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8.

이화의 패션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이화가 소장한 조선시대 예복과 장신구

조선시대 예복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채택한 조선은 예치禮治를 지향한 국가로서, 오례五禮에 따라 정비된 국가 전례典禮의 시행을 통해 정치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국가적 의식을 행할 때에는 신분과 절차에 따라 격식을 갖추었는데, 복식은 그 예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수단이었다. 그러므로 예복은 당시 사회질서와 세계관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한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왕실과 관리의 예복은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되어 왔다. 조선 초기에는 명明의 예복을 그대로 수용하여 왕은 대례복으로 면복冕服을 입고 왕비는 대수삼大袖衫, 하피霞帔를, 관리는 관복으로 단령團領과 복두幞頭를 착용하였다. 그러나 청淸이 들어선 이후 유교문화의 정통성을 강조한 조선중화주의 의식이 발전하면서 우리의 예복은 중국과는 달리 독자성을 띄게 되었다. 또한 사대부 남성들은 평소에도 유학자로서 몸가짐을 바로하기 위해 유교 법복法服인 심의深衣를 즐겨 입었다. 한편 조선후기 왕실 여인들은 명대 여성예복을 참고하여 만든 적의翟衣를 대례복으로 착용하고, 혼례나 진연, 진찬 등 경사스러운 날에는 원삼과 활옷, 당의 등의 우리식으로 꾸민 예복을 갖추었다. 이러한 예복에는 착용자의 계급과 그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상징하는 다양한 색상과 무늬가 사용되었으며, 여기에 적절한 장신구로 의식의 권위와 화려함을 더했다.
조복朝服 · 제복祭服
조복朝服은 경축일에 왕에게 하례를 드릴 때나 표문을 올릴 때 관리들이 착용하였던 예복이다. 조복은 금칠한 양관梁冠과 적초의, 적초상, 백초중단, 대대, 혁대, 폐슬, 후수, 패옥, 말, 혜, 홀로 구성된다. 품계에 따라 양관의 양의 수, 허리띠와 홀의 재료, 후수의 무늬, 패옥의 색상 등을 달리 하였다. 제복祭服은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낼 때 입었던 옷으로 구성은 조복과 유사하다. 그러나 제관에는 금칠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가장 겉옷인 의衣의 색상이 검은 색인 것, 방심곡령을 더한 것이 달랐다.

조복 朝服
1890 - 1910

이 조복 일습은 황철黃鐵(1864-1930)의 유품으로 착용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금관 金冠
1890 - 1910

금관은 양관梁冠의 일종으로 만초 문양을 장식한 머리 둘레와 후면, 관을 가로지르는 목잠木簪에 금칠을 하여 금관이라 불렀다. 양관은 관모의 중앙에 있는 세로 선인 양梁이 있는 관을 말하며, 품계에 따라 양의 수가 다르다. 이 금관은 황철(1864-1930)의 유품으로 오량관이며 1품의 관에 해당한다.

홀 笏
1890 - 1910

홀은 신하가 임금 앞에 나아가 명을 받을 때 잊어버리지 않도록 기록하기 위해 손에 드는 것으로 나중에는 의례적으로 들게 되었다. 1품에서 4품까지는 상아, 5품 이하는 나무로 만들었다. 이 홀은 상아홀로 황철(1864-1930)이 사용하던 유품이다.

패옥 佩玉
1890 - 1910

패옥은 조복을 입을 때 허리에 차는 것으로 옥의 맑은 소리로 사악한 기운을 막고 나쁜 마음이 제거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1품에서 3품까지는 번청옥燔靑玉으로, 4품 이하는 번백옥燔白玉으로 만들었다.

패옥은 바람에 줄이 엉키지 않도록 주머니紗帒에 넣어 착용하였다. 이 유물은 황철(1864-1930) 조복의 일습이다.

패옥상자
1890 - 1910

패옥을 보관하던 상자로 황철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었다.

호패술
1864 - 1930

호패술은 조선시대 남자의 신분증인 호패를 매달던 것이다. 신분에 따라 호패의 재료, 끈의 장식과 술을 달리하였다. 이 호패술은 황철(1864-1930)이 사용하던 유품이다.

세조대 細絛帶
1864 - 1930

세조대細絛帶는 실을 엮어 짠 끈으로 광다회에 비해 얇고 좁다. 끝에 딸기술이나 봉술을 매달아서 마무리 했으며 포袍 위에 띠었다. 품계에 따라 색을 달리하여 3품까지는 홍색을, 4품부터 9품까지는 청색을 사용하였다. 이 세조대는 황철(1864-1930)이 사용하던 유품이다.

조복 朝服
19세기 말

이 금관조복의 후수는 네 쌍의 학과 구름을 수놓고 2개의 금환金環을 단, 1ㆍ2품에 해당되는 운학금환수雲鶴金環綬인데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1820-1898)이 착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복 祭服 (재현품)
1960 - 1970

제복祭服은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낼 때 관리들이 입었던 옷으로 제복의 구성은 조복과 유사하여 대대와 혁대, 폐슬, 패옥, 후수, 말, 혜, 홀 등을 갖추었다.

제복은 가장 겉에 입는 의衣의 색상이 검은 색이고 방심곡령方心曲領을 더한 것이 조복과 달랐다.

제관 祭冠
1801 - 1900

제관祭冠은 관모의 중앙에 세로 선인 양梁이 있는 관으로 조복의 금관과 유사하다. 그러나 제관에는 금칠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단령團領
단령團領은 둥근 깃의 포袍로 관복으로 입혀졌다. 시대에 따라 단령의 색에 대한 규정이 변화하였으며, 공복公服으로 입을 때는 복두를 쓰고 손에는 홀을 들었다. 상복常服으로 입을 때는 머리에 사모를 쓰고 가슴과 등에 흉배胸背를 달아 품계를 구분하였다. 단령은 서민의 혼례복으로 허용되어 관직이 없는 이도 혼례날에는 흉배를 갖춘 단령을 입을 수 있었다.

쌍학흉배 雙鶴胸背
1801 - 1900

흉배胸背는 관리의 계급을 나타내는 표식으로 상복常服의 가슴과 등에 부착하였다. 조선에서 흉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단종 2년(1454)으로 명明의 제도를 따라 문관은 날짐승, 무관은 길짐승 문양을 사용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고종 때에 문관은 쌍학과 단학, 무관은 쌍호와 단호로 바뀌어 그대로 이어졌다.

단령團領
1801 - 1900

조선 후기 무관이 상복으로 착용한 단령으로 가슴과 등에 쌍호 흉배가 달려있다. 단종 2년(1454)에 시작된 흉배제도는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고종 때에 문관은 쌍학과 단학, 무관은 쌍호와 단호로 바뀌었다.

심의深衣
심의는 유학자들의 법복으로 유교의 철학적 의미가 담긴 옷이다. 웃옷衣과 치마裳를 허리선에서 연결한 형태로 4폭으로 된 웃옷은 사계절을, 12폭으로 된 치마는 12달을 의미한다. 깃과 수구, 도련에는 검은 선을 둘렀으며 허리에는 심의대를 하고 그 위에 조대絛帶를 늘였으며, 머리에는 복건을 썼다.
원삼圓衫
원삼圓衫은 둥근 형태의 맞깃이 달린 궁중 예복으로 신분에 따라 색상과 문양을 달리하였다. 왕비는 홍원삼紅圓衫, 비빈은 자적원삼紫赤圓衫, 공주·옹주는 녹원삼綠圓衫을 입었으며, 대한제국 성립 이후 황후는 황원삼黃圓衫을 착용하였다. 이중 녹원삼은 민간에서도 착용이 허락되어 활옷과 함께 혼례복으로 사용되었다. 이 녹원삼은 가슴과 등에 금사金絲로 수놓은 봉흉배鳳胸背가 달려 있으며 수복자壽福字가 엇갈려 금박 되어있다. 중요민속자료 제 63호로 지정되었다.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 담인복식미술관
제공: 스토리

기획 |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담인복식미술관

총괄 | 장숙환, 장남원

진행 | 송수진, 이정선

참여: 모든 표현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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