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의 글과 글씨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왕조에서 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의 글과 글씨는 소중하게 여겨지고 관리되었다. 왕실에서 서예에 사용된 문방구 등의 유물을 통해 왕실의 서예 문화를 볼 수 있다.

원자와 세자 시절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은 국왕은 상당한 수준의 사대부적 지식과 교양을 지녔다. 학문과 문장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라는 도문일치론道文一致論의 문장론에 토대하여 대부분의 사대부가 유교 성리학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문학적 소양까지 겸비하였듯이, 조선의 국왕은 학자이면서 뛰어난 문장가이자 서예가이기도 하였다. 역대 국왕은 국정을 수행하는 과정이나 개인적 문예활동을 통해 많은 글과 글씨를 남겼다.

임금이 지은 글은 어제御製, 임금의 글씨는 어필御筆・어 서御書・신 한
宸翰,

그리고 세자의 글은 예제睿製, 세자의 글씨는 예필睿筆이라 하였다. 어제와 어필은 제왕의 성품과 풍모를 전해주고 왕조의 위엄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소중히 여겨졌으며 특별히 관리되었다.

왕이 승하하면 새로이 즉위한 왕은 선왕의 실록 편찬과 함께 어제・어필을 수집하여 책으로 간행하였다.

역대 왕들의 글과 글씨는 권卷이나 첩帖형태로 만들거나 돌에 새겨 보관되기도 하였다.

역대 임금의 필적을 모은 책인 『열성어필列聖御筆』이 1662년(현종3)에 처음으로 간행된 후, 숙종 연간부터 목판본 열성어필이 간행되었다.

경종 대 선조・인조・효종・현종・숙종의 어필을 모아 판각하여 목판본으로 찍은 『열성어필』은 조선시대 역대 국왕의 글씨와 그림을 잘 전해준다.

조선시대 국왕은 신하와의 화합과 소통을 위해 신하들과 함께 한시를 짓기도 하였다. 특히, 정조는 왕위에 오른 후 연구聯句형식의 시를 자신의 측근 세력인 규장각 신료들과 함께 자주 지었는데, 정조와 신하들의 친필 시를 모은 두루마리의 존재는 이들의 시문과 친필 그리고 당대 왕실에서 사용된 아름다운 종이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조선왕실의 문방구
문방文房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색하는 공간인 서재를 말하며, 문방에 갖추어 놓는 종이[지紙]・붓[필筆]・먹[묵墨]・벼 루[연硯] 등 필기구를 ‘문방구文房具’라 하였다. 과거에는 벼루에 먹을 갈아 붓으로 종이에 쓰는 방법이 글을 쓰는 중요한 수단이었기에, 종이・붓・먹・벼루 네 가지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벗이라 하여 ‘문방사우文房四友’라고도 불렀다.

<연잎 모양의 큰 벼루荷葉硯>는 넓게 펼쳐진 연잎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연잎 위로 두 마리의 메기와 모란꽃을 표현하고 있다.

이 벼루는 흑칠을 한 목제 뚜껑을 갖추고 있는데 뚜껑 윗면에는 구름 속을 나는 용 다섯 마리를 자개로 장식하고 있다.

일반 벼루를 압도하는 크기와 여러 상징물의 적절한 배치, 아름다운 조각 등에서 왕실용 벼루의 품위와 격조를 엿볼 수 있다.

조선왕실에서 사용된 문방구는 휴대용도 진귀한 재료로 아름답게 만들어졌다. 휴대용 벼루 중 백수정과 벽유자기 및 백옥으로 만들어진 예도 전해진다.

먹을 갈 때 사용하는 물을 담는 용기인 연적은 사각・육각・두꺼비・해태・복숭아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며 문방구 중 가장 예술적이고 다양한 형태를 지녔다.

이에, 연적은 실용적 목적뿐 아니라 완상용의 장식품으로도 애용되었다.

왕실에서는 최상급의 닥지로 만든 흰 종이뿐만 아니라 천연안료로 물들인 다양한 색상의 색지, 금가루・운모가루・이끼・가는 털 등의 재료를 섞어서 뜬 종이, 색지에 무늬 판을 찍은 종이 등 멋스러움과 품격이 강조된 다양한 종류의 종이를 사용하였다.

시 또는 편지를 쓰던 시전지詩箋紙는 중국 청나라의 시전지 전문상점에서 수입해 온 것으로 색지에 무늬를 새겨 넣은 판으로 찍어낸 다양한 무늬를 보여준다.

제공: 스토리

국립고궁박물관

손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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