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馬-시공을 달리다

국립제주박물관

이 특별전시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올해 전국 최초로 말산업 특구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여 마련되었습니다. 이 전시를 통해 한국 말 문화의 변천을 이해하고, 말의 고장 제주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제주말의 보존과 활용 가치를 높여 제주 말산업의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이번 전시는 전국 각지의 기관과 개인이 소장한 말 관련 유물을 490여 점이나 한 자리에 선보이는 국내 최초의 대규모 전시입니다.

이 전시가 밑거름이 되어 말의 고장 제주의 말문화가 재조명되고 관련 무형문화유산의 보존과 전승 가치를 높이고 다양한 콘텐츠가 개발됨으로써 제주말 산업이 활성화되기를 바랍니다.

말 모양 청동의장구, 위세품

말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생활에 이용했던 흔적은 기원전 1세기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말 모양 허리띠와 한국식동검 칼자루의 말 장식은 북방 청동기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중국 한나라의 영향을 받은 유물도 함께 출토되고 있어, 다양한 문화가 한반도로 유입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청동말, 말 모양 허리띠, 수레부속구 등의 청동의장구는 당시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사회적 권위를 가진 계층이나 집단이 소유했던 위세품이다.

고대의 말갖춤

말갖춤은 말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고안된 도구이다. 한반도에서는 기원전부터 말갖춤을 만들기 시작하여 삼국시대인 4~5세기에는 완전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말갖춤은 기능에 따라 제어용制御用, 안정용安定用, 장식용裝飾用으로 구분된다. 실용적인 말갖춤은 5세기 이후 화려한 장식용 말갖춤으로 변모해 나갔다. 특히 신라와 가야의 지배층 무덤에서 출토된 화려한 금은 장식 말갖춤은 무덤 주인의 위엄을 높이는 위세품으로서, 죽어서도 생전의 영광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고대인들의 정신을 담고 있다.

말 모양 토기와 토우

삼국시대의 상형토기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안식을 찾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제사 의식이 끝난 후 무덤에 함께 묻혔다. 특히 말 모양 토기와 토우를 껴묻는 풍습이 있었다. 이러한 풍습은 말이 죽은 사람의 영혼을 싣고 승천하는 신성한 동물이라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에서 기인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말 모양 토기와 토우는 실제 사용했던 마구와 복장을 갖추고 있어, 당시의 마구와 복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국가의 말 관리

나라의 재산인 말을 관리하는 제도는 삼국시대에 이미 시행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국영 목장을 설치하고 말 사육법과 마정馬政을 담당하는 부서를 만들었다. 또한 말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조제馬祖祭를 열어 마필 생산을 장려하였다. 조선시대에 말은 국력의 척도였다. 조선은 전국의 목장에 대한 정보를 실은 지도책을 편찬하여 마정에 활용하였다. 또한 말의 사육과 질병을 관리하는 마의馬醫를 배치하여 양마 확보에 나섰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 수의학의 완성기로, 말을 위한 전문 수의서가 편찬되었다.

국가 행사와 말

말은 단순히 사람의 탈 것이라는 기능을 넘어 국가나 통치자의 권위와 신성함을 나타내는 방편이 되었다. 왕의 행차에 함께 하면서 그 권위와 위엄을 높이는 역할을 하였다. 왕실 어른의 기념일이나 왕비를 맞아들이는 국가의 경사에도 빠지지 않았다. 돌아가신 왕과 왕비를 장지葬地로 모시는 행렬 속에서 말은 그들의 영혼이 하늘에 편안히 도달하기를 기원하는 도구가 되었다. 조선시대의 말은 단순히 타고 이동하는 용도를 지나 권위와 위엄의 상징물로서 국가 및 왕실 의례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전쟁의 일등공신

말은 고대부터 전쟁의 중요한 자원이었다. 말을 타고 싸우는 병사인 기병騎兵은 기동력과 돌파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하여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한국의 기병은 북방 유목민족과의 지속적인 전쟁을 거치며, 군사의 핵심적인 병력으로 발달하였다. 화력 병기와 빠른 기동성을 가진 근대식 병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기병은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였다.

삶의 동반자

사람과 말이 함께 해 온 애환은 조선시대에 그려진 풍속화와 기록화 등에 잘 남아 있다. 사람의 일생 중 경사스러운 날을 골라 그린 평생도에는 관직에 출사하거나 혼인을 할 때 말을 타고 가는 그림들이 나온다. 혼인을 할 때 신랑이 타는 백마는 길상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다. 일상생활에서는 최고의 교통수단이자 농공상업을 이끈 주역이었다. 상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조선 후기에는 말은 물자의 조달과 유통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수단으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그림의 주인공이 된 말

회화나 조각에서 말이 의미 있게 다루어진 이유는 ‘빠르다’라는 고유한 특성 때문이다. 고대 전투에서는 말의 기동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말은 권력의 동의어로 인식되었다. 조형 예술에서 말은 권력과 연관된 이미지로 인식되어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말이 주인공으로 묘사된 그림은 관료가 되는 ‘출사出仕’의 의미와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인간의 자유와 행복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자유로움을 담고 있다.  

민속신앙과 말

말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 중 하나로, 민속신앙에도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말은 12지 중 일곱 번째 동물인 오午에 해당되며, 시간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사이, 방향은 정남, 달로는 음력 5월을 나타낸다. 이러한 십이지 신앙은 천문과 역법, 불교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말은 마을을 수호하는 존재로서 신격화되거나, 말의 날을 기념하는 다양한 세시풍속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나라의 말을 키우는 곳, 제주

제주는 말을 사육하기에 좋은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다. 고려 전기부터 명마를 생산하였고 1276년(충렬왕 2)에 탐라목장耽羅牧場이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10개의 목마장이 설치되어 주요 말 진상 지역이 되었다. 또한 국영목장 이외에 개인이 운영하는 목장도 발달하여 임금이 타는 어승마御乘馬를 바칠 만큼 높은 목축기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말 수송의 어려움으로 제주의 말을 전라도 지역에서 기르게 되면서 본토 말과 제주 말의 구별이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무리한 말의 추징은 양마良馬가 점차 감소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제주의 목동, 테우리

‘테우리’는 제주어로 말과 소를 관리하는 목동 또는 목자를 뜻한다. 목자牧者는 고려 때 몽골이 제주도의 목장 경영을 위해 1367년(공민왕 16)에 파견한 말 사육 전문가인 목호牧胡에서 유래한다. 목자는 말 사육에 필요한 사료를 준비하고, 말 또는 소의 고기와 가죽 등과 같은 토산물을 나라에 바쳐야 했다. 제주에는 목자의 후손인 테우리가 남아있다. 테우리는 마을의 말을 관리하거나 농사를 지을 때 말이 이용되는 일을 전담하였다. 테우리는 1970년대까지도 상당수 있었으나 기계화된 농기구가 보급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제공: 스토리

Curated by — Kim seong myeong, Lee aer yung, Oh Yeon s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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