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1363~1452)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장수(長水), 호는 방촌(村)이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하였으나 태조의 요청과 두문동 동료들의 천거로 다시 벼슬길에 올라 대사헌, 병조·예조·이조판서 등을 거쳤다. 세자 폐위와 책봉에 관한 일로 파직과 유배 생활을 겪기도 하였다. 1422년(세종 4)에 좌참찬으로 다시 기용되면서 우·좌의정을 거쳐 18년간 영의정을 지냈다.
이 초상은 조선시대 관리의 평상시 업무복인 홍단령 차림의 반신상이다. 관모의 날개는 폭이 좁고 아래로 쳐진 모양이다. 단령은 연한 담홍색을 띠고 있으며 목선은 깊게 파여 있다. 관모는 조선 초기의 특징을 보이는 반면 단령의 깊게 파인 깃, 넓은 소매통 등은 18세기의 특징을 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