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29년(1892)에 '응명입기 지화신열(應命立紀 至化神烈)'이란 존호를 올리면서 만든 고종의 어보이다. 보문에 새겨진 '통천융운 조극돈윤(統天隆運 肇極敦倫)'과 '정성광의 명공대덕(正聖光義 明功大德)', '요준순휘 우모탕경(堯峻舜徽 禹謨湯敬)'이라는 존호는 이미 올려진 것이다. 고종(高宗)의 재위 44년은 위난(危難)으로 점철된 민족의 격동기로서 실질적으로 국운(國運)과 명운을 함께하여 양위 3년 후에는 나라를 빼앗기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능은 금곡(金谷)의 홍릉(洪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