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진흥왕眞興王(재위 540~576년) 때 창건된 황룡사에 선덕여왕善德女王(재위 632~647년)이 9층목탑을 세운 것은 646년이었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8년 동안 황룡사 터를 발굴하였는데, 목탑터 심초석心礎石 하부에서 지진구地鎭具로 보이는 수정, 유리구슬, 곱은 옥, 거울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심초석에는 정사각형의 사리공舍利孔이 있었으나, 그 안에 있던 사리갖춤은 도난되었다가 1966년 회수되었다. 찰주본기刹柱本記는 사리갖춤의 내함內函이며, 외함으로 생각되는 부식된 금동방형함도 함께 발견되었다. 내함은 경첩으로 결합된 금동판들이 네모난 상자의 각 면을 이루는데 한 면은 문처럼 열 수 있도록 문고리가 달렸다. 문의 앞·뒷면(오른쪽 사진)에는 부처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상과 신장상이 각각 2구씩 선새김 기법으로 장식하였다. 앞면의 금강역사상은 하의만 걸친 채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뒷면의 신장상은 갑옷을 입고 각각 무기를 들었다. 문을 제외한 3장의 금동판 앞·뒷면에는 맨 처음 황룡사 9층목탑을 만든 경위와 탑이 기울어 경문왕景文王(재위 861~875년)때인 871년에 다시 탑을 만들게 된 내용을 새겼다. 또한 탑 중창重創에 참여한 관리와 승려들의 이름도 함께 기록되어 있어, 사리갖춤인 동시에 황룡사탑에 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史料이기도 하다. 기록에 의하면 872년 찰주를 들어올리니 그 안에 사리유리병이 안치된 금은고좌金銀高座가 있었다고 하여, 당시 사리갖춤의 납입 방식을 짐작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