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한라산

국립제주박물관

“The volcanic mountain of Jeju Island, South Korea”

한라산의 화산이름과 다양한 기록들 - (탐라지) 탐라지는 이원진이 제주목사로 부임한 후 제주의 역사, 지리, 문화 등 모든 분야를 정리한 제주 최초의 읍지이다. 산천조에 한라산 명칭들에 대한 어원을 풀이하였다. 두무악, 원산, 부악은 한라산의 형태에 기인한 이름으로 제주어인 두믜오름, 두리메, 가메오름의 한자 차용표기이다. 이를 통해 한라산이 오름으로 불리다가 한라산으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옛 지도속의 한라산 - (해좌전도) 정상기의 동국지도와 비슷한 형태의 지도로 산줄기와 하천, 호수, 교통로 등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지도의 여백에 백두산, 금강산, 설악산 등 10여개에 이르는 유명한 산의 위치와 산수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실려 있다. 또한 고조선, 한사군, 신라구주, 고려팔도의 마을 수를 각각 왼쪽 윗부분의 여백에 기록하여 우리나라의 현재와 과거를 한눈에 볼수 있게 하였다. 제주 부분은 가운데 한라산을 중심으로 삼읍이 표시되어 있으며 전라도 완도를 거쳐 제주에 이르는 항로가 그려져 있다. 제주의 연혁과 토산에 대하여 간략히 기록하였다.

옛 지도속의 한라산 -  (탐라순력도 한라장촉) 탐라순력도는 1702년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제주목사로 재임하는 동안 이루어진 순력 모습을 화공 김남길로 하여금 그리게 한 것으로 총 4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라장촉은 제주 단독지도로는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한라산을 중심으로 목장, 오름, 마을, 하천, 봉수 등을 표시하였으며 18세기 지도제작의 특징인 24방위가 표시되어 있다. 한라산과 오름은 중앙에 병렬해 있으며 한라산 기슭에 목장 경계가 표시되어 있다.

옛 지도속의 한라산 - (탐라지도병서) 제주도와 그 주변의 섬을 그린 대축적 지도이다. 지도 상,하단에 각 고을의 연혁, 도리, 인구, 군사등 제주의 지지를 간략히 요약하였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하는 고산지역과 주요 하천을 따라 발달한 산림대를 잘 나타내고 있다. 한라산 백록담과 분화구 주변의 암석은 동암과 서암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다른 지도에서처럼 어승생악이 강조되어 있다. 두리여, 의항, 연대, 10소장과 잣성 등도 상세히 그려져 있다.

옛 지도 속의 한라산 -  (동여) 14첩으로 이루어진 전국지도 중 전라도 제주 부분이다. 도면에 세로 10개, 가로7개의 모눈이 그려져 있으며 모눈 한 개의 길이는 20리에 해당한다. 지도의 윤곽은 18세기 후반의 군현지도첩인 조선지도나 해동여지도와 비슷하며 대동여지도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단계의 지도로 보인다. 제주의 형태는 타원형이며 중앙에 한라산 백록담이 표시되어 있다. 주변 전라도에서 제주 조천관으로 들어오는 항로가 표시되어 있으며 진, 봉수, 목장, 오름, 하천 등이 그려져 있다. 산지는 산줄기를 이어 그리는 연맥식으로 표현하여 강조하였다.

옛 지도속의 한라산-(대동여지도 제주지도) 김정호가 1861년에 제작,간행한 대동여지도 중 제주지도이다. 한라산 정상부에 있는 암벽이 강하게 부각되었고 중앙에 백록담이 그려져 있다. 다른 지도에서는 보기 힘든 한라산 최고봉인 혈망봉, 십성대가 표시되어 있다. 또한 동쪽에 거은굴, 북쪽에 수행굴도 보인다. 다른 제주지도에 비해 매우 정제된 형태의 지도로 실제 지형을 반영하고 있으며 군사, 행정적으로 중요한 항목을 간결히 표시하였다. 지금까지 오름을 단독으로 그린 것에 비해 연맥식으로 그리고 있다.

옛 지도 속의 한라산 - (환영지) 위백규의 환영지를 모사한 것으로 지도만은 따로 수록한 것이다. 천문도, 세계지도, 중국지도, 조선총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주 그림은 조선총도와 도별도에 수록되어 있는데 형태와 내용이 소략한 편이다. 탐라지도 중앙에 한라산과 백록담이 있으며 전라도지역에서 제주사이에 있는 섬을 자세히 그렸다. 또한 제주 북부지역에 대표적인 포구인 별방, 조천관, 화북, 애월을 강조하여 표시하였다.

풍부한 자연의 보고 - (완당선생전집) 유배 온 사람들이 간혹 유배가옥을 떠나 한라산을 등반하거나 주변을 다니면서 쓴 글들이 있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 유배에서 다소 움직임이 자유로웠던지 한라산 주변을 등반했음을 보여주는 글들이 남아 있다. 이 편지는 추사가 제주에 도착하여 중산간지역을 통해 대정으로 가는 여정에서 본 이국적인 한라산의 풍취를 쓴 글이다. 그러나 재촉하여 가야하는 심회가 잘 나타나 있다. 또한 권3에는 한라산 주변을 등반하면서 감로수를 발견하고 그 상황을 벗 권돈인에게 쓴 편지가 있는데 깊은 산 중에 있는 감로수를 발견하고 그에 대해 고증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임금의 말이 태어난 곳 - (팔준도첩) 팔준도첩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타고 다니던 여덟 마리의 준마를 그린 것이다. 팔준마는 황운골, 유린청, 추풍오, 발전자, 용등자, 응상백, 사자황, 현표를 말한다. 이중에서 응상백이 바로 제주마이다. 이성계가 위화도회군할때 탔던 흰 말이며 검은 눈, 짧은 귀, 짧은 다리가 특징이다. 이성계는 응상백을 강하고 슬기롭다고 표현하였는데 당시 제주 말의 모습과 강인한 체력을 알 수 있다.

임금의 말이 태어난 곳 - (탐라순력도 공마봉진) 1702년 6월 7일, 관덕정에서 진상할 말을 제주목사가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그림이다. 공마봉진의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대정현감 최동제를 차사원으로 임명하였다. 진상할 말은 어승마(임금이 탈 말) 20필, 연례마(매년 정기적으로 공납하는 말) 8필, 차비마(특별한 용도로 쓰기 위해 마련하는 말) 80필, 탄일마(임금의 생일을 축하하여 바치는 말) 20필, 동지마(동짓날에 바치는 말) 20필, 정조마(정월 초하루를 맞이하여 바치는 말) 20필, 세공마(연말에 각 목장에서 바치는 말) 200필, 흉구마(흉변이 있을때 사역하는 말) 32필, 노태마(짐 싣는 말) 33필 총 433필이며 검은 소 20수이다.

임금의 말이 태어난 곳 - (탐라순력도 산장구마) 1702년 10월 15일, 산장에서 말을 일정한 장소로 몰아서 마필 수를 확인하는 그림이다. 그림 중앙에 성판악이 있으며 오른쪽 아래에 교래리 마을이 보인다. 이 일대는 남북 40리, 동서 60~70리 정도의 규모이며 3개의 목책으로 구분되어 있다. 각 목책에는 말을 취합하는데 필요한 원장과 사장이 설치되어 있다. 원정은 미원장과 두원장으로 나뉘며 사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우마를 미원장에 몰아 놓고 사장을 통해 점검한 뒤 두원장에서 취합한다. 마필을 확인하기 위해 제주판관, 감목관, 정의현감이 참여한 가운데 결책군(사장과 원장의 목책을 만드는 군인) 2,602명, 구마군(말을 모는 임무를 맡은 군인)3,720명, 목자와 보인 214명 등 총 6,500여 명이 동원되었다.

임금의 말이 태어난 곳 - (제주말) 제주말은 제주에 서식하는 재래종의 말을 말한다. 탐라마, 과하마, 조랑말, 토마 등으로 불리며 체구가 작고 강건한 체질하며 몸의 길이가 긴 특징이 있다. 고려시대에 원으로 들여온 몽골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나 이전부터 사육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털색은 밤색, 적갈색, 회색, 흑색 등이며 1986년에 천연기념물 제347호로 지정되었다.

탐라개국신화 - (제주도) 민화풍의 제주지도로 1702년에 건립된 삼성묘가 동문 안쪽에 있고, 1755년에 광양으로 이전된 향교가 성안에 있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전반기의 상황으로 추정된다. 하늘의 구름과 우뚝 선 한라산세, 도식적으로 그려진 읍성 모습이 이전의 다른 지도와 구별된다.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에서 이어진 하천이 남수각과 읍성을 통과하여 북수문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상단에는 한라산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삼성묘의 위치와 삼사석의 위치를 알 수 있다.

한라산의 불교사찰 - (청동신장상) 소형의 청동 신장상으로 왼손은 칼을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허리춤에 댄 모습이다. 신장상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탑이나 부도, 사리갖춤구 등에 장식되며 이처럼 작은 금속제 신장상은 사리갖춤구의 겉면에 장식되는 경우가 많다. 존자암에서 출토된 신장상은 부조로 되어 있으며 도포와 가슴선이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다. 이외 사리갖춤구의 일부로 보이는 청동제 뚜껑이 출토되었다.

신선과 별들의 고향 -  (파한록) 심재 김석익은 제주의 한학자로 제주도 학자 명도암 김진용의 후손이다. 탐라기년, 파한록, 유리만필, 근역시화 등 제주의 역사에 대한 많은 기록을 남겼다. 파한록은 한가로움을 깨뜨린다는 뜻으로 유학자들 사이에 회자되던 일화를 모은 것이다. 이 책에는 제주의 풍토, 인물, 문화, 집안, 문집, 성씨, 역대 목민관의 일화, 표류민 이야기, 인쇄술 등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가 실려 있으며 이중 중국 진나라의 방사인 서시가 새겼다는 글씨에 대한 내용이 있다.

신선과 별들의 고향 -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하늘의 모습 천상을 차와 분야에 따라 벌려놓은 그림이다. 천문도의 남쪽하단에 제주도 남쪽에서 바라볼 수 있는 노인성이 표시되어 있다. 노인성은 오늘날의 1등성 카노프스에 해당된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남극노인성, 노인성, 수성이라 부르는데 특히 한국에서는 남쪽의 수평선 근처에서 매우 드물게 볼 수 있다. 예로부터 노인성이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고 믿었기 때눈에 왕이 노인성을 향해 제사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으며 노인성이 보이는 해에는 나라가 평안해진다고 믿었다. 김상헌의 남사록에 의하면 노인성은 춘분과 추분에 날씨가 활짝 개이면 반쯤 볼 수 잇으며 절제사 심연원과 토정 이지함이 보았다고 하였다.

신선과 별들의 고향 - (수성노인도) 예로부터 국가와 민간에서는 별을 보며 국가의 길흉화복을 점쳐왔다. 특히 국가의 흥망성쇠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것으로 여겼던 수성에 대한 믿음은 매우 깊어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거나 새해맞이용 그림으로 그려 장수를 기원하였다. 수성노인도는 수성, 즉 남극노인성을 인격화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8세기 이후에 보편화되었으며 점차 19세기의 칠성신앙에 스며들어 확산되었다. 수성노인도는 길게 솟은 머리와 이마의 주름, 짧은 신체, 양감 있는 도의,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지물이 들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그림 역시 그러한 특징이 잘 나타나 있으며 이목구비와 수염은 섬세한 필치로 그렸고 도의자락은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다. 손에는 '壽'자가 새겨진 위폐를 들고 있으며 생일을 맞이한 강원철의 장수를 기원하고 있는 모습이다.

신선과 별들의 고향 - (군선도) 단원 김홍도가 그린 신선그림이다. 신선들이 군집을 이루는 그림은 주로 서왕모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신선들은 종종 사슴, 나귀, 거북, 괴어 등을 타고 있으며 각 신선을 상징하는 물건을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그림에는 거북을 탄 하마선인과 못 생긴 철괴, 파초선을 든 종리권, 퉁소를 부는 소년 모습의 한상자 등이 활달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김홍도는 풍속화와 도교의 신선 불교의 석가여래를 그린 도석인물화에 능하였는데, 이 그림은 도교나 불교와 관련된 여러 신들을 그린 것으로 당시 조선사회에 뿌리 내린 도가사상을 잘  표현하였다.

한라산 풍경 그림 - (탐라순력도 제주조점) 1702년 11월 15일에 제주읍성에서의 성정군의 군사훈련과 제반사항을 점검하는 그림이다. 제주읍성 밖으로 웅장한 한라산과 오름들, 모흥혈, 연무정, 사직단 등이 그려져 있다. 또한 제주읍성 오른쪽에 한라산에서 발원한 병문천이 읍성의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하류에는 여단이 표시되어 있다. 여단은 여귀를 달래어 병을 예방하기 위해 만든 제단으로, 1400년에 서울과 지방에 설치했으며 관아의 수령이 맡아 제사를 지냈다.

한라산 풍경그림 - (지영록) 야계 이익태가 1694~1696년에 제주목사로 지내는 동안 쓴 읍지이다. 탐라십경에 대한 기록은 탐라십경도서를 통해 알 수 있따. 서문에는 탐라십경도를 만들게 된 연유에 대하여 제주의 뛰어난 10경을 병풍으로 만들어 그 사적을 기술하고 보기에 편리하도록 하기 위함이라 쓰고 있다. 탐라십경은 조천관, 별방소, 성산, 서귀포, 백록담, 영곡, 천지연, 산방, 명월소, 취병담이며 각각의 특징과 아름다움을 소개하였다.

한라산 풍경 그림 - (이익태 초상) 이익태는 목사로 재임하는 동안 제주목 관아에 관덕정, 운주당, 우연당, 향교 등을 다시 지었으며 제주목을 정비하였다. 탐라에 대한 기록이 부족한 것을 보고 지영록을 편찬하였으며 학문을 장려하였다. 지영록은 이익태가 부임하기까지의 과정, 제주에서의 업무내용, 제주관련 역사자료를 비롯하여 숙종대의 외국인 표류기록 등을 적고 있다.

서양인이 바라본 한라산 - (하멜표류기) 헨드릭 하멜은 1653년 8월 16일 스페르웨르호를 타고 나가사키로 가던 중에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한 네덜란드 사람이다. 그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조선에 13년 28일간 억류되었으며 1669년에 나가사키를 통해 네덜란드로 귀국하였다. 네덜란드로 돌아간 후 억류 기간의 임금을 청구하기 위해 하멜보고서를 썼다. 이를 토대로 출판된 소설이 하멜표류기이며 이는 조선과 제주가 서양에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서양인이 바라본 한라산 - (조선남해안도) 에드워드 벨처가 조선해역을 조사하고 그린 지도 중 하나이다. 이 지도는 별도로 제작된 제주전도 6장의 축소판으로 추정된다. 남해안 지역과 제주도의 해안선, 주변 섬, 수심이 정밀하게 적혀 있다. 제주를 켈파트라 하였고 한라산은 화산섬을 뜻하는 오클랜드 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라산 동서사면과 해안을 돌아가면서 주요 오름을 그렸다.

제공: 스토리

Curated by — Kim seong Myeong, Lee aer yung, Oh yeon s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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