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무형문화재 제10호 송방웅

보석은 화려하다. 하지만 자연의 보석인 무지개 빛깔의 조개와 소라껍질이 빛을 받아 반짝이면 그 아름다움과 영롱함은 화려함을 넘어선다. 한데 ‘나전칠기’는 자신을 나부대며 드러내지 않는다. ‘나전’은 진중하게 나무나 칠의 한 면에 들어 앉아 안채 마님처럼 고아하고 고운 자태를 은근히 드러낸다.
나전은 조개껍질의 내부나 바다거북의 등껍질, 호박이나 상아 또는 보석을 잘라 나무로 만든 기물에 붙여 장식하는 기법이다. 나전에 사용하는 조개껍질은 야광패, 전복 껍데기 등 으로 빛을 내는 조개가 주고 쓰였다. 조개껍질은 숫돌 등에 갈아 갖가지 두께로 만들어 필요한 곳에 찾아 쓴다. 우리말로는 ‘자개’또는 ‘자개박이’라 하는데 자개를 붙인 후에는 옻칠을 해 마감하는 것을 ‘나전칠기’라 한다.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 듯 옻칠 속 나전은 지극히 아름답고 화려해 거개가 소박한 우리 일상 문화의 조아함을 깨는 은근한 파격이 매력이다.
자개를 가늘고 길게 실처럼 썰어 상사(詳絲)를 만들고 사선(絲線)을 끊으면서 연속적인 자개무늬를 구성하거나, 산수화의 필선을 따라 산수화의 필선을 따라 섬세하고 정교하게 끊으면서 붙여 나가는 것을 끊음질이라고 한다. 끊음질은 고려말과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기하무늬는 표현이 자유롭고 종류가 많으므로 재료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무늬이다. 나전의 경우 자개를 가는 선으로 오려낸 상사를 끊어 붙이는 끊음질를 이용하여 기하무늬를 만든다. 나전공예의 특이한 점은 도형 이외의 일반무늬의 소재를 재구성함으로써 기하학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자연산수무늬는 장생사상(長生思想)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산수무늬는 해, 산, 물, 구름, 돌, 소나무, 불로초 등 자연이나 산수의 일부가 하나의 개별적인 무늬로 표현되거나 몇 개의 요소들이 서로 조합되어 하나의 무늬를 이루기도 한다. 산수무늬는 일반적인 산수풍경에 인물이나 누각을 조합하거나 조선시대 선비의 청렴함과 고고한 인품을 상징하는 사군자를 조합하여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같은 시대에 유행했던 회화 작품들을 모본(模本)으로 하여 나전공예의 산수무늬 도안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회화작품을 연상시키는 자연산수무늬는 18세기 무렵부터 유행했다. 이는 같은 시기의 산수화나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화보류(畵譜類)를 모본으로 하여 무늬를 표현하면서 생긴 현상으로 보인다. 나전공예에서 산이나 물, 나무 등 자연의 일부가 무늬로 등장하는 것은 조선시대 전기부터이며, 대부분 다른 무늬의 보조무늬로 사용되었다. 산수무늬가 중심무늬로 등장한 것은 조선시대 후기로 볼 수 있다.
송주안 (1901~1981)
송주안 선생은 17세인 1917년 당시 통영칠기의 거장인 박정수 문하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후 나전기능공을 양성하는 통영군립공업전습소에서 큰 스승 전성규를 만나게 되고 그를 따라 일본 도야마현 조선나전사에서 기술을 익힌 뒤 28세의 나이로 귀국한다. 귀국 후 여러 제작소와 칠공예소에서 일하였고, 6.25 동란으로 운영하던 공방이 폐쇄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나전제작을 놓지 않았다
1965년 아들 송방웅이 군대에서 제대하자 통영시 태평동 본가에 ‘태평공예사’를 설립하고 운영하였다. 당시 통영지방에 많은 나전칠기 종사자가 있었으나 끊음질이 능숙한 사람은 적었다. 특히 상사의 끊음질에 있어서 송주안 선생의 끊음질 솜씨가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숙련된 기능으로 인정되어 1979년 79세의 고령의 나이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2년 뒤인 1981년 81세의 나이로 별세한다.
송방웅 (1940~)
송방웅은 아버지의 나전칠공예 가업 속에서 태어났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전칠공예를 보고, 느끼고, 만지며 자랐다. 1945년 해방되면서 아버지 송주안 선생이 공방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송방웅 선생의 나이가 8세였다. 초등학생이었던 송방웅 선생은 틈나는대로 누나들과 자개 오리기, 상사 자르기, 톱질, 칠긁기, 광내기 등의 작업과 심부름을 하며 공방을 놀이터 삼아 지냈다. 1959년 통영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송주안 선생에게 정식으로 나전칠공예에 대한 사사를 받으며 입문길에 들어섰다.
그 후 송주안 선생의 문하에 들어선지 10년이 되는 해에 이제 스스로 예술작품을 제작하고, 창작활동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게 된다. 허락을 받은 송방웅 보유자는 부친 송주안 선생의 1mm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기술교육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작품세계과 정신세계를 펼치기 위한 독학과 유물연구로 다시 10년을 보내게 된다. 그 결과 1985년 제10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하였고, 1990년 선친의 뒤를 이어 국가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제공: 스토리

기획/진행 | 국립무형유산원 기록조사연구과 자료출처|국립무형유산원 디지털 아카이브 참고문헌 - 민속원(2007),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 한국문화재보호재단(2016), Korea Ethos : 2016 대한민국무형문화재대전 - 한국문화재보호재단(2006), 전통으로 현대를 여는 예인들 : 2006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작품전 - 한국문화재보호재단(2012), 오래된 미래(An old is a new) : 2012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전승공예전 국립무형유산원 국립무형유산원 아카이브 Ⓒ 국립무형유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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