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대학교 명현초상 일괄>은 <공자 초상>, <주자 초상>, <기자 초상>, <제갈무후 초상>, <송시열 초상> 총 5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든 초상화 화면의 상단 좌우로 같은 서체로 찬문이 있고, 특히 기자 초상 뒷면에 ‘은진후송래희근서’라 적혀 있어 모두 송내희(1791~1867)가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송시열의 후손인 송내희는 성현들이 계속 숭상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송시열 계열 서원에 초상을 모셨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본 명현초상 일괄은 한 장소에서 살펴볼 수 있는 드문 사례이자 19세기 유림문화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어 가치가 높은 유물입니다.
박물관에서 <송시열 초상화>를 제외한 다른 초상들은 단 한 번도 전시된 적이 없었습니다. 2016년 소장품도록 『기록화·인물화』를 발간하면서 같은 그림체와 찬문을 가진 공자, 주자, 기자, 제갈무후 초상도 함께 파악하여 5점이 일괄임을 밝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초상이 가로 꺾임과 화면의 얼룩이 매우 심하며 <공자 초상> 오른쪽 찬문에는 충해로 인한 구멍을 발견하였고 2019년 문화재 보수정비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보존처리 전 사전 조사를 시행한 결과 5점 모두 가로 꺾임이 심한 편이었으며, 안료 및 묵서의 박락, 화면 들뜸 등의 손상이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특히 <공자 초상>은 충해 때문에 화견과 초배지까지 소실되었으며 <기자 초상>의 화면 왼쪽 바탕재와 <주자 초상>의 오른쪽 바탕재가 다른 부분보다 색감이 밝아 투과광으로 촬영해보니 배접지가 겹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안료는 백색(연백), 적색(진사+염료), 청색(석청), 황색(연백+염료), 흑색(연백+먹) 등의 광물성 채색 안료와 물에 용해된 염료가 일부 혼합된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보존처리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기자 초상>과 <주자 초상>의 겹친 배접지의 처리 방법과 결손부 색맞춤의 정도였습니다. 전문가 자문회의에서 이 두 초상의 초배지는 모두 제거하지 않고 가능한 한 얇게 재단하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추가로 <공자 초상>의 얼룩을 최대한 완화하기로 하였습니다. 따라서 보존처리는 ①안료 안정화 → ②해체 및 과거 배접지 제거 → ③습식 세척 → ④결손부 메움 → ⑤얼룩 완화(공자 초상) → ⑥1, 2차 배접 → ⑦색맞춤 및 꺾임 보강 → ⑧3차 배접 및 재장황 → ⑨처리 후 기록 순으로 완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