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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전투

전쟁기념관

전쟁기념관
서울, 대한민국

고구려 보장왕(寶藏王) 4년(645) 당 태종의 대규모 침공군을 안시성(安市城)의 고구려 군이 치열한 격전 끝에 물리친 전투를 묘사한 기록화이다.

당의 침공군은 요동성(遼東城) 및 개모성(蓋牟城)·백암성(白巖城) 등을 함락하여, 요하 일대 고구려의 방어선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특히 요동성을 비롯한 백암성 등의 전략적 요충이자, 중심거점을 상실한 고구려로서는, 요동 전체를 잃는 것은 물론이고, 압록강 남쪽의 내륙 깊숙한 지역까지 적의 공격을 받게 될지도 모를 위기에 몰렸다. 이 때문에 요동반도 서남단의 평야지대에 위치한 평지성(平地城) 안시성은 전쟁의 향배를 결정할 주요 승부처가 되었다. 연개소문(淵蓋蘇文)은 15만의 증원군을 보내 안시성 근교에서 당군을 공격하였지만, 이마저도 당군에게 패하여 안시성은 고립무원의 상황이었다. 당 태종은 대군(大軍)을 나누어 교대로 투입하고 충차(衝車)와 석포(石砲)를 이용하여 안시성을 거세게 공격하였지만, 성주(城主) 양만춘(楊萬春)이 지휘한 안시성민의 결사적인 방어로 피해만 늘어갈 뿐이었다. 또한 안시성의 고구려군은 당이 60일간 연인원 50여 만을 동원하여 쌓은 토산(土山)마저 점령하였고, 토산을 되찾으려던 당의 대규모 공격마저 좌절시켰다. 안시성전투가 고구려의 대당전쟁에서 중요한 까닭은 승승장구하던 당군의 공격을 막아냈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침공군을 장기간 묶어둠으로써, 당으로 하여금 고구려 공격에 필요한 시간을 허비하게 하였고, 고구려군에게는 전력을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다는 점에 있다. 결국 당 태종은 많은 물자와 인마(人馬)를 소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 정복을 포기하고 철군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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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안시성 전투
  • 크기: 가로:290cm, 세로:197cm
  • 작품유형: 미술품
  • 권리: 전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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