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경기도 개관

경기문화재단

경기도의 인문환경, 경기도의 자연환경, 경기도 600년의 의미

경기도의 인문환경

경기도는 1018년고려 현종 9 ‘ 경기 ’ 라는 이름이 처음 쓰이고 1414년조선 태종 14 현재의 경기도가 형태를 갖추게 된 이후 우리나라의 중심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경기도는 한반도 중앙에 위치하며, 해로와 육로를 통해 국토의 남과 북을 쉽게 연결할 뿐만 아니라 비옥한 토지와 온화한 기후로 일찍부터 우리 역사의 핵심무대가 되었다.

경기도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기원전 1세기 무렵 백제가 한강 이남에 도읍하면서부터였다. 한강유역은 백제·고구려·신라 3국의 쟁패지 爭覇地였으며 이곳을 차지하는 국가가 역사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통일국가인 고려는 경기도 땅인 개성 에 도읍하였다. 고려시대의 경기는 ‘사방 의 근본',‘왕의 교화가 우선하는 곳’이라고 불리며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구심력 있고 통일된 모습을 갖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시대의 새 도읍 한양을 중심으로 재편된 경기도는 경제 ·사회·문화·사상의 중심지로 거듭 발전해 나갔다. 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외세침략의 통로이자 저항의 거점, 수도의 기능까지 담당했던 경기도는 인구의 증가와 공업지대의 형성 등 많은 변화가 진행되었다.

해방 후에는 산업화의 주역으로서 서울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였다 . 나라의 중심이자 주류였지만, 한편으로 서울의 변방으로서 근대화 과정의 발전과 모순을 한 몸에 담아냈다. 21세기를 맞아 경기도는 한국의 지식 · 생산 · 소비 및 네트워크의 중심이자 세계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는 동북아시아의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 ‘세계 속의 경기도’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을 수행 중이다.

경기도는 2013년 말 현재 1,255만 명의 인구수를 기록하여 서울을 제치고 광역단체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4.1%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구밀도는 1,234명/㎢이다. 인구증가는 도시화를 가져왔고 행정구역의 개편, 통폐합이 이루어졌다. 경기도는 현재 28시 3군, 20구, 550읍·면·동을 보유하고 있다.

경기도는 한반도의 서부중앙지역으로서 면적은 전국토의
10.2%인 10,172㎢이다. 총 면적 중 수도권정비권역은 100%, 군사시설보호구역은 23.2%, 개발제한구역은 11.6%로 많은 규제를 받고 있다. 북쪽으로는 86㎞의 군사분계선에, 서쪽으로는 413㎞의 해안선에 접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강원도, 남쪽으로는 충청남·북도와 인접해 있고 그 중앙에는 서울이 위치하고 있다 .


경기도는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으며 첨단 산업의 중심으로서 미래 성장의 동력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총 사업체의 20.8%(72만 개), 경제활동인구의 23.9%(617만 명)을 보유한 경기도는 생산, 수출 및 고용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012년 기준, 경기도의 지역내 총 생산(GRDP)은 250.9조원으로 전국 대비 20.8% 이다 . 특히 경기도 광업 및 제조업 비중은 전국의 23%로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경기도의 자연환경

경기도는 한반도의 지체구조상 경기지괴 京畿地塊에 자리하고 있어 선 先캄브리아기의 변성암류가 넓게 분포한다. 중생대에 생성된 화강암은 북부와 남부에 대상 帶狀으로 분포한다. 화강암은 일반적으로 침식을 많이 받아 여주·이천에서처럼 저지대를 이루지만 북한산과 같이 높은 산봉우리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 한탄강 하곡을 따라 현무암이 분포하고 있다.

경기도는 경동지형 傾動地形에 의해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다. 마식령·광주·차령의 3개 산맥이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지난다. 마식령산맥은 황해도와 경기도의 경계를 이루며 광주산맥은 도의 중앙부를 가로지르고 있다. 가평의 국망봉(1.168m), 운악산(935m), 남양주의 천마산(812m), 광주의 남한산(606m) 등이 위치한다. 차령 산맥은 충청북도와 경계를 이루며 여주 남쪽의 오갑산(609m), 안성의 칠현산(513m), 서운산(543m) 등이 500개 안팎으로 높은 산을 이루고 있다. 그 외에 인천의 계양산(395m), 김포의 문수산(376m), 안양의 수리산(475m) 등의 잔구殘丘가 서해안의 낮은 구릉지와 평야지역의 곳곳에 솟아 있다.

평야는 한강·임진강·안성천 등의 주요 하천과 그 지류를 따라 발달해 있다. 임진강 하류의 문산평양, 한강 하류의 김포평야와 고양평야, 안성천의 평택평야는 우리나라 대표적 평야의 하나이다.

경기도는 대부분이 한강유역에 속한다. 한강은 양평군의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해 경기도의 중앙부를 횡류해 서북 끝에서 임진강과 합쳐져 황해의 경기만으로 흘러든다. 한강은 유량이 풍부해 조선시대에는 하천유역 평야지역의 농산물과 수산물을 수도 서울로 운송하는 수상교통로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현재는 수도권 광역 상수도권의 용수원으로서 서울·의정부·고양·부천·안양 ·과천 등 한강 유역과 인천·시흥·안산 등의 서해안지역, 수원·평택 등 안성천 유역까지 물이 공급되고 있다. 임진강은 전곡 부근에서 한탄강·영평천과 합류하고, 하류에서 문산천을 합해 한강과 만나서 경기만으로 흘러든다. 안성천은 유역 면적이 좁으나 황구지천·진위천·안성천의 지류가 합류해 아산호를 이루면서 아산만으로 흘러든다.

경기만京畿灣은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고 만 · 반도 · 섬 등이 많다 . 경기도의 주요 섬은 안산의 풍도와 육도, 화성의 제부도·국화도·입파도 등이며, 유인도는 5 개 , 무인도는 52개이다. 경기만은 조차 潮差가 매우 큰 데다가 해안선의 출입이 심하고 섬이 많으며 한강·임진강·안성천등의 큰 하천들이 대량의 토사를 유출하여 간석지(干潟地 ; 갯벌)가 넓게 발달되어 있다.

경기도 해안에는 약 1,000㎢에 가까운 갯벌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전체 개벌의 37% 에 해당한다 . 강화갯벌·인천갯벌·시화갯벌·남양갯벌이 대표적이다. 과거의 간척사업은 농경지와 염전 개발을 위해 진행되었으나 , 근래는 임해공업단지의 조성을 위한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경기도 600년의 의미

2014년은 경기도가 이곳에 자리 잡은 지 600년이 되는 해이다. 1414년(조선 태종 14) 1 월 18 일 경기좌우도성을‘경기’라 칭하게 하면서(태종실록 권27) 그 기원이 되었다. 오늘날 경기도라 부르는 지역은 이처럼 조선왕조 초기 지방행정의 틀을 8도제八道制로 했을 때 정해진 것으로 이제 600년의 연륜을 갖게 되었다.

원래 경기 京畿의 ‘경’은 왕이 있는 서울을, ‘기’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주변의 땅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기도는 시대에 따라 수도를 중심으로 그 위치가 달라졌다.

경기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고려시대에는 개성이 수도였으므로 그 주위가 경기였다. 1392 년 고려를 대신한 조선이 건국하고 1394 년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자 경기의 위치도 변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경기도는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다.

조선 건국과 함께 경기도 권역의 개편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도읍이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면서 한양에서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개성 북쪽의 지역 대부분이 황해도가 되고, 대신 양광도의 광주·수원·양근 陽根 (양평군 일대에 있었던 옛 고을)·용구龍駒 (현 용인 북부지역의 옛 이름)·처인處仁 (현 용인 남부지역의 옛 이름)·이천利川 등이 새롭게 경기도에 속하게 되었다.

1398년 태조 7에는 충청도의 진위 振威 (현 평택 북부지역)가 편입되었고, 1402년태종 2에는 경기좌우도를 경기좌우도성이라 하였다. 1413년에는 다시 도성으로부터의 거리를 참작하여 일부지역을 황해도와 강원도로 이속시키고 충청도의 안성·양지陽智 (현 용인 남부지역 일부) 등과 강원도의 가평을 경기도에 포함시켰다 . 세종 때에는 철원과 안협 安峽 (옛 이천의 일부)을 강원도로 옮기고, 충청도의 죽산을 경기도에 소속시키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여러 차례 권역에 대한 조정 결과 경기도는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군현이 한강과 임진강을 중심으로 분포하게 되었다.
경기도 지역은 정치적 중심지가 되면서 아울러 경제적으로 물자유통의 거점이 되었다. 고려와 조선 왕조는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로서 전국에서 부세 賦稅를 거두어 중앙으로 집중한 다음 다시 분배하는 체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려시대 이래로 경기도 지역은 역로驛路와 조운漕運이 모여드는 유통의 중심지였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융합의 성격이 강하였다. 삼국시대는 삼국의 다양한 문화가 한강을 중심으로 접합 接合된 지역이었다. 고려시대는 초기에 호족들의 지방문화가 발달한 가운데 중앙에서 그들을 포섭하면서 분립을 극복하 고 통합을 끌어낸 중심지역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고려는 각 지방세력의 자율성을 인정한 바탕에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했으며, 그것을 이끌어 간 세력이 바로 경기도 지역 출신들이었다.

언어·문화·풍속 등으로 본다면 황해도와 충청도를 포함하는 기호문화권 畿湖文化圈이 형성되었으며, 경기도는 그 중심부를 이루었다. 경기도에서는 16세기 성리학을 대표하는 기호학파가 활약하였고, 18세기에는 성리학을 극복·비판하는 양명학 , 실학 등이 크게 일어났다. 실학은 안산의 이익, 수원의 유형원, 광주의 안정복, 남양주의 정약용 등 근기지역을 중심으로 학문 경향을 같이하는 유파가 형성되었으며, 조선후기 사상계를 주도하는 위치에서 문화사의 발전을 이끌어나갔다.

19세기 제국주의 침략과 문호개방의 통로였던 경기도는 외세에 대한 저항이 강하게 일어났고 위기에 처한 나라의 명운을 되살리기 위한 투쟁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서울이 수도의 지위를 상실하자 경기도가 중심 역할을 해나갔다. 경기도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소비재의 판매시장이 확대되고, 노동력 공급이 수월하여 경인공업지대가 형성되었다.

이때 경기도는 서울(경성부)을 포함하였기 때문에 경기도청이 서울 광화문 앞에 들어서게 된다. 도청은 서울이 1946년 경기도에서 분리되어 특별시가 된 이후에도 그곳에 머무르다 1967년에야 수원으로 이전하였다.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분단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경기도는 6·25전쟁의 격렬한 전장이 되었고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었다. 정전 후에도 남북을 가로지르는 군사분계선으로 인해 경기도는 분단을 상징하는 지역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경기도는 서울과 함께 경제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 급속한 산업화는 교통망의 구축과 함께 바로 인구의 급증, 도시화로 이어지면서 ‘수도권 首都圈’ 형성을 가져왔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는 지역개발의 편중과 불균등발전의 부작용도 낳았으며 서울의 주변부로서 집중적이고도 중첩적인 규제를 떠안게 되었다 . 이 시기 경기도는 독자적인 위상을 잃어버리고 서울에 종속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1990년대 지방자치제도의 부활과 정착은 지방분권의 기틀을 만들고 지역의 특성에 어울리는 독자적 개발을 촉진하여 세계화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한 중 수교와 남북 화해의 모색을 통해 우리나라는 서해안 시대 동북아지역의 중심국가로 발돋움하였으며, 이 중심에 경기도가 위치하게 된다. 경기도는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의 심장부이자 동북아 교류협력의 요충지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분단과 전쟁의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경기도는 민족분단을 화해와 협력으로 이어나가 통일시대를 이끌어내야 하는 중책도 맡고 있다. 남북화해와 교류, 경제협력 등 경기도 차원의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 경기도는 21세기 지식기반 산업의 조건인 통신·IT인프라를 구축하였고, 동북아지역의 물류중심지로 성장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경기만과 해안선을 따라 서해안시대는 이미 가시화되었고 남북교류의 분위기가 민족화합으로 이어진다면, 통일한국의 중심이자 동북아 경제권의 거점 지역으로서 ‘세계 속의 경기도 ’ 는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될 것이다 .

Gyeonggi Cultural Foundation
제공: 스토리

600년 경기도

기획 |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진행 | 경기문화재연구원 경기학연구팀
집필진 | 강진갑(경기대학교 교수)
김종혁(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이상대(경기개발연구원 미래비전실장)
이지훈(경기문화재연구원 책임연구원)
정형호(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지원 | 김태용, 최서연, 김영대, 이학성, 박소현, 성형모, 김호균, 김경민, 조수진(경기문화재단 홍보마케팅팀)

이 전시는 경기도 600년(1414-2014)을 맞아 우리 역사에서 핵심역할을 담당한 경기도의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고 통일한국의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약의 계기로 삼고자 제작한 『육백년 경기도』를 바탕으로 기획되었습니다.
Ⓒ경기문화재단

참여: 모든 표현 수단
일부 스토리는 독립적인 제3자가 작성한 것으로 아래의 콘텐츠 제공 기관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Google 번역
찾아보기
주변
프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