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상은 1979년부터 작고하기 전까지 이응노가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소재이다. 처음에는 군무(群舞)의 형태로 나타났지만 1980년대에 들어가면서 격렬한 집단적 힘의 분출로서 수백 명 혹은 수천 명의 군중들이 빽빽하게 보여 있는 화면이 등장하게 된다. 마치 노도(怒濤)와 같은 군중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동작이 모두 다른 형국을 하고 있으며 움직임의 방향도 제각각이어서, 화면 전체가 웅성이며 술렁이는 듯이 보인다. 고암이 군상에 몰두하게 된 동기는 파리에서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한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촉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화면상에 나타나는 움직임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환희의 몸짓으로 보이기도 하고 분노와 저항의 몸짓으로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화면이 특정한 사건과 관련된 뚜렷한 목적의식을 표현하는 것이기보다는 생동하는 인간사의 일 국면을 보편성을 담아 형상화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