 자수표현기법, 그리고 명도와 채도 대비조화 등은 누구도 쉽게 따라 갈 수 없는 독특한 자수기법들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두드러지는 그녀의 작품세계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내면적 가치관을 작품 속에 표현하고자 한 점으로 신앙과 예술이 결합된 정신적 가치관이 그녀의 작품 속에 베어난다. 작품을 보는 이로 하여금 공존, 공감, 공유를 기대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올 한 올 수를 놓아 왔다.
자수장 최유현 선생은 1936년 전남 목포에서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아 무엇이든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선생은 15세 때부터 어머니에게 자수를 배웠다. 당시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수를 놓았는데 가장 손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또한 자수였다. 이후 권수산 선생을 만나게 되면서 수예에 소질이 있는 학생에서 본격적인 자수인생으로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한국전쟁 직후 서울에서 목포로 피난을 왔던 권수산 선생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자수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부산 동아대학교에 가정학과 학과장으로 부임을 받은 권수산 선생을 따라 부산으로 와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권수산 선생의 집안이 좌익운동에 연루되어 집안이 풍비박산 되고 서구나 일본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선생과의 의견차이로 인해 스승과 제자 간에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최유현 선생은 교직생활을 하게 되면서 스승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방학 중이나 주말을 통해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국전에서 두 번 입상을 하였으나 전문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기 위해 10년간의 교직생활을 접고 자수학원을 설립하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를 수로 놓았던 게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고, 방한한 독일대통령에게 증정한 선물 중에도 선생의 작품이 포함되었다..
최유현 선생은 30대까지는 베갯모, 사진틀, 방석 같은 생활 소품을 많이 만들었는데 우리나라의 고화, 도자기 같은 문화재를 밑그림으로 수놓기를 시도했다. 그에 대한 반응이 좋아 이후에는 민화에 몰두하여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40대부터는 불화 대작을 수놓기 시작하였다. 팔상도, 지장보살, 만다라, 아미타불, 팔신장, 십이지 등을 작품으로 완성했다. 이러한 대작들은 보통 2~3년, 많게는 8년에 걸쳐 완성된다. 특히 불교자수는 자수기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정성과 혼이 실려야 하기 때문에 자수기술과 불교신앙의 합일품이라고 할 수 있다. 최유현 선생은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현재 부산대 한국전통복식연구소 부설 공방인 중수원(中繡院)을 운영하며 제자들을 육성하고 있다.
그의 작업실 이름은 중수원(中繡院)이다. 1987년에 만든 이래 바뀌지 않았다. 최원준 시인은 그 이름에 대하여 '수를 높음에 있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말라'라는 중용의 마음을 뜻한다고 했다. 중도의 삶의 절제이다. 수행을 닮았다. 그의 자수는 성인의 삶을 따르고자 하는 최유현의 꼼꼼한 수행기록이다. 그 기록의 내용은 한 땀 한 땀으로 엮은 자수로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지만, 최유현이 간직한 수의 비밀이기도 하다.
제공: 스토리

자수장/
참고문헌
가슴으로 품을 수와 공존하다 (2016) 자수문화연구소 중수원.
오래된 미래 (2012)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자료출처 | 국립무형유산원 디지털 아카이브

국립무형유산원
국립무형유산원 아카이브

Ⓒ 국립무형유산원

참여: 모든 표현 수단
일부 스토리는 독립적인 제3자가 작성한 것으로 아래의 콘텐츠 제공 기관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Google 번역
찾아보기
주변
프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