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성지 국기원

국기원

태권도의 성지 국기원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1971년 혹한의 추위에서 열렸던 기공식 이후 지금의 태권도 성지 국기원 건물이 완성됐다. 이후 국기원이 진행한 많은 활동의 발자취는 국기원 곳곳에 남아있다.

1971년 11월 19일 국기원 건축 시작을 알리는 기공식. 강남구 역삼동에 2천평 규모의 시유지를 임대하고, 기업의 후원을 받아 지금의 국기원을 건립할 수 있게 됐다.

1971년 12 월 7일. 기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국기원 부지를 찾았다. 버스로 입구까지 진입한 후 정비되지 않은 산등성이를 도보로 이동하고 있다.

부족한 예산으로 시작한 공사였지만 여기저기서 지원이 이어졌다. 김운용 초대 원장은 '삼성 이병철 회장이 거금 300만원을 내놨고, 현대건설 정인영 부사장이 200만원, 풍한제지 200만원, 대농 200만원 등 십시일반 도움을 줬다. 쌍용, 인천제철, 한국유리, 동광유리 등은 자사에서 생산되는 건설 재료를 제공하는 등으로 큰 도움을 줬다'고 기록했다.

일심(一心)을 의미하는 일주문. 국기원의 관문으로 진입로를 당당하게 지키고 있는 일주문이 처음 세워질 당시 모습이다. 태권도인들이 초라하게 골격만 갖추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일주문을 바라보고 있다.

역삼동의 구릉성 산을 다져 국기원 건물을 세운 모습이다. 외부 공사를 거의 마무리 한 후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국기원. 건물 주변의 벌판 모습이 쓸쓸해 보이기까지 하다.

건물 자체는 지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묘목으로 둘러싸인 주변의 모습이 세월을 실감케 한다.

국기원 건물은 현대식으로 지어졌지만, 전체를 보면 한옥 특유의 멋과 풍류를 지니고 있다. 외부의 둥근 모양 기둥과 전통 한옥을 연상시키는 지붕 등 한국 전통 가옥의 선을 연상시킨다. 건물은 청기와 지붕을 덮고, 팔괘를 상징하는 여덟 개의 원추형 기둥을 건물바닥에 배치하는 등 동양적 가치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기원 개원 이듬해, 1973년 5월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의 성공적 개최와 세계태권도연맹 창설을 기리는 의미로 만들어진 기념비. “축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서기 `973년 5월 25일~27일. 세계태권도연맹 창립. 서기 1973년 5월 28일.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김운용.”이라고 한글과 영어로 각각 새겨져 있다.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1988년 시범종목으로 처음 하계올림픽에 진입한 후 1994년 2000년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확정됐다. 기념비는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1주년을 기념해 한국의 대형 광고회사 제일기획이 기증한 것이다.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기와 세계태권도연맹의 로고가 함께 그려져 있다.

김운용 국기원 초대 원장의 호 윤곡(允谷)을 따서 붙여 만든 윤곡정. 국기원 앞마당의 나무 숲길 사이 점잖은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 10평 규모의 팔각정. 1975년 8월 20일 주식회사 진로의 후원으로 지어졌다.

국기원 기념관
기념관에는 도복과 보호구, 올림픽을 비롯한 주요 국내외 대회의 우승컵, 상장, 메달, 우승기, 배지, 페넌트, 사진, 도서, 신문기사, 음향, 영상물 등 2,500여 점의 태권도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대적으로 나열된 전시품들로 태권도의 시대적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국기원 중앙도장
국기원 건립 이후 세계선수권대회 등을 개최했던 의미있는 장소다. 현재 국기원의 고단자 심사와 지도자 교육장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한마당을 비롯한 굵직한 행사가 개최되기도 한다.
제공: 스토리

curated by :Jonggab Lee, Heejin Choi
Planning : kukkiwon
editor : Byoungjoo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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