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술·안주 하나 展
술은 음식 문화 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오래된 것 중 하나이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전해 내려오는 각 나라 특유의 독특하고도 전통적인 제조 방법을 통해 그 역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술은 산과 들에서 채취한 열매, 약초, 꽃 같은 다양한 재료와 지역마다, 집집마다 독특한 자연환경과 고유의 양조 기술이 바탕이 되어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저마다 특색 있게 빚어낸 국내의 가양주, 전통주는 좁은 우리나라 국토에서 빚은 술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로워 그 종류가 수만 가지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술은 각 지역과 가문의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역사 깊은 가양주 문화를 바탕으로 존재해왔으나,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 자가 양조의 금지와 서구화한 식생활의 여파로 말미암아 점차 사라져가거나 가까스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다행히 최근 한식의 다양한 가능성이 재조명되면서 우리 술의 가능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우리 고유의 맛과 향기가 담긴 전통주를 지키고 되살려 새롭게 발전시키는 것은 여전히 큰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철학과 지혜로 빚어낸 우리 술, 우리 조상들의 삶과 문화를 반영한 술 문화가 올바른 정신과 의미를 이어 오늘날 새롭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려면 더욱 새로운 시도와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번 전시 주제인 술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음료일 뿐 아니라 삶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매개체입니다. 예부터 술을 ‘마신다’고 표현하지 않고 ‘먹는다’고 표현한 만큼, 우리 조상들은 술을 단순한 기호 음료가 아닌 음식으로 여겨왔습니다. 술은 때로는 약으로서 사람을 치유하고, 풍류를 즐기는 자리를 빛내며, 사람들의 기쁨을 나누거나 근심 걱정을 달래는 매개체로서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어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 되었습니다.
아름지기는 우리 문화와 역사가 담겨 있는 전통 술 문화를 오늘날 편안하게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제안함으로써 현대에 맞게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이를 위해 시각적 만족도만을 충족시키는 전시에서 벗어나 다양한 전통주, 지역의 삶과 문화가 담긴 가양주, 술과 음식 및 그 예법에 담긴 선조들의 정신, 공예와 디자인으로 담아낸 술 문화로 오감을 자극함으로써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우리 술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아름지기가 제안하는 열 가지 술
우리 술의 특성은 곡물을 주원료로 한 발효주이면서, 술도 약이 될 수 있다는 약식동원藥食同源 철학을 담아 빚었다. 조선시대에는 집집마다 술을 빚어온 내력으로 많은 종류의 술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이후 민간에서 전승되어오던 술 빚는 솜씨가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다행히 1980년 이후 민속주 덕에 그 이후 무형문화재라는 이름으로 가양주가 일부 재생되었고, 조선시대의 문헌이나 『고조리서』에는 다양한 술 빚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이러한 우리 술들은 제조방법에 따라 탁주류, 약주라고도 불리는 청주, 증류주인 소주 등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아름지기는 우리 술의 미래에 대한 고민 속에서 전통의 우리 술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여 현재 우리들이 생활 속에서 즐겨 마실 수 있는 우리 술 10가지를 진솔하게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좋은 때를 기념하여 마시는 술로서 새해를 맞이하여 마시는 도소주와 혼례 시 마시는 합환주, 성인식에 마시는 관례주를 선정했다. 또 절기마다 좋은 음식과 함께 계절에 맞는 술을 선정했다. 봄에는 진달래꽃을 넣은 두견주, 더운 여름에는 쉬 상하지 않는 혼양주인 과하주, 가을에는 국화가 들어가는 약용 약주인 소곡주, 추운 겨울에는 증류주인 허벅주를 사계절에 맞게 즐길 수 있도록 제안했다.
특별히 우리 술 문화의 핵심인 가양주 문화가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알려지지 않은 가양주, 두륜산 막걸리와 발포주 오희를 선정해보았다. 그리고 반가 음식 문화를 지향하는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맛공방에서는 우리 음식과 잘 어울리는 반가의 술 삼해약주 한 가지를 제안한다.
계절을 즐기는 술
봄 | 두견주
두견주는 대표적인 봄의 술이다. 충남 당진 지역에서 전승되어오는 술로서, 봄의 대표 꽃 진달래꽃(두견화)이 술의 주재료다. 두견주를 마실 때마다 풍겨오는 진달래꽃 향기는 언제나 봄이 다가오는 설렘을 상기시킨다. 이번 전시에 소개하는 두견주는 본래 충남 당진 박씨 가문의 술이었으나 현재 ‘면천두견주 보존회’에서 만드는 술로 마을 공동의 술이 되었다.
계절을 즐기는 술
여름 | 과하주
우리나라는 높은 기온과 습도로 인해 여름에 술을 빚기가 매우 어려웠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미리 빚어 놓은 술도 여름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혼양주’라는 독특한 양조기법이 발달한다. 술의 발효 시기에 증류주인 소주를 부어 도수를 높임으로써 여름철에도 변질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대표적인 여름 술로 과하주를 제안한다. 경상북도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 술은 혼양주 특유의 감칠맛을 자랑하는 술로서, 저온에서 장기간 발효하는 기법으로 특별한 청량감을 자랑한다.
계절을 즐기는 술
가을 | 소곡주 소곡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가을 술 중 하나로 충청남도 한산 지방에서 백제시대부터 전해 오는 명주다. 소곡주는 찹쌀, 멥쌀, 누룩, 콩, 엿기름, 들국화, 고추 등으로 빚는 이양주로, 저온에서 100일 동안 발효시켜 만드는데, 보통 약주보다 강한 약 18도의 술이다. 며느리가 술 맛을 보느라 젓가락으로 찍어 먹다 보면 저도 모르게 취하여 일어서지 못하게 된다 하여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불린다.
한산 소곡주는 순곡주 특유의 감칠맛과 9~10월에 피는 들국화를 넣어 그윽한 향을 더하며 황금색 빛깔과 하나가 되어 가을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소곡주는 충청남도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충남 한산면 호암리 김영신 명인의 며느리인 유희열 씨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계절을 즐기는 술
겨울 | 허벅주
비교적 도수가 높은 증류주는 몸을 따뜻하게 한다 하여 겨울 술로 적격이다. 제주 지역의 대표적 향토기업인 ‘한라산’에서 빚는 허벅주는 발효가 끝난 후 완성된 술을 소주고리에 증류하는 전통 증류주 기법을 그대로 적용하지는 않지만, 쌀보리와 현미를 원료로 하는 순곡주의 발효 공법을 이용한 현대식 증류주다. 제주도의 맑은 물과 공기로 만드는 허벅주는 불룩한 배 모양의 허벅이라는 제주 전통 옹기에 담긴 술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허벅주는 약 35도로 전통 소주 중에서는 도수가 낮은 편이라 현대인의 입맛에 잘 맞고 우리 음식과도 어울리는 특징을 갖고 있다. 알칼리성의 천연 암반수와 유채 꿀로 맛을 조화시킨 제주도의 증류주 허벅주를 겨울의 술로 제안했다.
때를 기념하는 술
새해주 | 도소주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한 해의 시작을 엄숙하고 신성하게 맞기 위해 정성을 다했다. 이러한 마음을 담아 새해 첫날 마시는 술로 전해져 내려오는 세주歲酒의 시초가 되는 술이 바로 ‘도소주’다. 도소주의 도屠는 ‘죽이다’ ‘잡다’를 의미하며, 소蘇는 ‘사악한 기운’을 뜻하여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술’이라는 의미다. 새해 첫날, 한 해 동안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며 나쁜 기운을 쫓고 복을 들이는 것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백출, 대황, 도라지, 전초, 계심, 호장근 등의 약재가 들어간다고 전해지지만 현재 빚어 지는 도소주는 그 시절 약재와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약재를 베 주머니에 넣어 섣달 그믐날 밤(한 해의 마지막 밤) 마을의 우물 밑바닥에 걸어두었다가 새해 첫날 꺼내어 미리 만들어둔 청주에 넣어 끓인 다음 차게 식혀서 만든 도소주를 온 가족이 모여 동쪽을 향해 앉아서 마셨다고 한다. 청주를 끓이는 과정에서 알코올 도수가 낮아진 까닭에 어린아이까지 마실 수 있었다. 도소주를 마실 때는 어린아이부터 시작해 연장자 순으로 마셨는데, 이는 전염병에 약한 어린아이들을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또 약재를 마을 우물에 담가두는 것은 자기 가족뿐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 질병이 없기를 바라는 옛 사람들의 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때를 기념하는 술
합환주 | 백화주
합환주合歡酒는 남녀가 결혼할 때 함께 잔을 나누어 마시는 술을 가리킨다. 예부터 우리나라 관혼상제 의식에서는 술이 빠질 수 없었다. 그중 합환주의 의미는 부부로서 인연을 맺음을 축하하며 일생의 화합을 기원하는 것이다. 오늘날 전통 혼례가 아니더라도 신랑신부가 하나 됨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술은 여전히 큰 의미가 있다. 백화주는 철마다 피는 꽃잎들을 모아 100여 가지 꽃으로 빚는 술이다. 이처럼 다양한 꽃이 들어간 까닭에 향기가 뛰어나 현대적인 합환주로 적격이다.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공간에서 신랑신부의 결혼을 축하하고, 또 함께하는 일생이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보고자 한다.
때를 기념하는 술
관례주 | 교동법주
관례冠禮는 흔히 말하는 관혼상제의 4례四禮 중 하나인 성년례를 의미한다. 우리 조상들은 아이가 자라 열다섯 살이 지나면 어른이 되었음을 상장하는 의식으로 성년례를 행했다. 현재에도 매년 5월 셋째 주 월요일을 ‘성년의 날’로 정하여 만 19세가 되는 이들을 축하함으로써 전통적인 관례의 의미를 이어가고 있다. 관례주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 처음 접하는 술이다. 현대적인 관례주로 경북 경주시 교동의 최부자댁에서 대대로 빚어온 교동법주를 선보이고자 한다. 교동법주는 역사적 뿌리가 깊고 문화적 가치가 높은 명주로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교동법주의 화려한 금빛은 성인이 됨을 축하하기에 알맞고, 부드럽고 깊은 맛에서 느껴지는 단정한 품격은 성인이 갖춰야 할 마음가짐을 가르치기에 적합하다.
알려지지 않은 술
두륜탁주
지역의 재료를 찾으러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는 심마니들은 보통 2박 3일 동안 특정 지역에 머물면서 그 지방의 특색 있는 술을 마셔보고 숙취까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종종 갖는다. 두륜탁주를 소개한 심마니 부부는 전라도 해남에 바위손을 캐러 갔다가 많이 마셔도 머리가 아프지 않은 막걸리 맛을 보고 단번에 반했다고 한다. 더덕, 야생 당귀, 봉삼 등 약초와 함께 숙성시켜 선보이는 이 탁주는 전라도 두륜산에서 이름을 따와 두륜탁주라고 하며,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에 있는 삼산주조장에서 빚고 있다. 1960년대에 해남 송지에 시집을 온 이중자 할머니(76)가 시아버지에게 막걸리 기술을 전수받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탁주의 도수는 6도이고, 전라도에서 생산하는 누룩을 사용한다. 첨가물을 일절 쓰지 않고 쌀과 당귀를 넣어 옛 방식 그대로 빚어 향을 더하며, 약 15일간 전통 옹기에 담아 숙성시킨다. 멸균 막걸리가 아닌 생 막걸리이기 때문에 유통 및 보관 시 구멍 뚫린 뚜껑으로 덮어 막걸리가 숨을 쉬게 해야 한다.
알려지지 않은 술
발포주 오희
오희는 ‘막걸리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만들어진 술이다. 오희는 막걸리보다 투명하다. 술을 흔들면 앙금이 일어나 반투명 상태가 되지만 가만히 두고 보면 곧 다시 맑아진다. 약주가 아니라 탁주라는 정체성은 섬세해진 앙금이 말해주고 있다. 막걸리는 통상 쌀이나 밀로 빚어 그 빛이 우유 같거나 아이보리색이 되는데, 오희는 주재료인 쌀 이외에 오미자를 부재료로 써서 불그레한 빛이 감돈다. 쌀은 양조장 인근 마을의 방앗간에서 술을 빚을 때마다 도정하여 쓰고, 오미자는 문경 동로면의 오미자를 쓴다. 신선한 오미자를 쉽게 구해 쓰기 위해 오희를 생산하는 문경주조가 문경 동로면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오희의 친구는 오미자 막걸리다. 오미자 막걸리가 1차 발효로 완성된 후 다시 2차 발효를 거치면 오희가 완성된다. 1차 발효 때 당이 남아 있지 않도록 완전 발효한 뒤 오미자 발효액을 넣어 다시 발효하는 것이다. 오희는 막걸리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 즉 발효 기간이 짧고 숙성이 미흡하며 질감이 무겁다는 인식을 걷어낸 술이다. 오희는 맑은 막걸리이면서도 탄산 맛이 강한 발포주다. 알코올 도수는 8.5%로 너무 싱겁지도 독하지도 않은 지점에 걸쳐 있다. 한국 막걸리는 이제 다양해져야 한다. 알코올 도수, 탁도, 무게감, 탄산량에 따른 발포성, 빛깔 등 변화를 줄 수 있는 지점은 너무나 많다. 오희는 그 변화의 한 지점을 보여주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술
삼해약주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삼해주는 고려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궁중 술로 알려져 있다. 쌀과 누룩을 원료로 하고 은은하고 품격 있는 맛을 낸 고급 삼양주다. 삼해주는 해마다 정확한 시기에 빚어졌는데, 정월의 첫 해亥일에 담기 시작하여 해亥일마다 세 번에 걸쳐 빚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조선 후기부터 한양의 술로 불리던 서울의 전통주지만, 이제는 서울에서 삼해주를 빚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는 조선시대 안동 김씨 가문에서 빚어지던 삼해주 기능 보유자인 권희자씨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서울을 대표하는 술로 다시 한 번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맛공방에서는 전통 청주이자 반가의 약주인 삼해약주를 소개한다.
맑은 술·안주 하나
우리는 고대부터 술을 자신의 삶 속에서 즐길 줄 알던 술의 민족이다. 식사 때마다 음식에 어울리는 술을 곁들이기를 즐겼으며, 이를 반주 문화라고 불렀다. 서구에서 음식과 와인의 페어링을 중시하는 마리아주mariage 문화가 우리에게도 오래전 부터 있었다. 이번 기획전시에서는 아름지기가 제안하는 10가지 술에 우리의 안주를 곁들여 우리 음식과 우리 술의 진정한 어울림을 추구해본다.
술이 빚는 풍경
술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음료일 뿐 아니라 때로는 풍류를 담고 때로는 희로애락을 담는 매개체다. 특히 우리 조상들은 술 마시는 예를 중요시하여 하나의 문화로 발전시켰다. 따라서 술 자체뿐 아니라 술을 담는 병과 잔, 안주를 담아내는 그릇과 상차림 등이 한데 어우러져 맛과 멋을 빚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이번 전시의 ‘술이 빚는 풍경’은 이러한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가되, 오늘날 우리에게 맞는 술 문화를 구현하기 위한 공예를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구본창 사진작가의 작품으로 해석 된 조선시대 주병들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한국미의 정수를 드러낸다. 그리고 전통의 기법, 정신, 혹은 전통 소재를 각자 방식대로 창조적으로 이어가는 공예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통해 우리 술 문화를 멋스럽게 담아내고자 했다. 백자, 나무, 유리, 금속, 옹기 등 다양한 물성을 다루는 30여 명의 작가가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황갑순 교수와 연구팀원들이 백자 연구를 통해 다양한 결과물을 제안했다. 전통의 형태와 비례, 재료, 기능, 의미 등 여러 요소를 다양한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현대 생활에 맞게 적용하는 의미 있는 과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구본창
그동안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은 고려청자에 비해 우리에게 덜 알려져 있었다. 드러나지 않는 소박한 멋을 지닌 백자의 매력에 점차 눈을 뜨게 되었고, 무욕의 아름다움 그리고 도공의 손맛이 묻어나는 수수함에 감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2004년부터 국내외 16개 박물관과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백자를 찾아다니며 촬영해왔다. 백자를 단순히 도자기로만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혼을 지닌 그릇으로 보려 애썼다. 단아하고 기품 있는 조선시대의 미의식과 또 만든 이의 마음이 담긴 용기로 보이기를 기대한다.
1. AAM 08 BW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에디션. 1/30 Asian Art Museum, SanFrancisco 소장, 25x20cm
2. HR 03 BW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에디션. 9/30 Horim Museum, Seoul 소장, 25x20cm
3. OM 05 BW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에디션. 1/30 Museum RICHO, Kyoto 소장, 25x20cm
4. AAM 07 BW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에디션. 1/30 Asian Art Museum, SanFrancisco 소장, 25x20cm
5. MG 04 BW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에디션. 1/30 Musée Guimet, Paris 소장, 25x20cm
6. HR 04 BW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에디션. 13/30 Horim Museum, Seoul 소장, 25x20cm
7. BM 02 BW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에디션. 1/30 The British Museum, London 소장, 25x20cm
8. HR 11 BW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에디션. 1/30 Horim Museum, Seoul 소장, 25x20cm
9. FM 01 BW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에디션. 11/30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Seoul 소장, 25x20cm
황갑순
대량생산을 위해 비교적 단가가 저렴한 유리로 제작한 술병을 대신해 한국의 전통 가치를 재고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보전하는 동시에 시대의 미적 감각에 부합하는 투명하고 단단한 도자기 소재 술병과 잔, 그리고 별도의 안주용 그릇을 제작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선례가 있거나 마땅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전통주의 도수, 향과 색의 다양성, 자리를 함께하는 구성원의 수, 용도에 따라 서로 다른 술병의 형태와 크기를 결정하는 일, 그 병에 어울릴 만한 잔 형태의 개발과 별도의 안주용 그릇을 만드는 일은 제작보다 그 선택의 과정이 어려움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오히려 전통주의 다양성과 풍부한 안주 문화는 술 문화에 관련된 다양한 소재를 찾고 만들어나가는 흥미로운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다.
이번 기획전에 선보이는 일련의 작품들은 아름지기에서 기획전을 위해 선정한 10여 가지 다양한 전통주와 안주를 담아내기 위해 제작되었다.
제작을 위한 주재료는 백자토와 다양한 질감의 유약을 사용했다. 특히 손잡이가 없는 병과 잔의 성격상 시각적으로는 물론 촉각으로도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유약의 표면과 인체공학적 즐거움을 주는 병 또는 잔의 체적과 외곽선의 변화에 깊이 주목했다.
술병과 잔에 어울리는 안주용 그릇들은 가급적 일체감을 주기 위한 형태로 작업을 진행했으며, 일부 시각적 화려함과 선정된 안주의 성격에 따라 비교적 크고 화려한 느낌의 그릇을 제작했다. 향음주례는 과거와 오늘날에도 일상을 변화하고 장식하는 선조의,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의 특별한 기쁨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오래되어 깊고 풍부한 도자 역사와 식 문화의 다양함을 간직함에도 과거나 오늘날이나 술에 관련된 용기의 사례는 놀랍게도 그 다양성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따라서 이번 아름지기 기획전은 오래되고 동시에 새로운 ‘향음주례’ 문화의 발전을 위해 기쁜 일이다.
풍요로운 술 문화를 위한 디자인
전통술은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을까? '새로운 술의 등장'이란 단순히 인기 상품의 출시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술이 달라지려면 술병이 달라지고, 술잔이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그 술을 즐기는 공간 디자인까지 달라진다면 술로 인하여 새로운 문화가 꽃피울 것이다. 우리가 술을 단순하게 소비하는 것만이 아니라 즐기고자 한다면, 술 그 자체뿐 아니라 술을 둘러싼 물질과 공간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아야 한다.
술은 기호식품이다. 술에 따라 담긴 병이 다르고, 술잔이 다르다. 술잔은 취미지만, 술병은 정책이나 진배없다. 가만히 살펴보면 술의 종류에 따라 그들만의 시각적 이미지가 존재한다. 맥주병, 소주병, 와인병과 일본 청주병은 그 대표 이미지가 존재한다. 막걸리는 플라스틱 병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근자엔 병에 담는 막걸리도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공용병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막걸리는 대충이나마 이미지가 좁혀 있다. 그런데 전통주인 약주나 소주는 어떠한가? 민속주 회사마다 다른 도자기병을 사용하므로 단일한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집안의 술에서 출발해 문화재로 지정된 전통주 제조업체들은 대체로 디자인과 유통, 판매를 원만하게 진행하기 어렵다. 가내수공업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여 분야별 전문성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주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공용병의 필요성을 개인 양조장이나 한 기업의 문제로 놓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정기
우리 맑은 술은 우리 쌀에서 시작된다. 쌀, 그 근본의 맛은 숙성을 거치면서 다양한 맛과 향을 갖게 된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제안하는 우리 청주 공용병 디자인 콘셉트는 ‘다감다정’이다. 다양성에 내재된 하나의 근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 고유의 ‘정’을 손길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다감다정多感多精’ 콘셉트의 목표다. ‘공용병’의 시작에는 ‘공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공감은 하나의 공통적인 근본 요소를 찾아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다감다정多感多精’ 콘셉트는 우리 술이 시작되는 곳, 바로 쌀이라는 근원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려고 한다. 쌀을 감싸며 보호하고 있는 볍씨의 형태와 구조는 또 다른 형태의 근원이 된다. 쌀은 우리가 밥으로 매일 먹으면서 몸에 익은 익숙함이, 볍씨는 쌀 알맹이라는 본질을 보호하는 구실 등 여러 의미가 공용 병에서 요구하는 공감을 만들어낸다. 또한 우리 맑은 술은 도수가 높아 독한 것에서 도수가 낮아 부드러운 것까지 다양함을 지니고 있다. ‘다감다정’은 우리 맑은 술의 맛과 향을 보고, 만지고, 음미할 수 있게 하면서 더 본질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을 지닌 우리 청주 공용병이다. 우리 맑은 술은 우리 쌀에서 시작되며, ‘다감다정’ 우리 술병으로 담백한 맛과 멋이 우리에게 살갑게 다가온다.
은병수
우리의 전통주인 막걸리는 마시고 취하기만 하는 술이라기 보다는 먹고 마시어 힘을 얻고 흥이 나는 밥과 같은 술이다. 가장 서민적이며 오늘날까지 가장 대중적인 술의 술잔은 그래서 가장 평범하고 소박하고 싶다. 마시며 대하는 잔 안의 세상에 작은 기대와 설레임이 있고 그것이 아름다운 매화의 만개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 소박함 속에 작은 호사이다. 술에서 핀 꽃과의 나눔은 모자람과 더함이 나에게 달려있다. 평범 속에 작은 이치이다.
최중호
술은 민족 형성과 더불어 자연적인 필연으로 인간의 문화에 뿌리 깊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의 술 또한 농경에서 비롯된, 곡류를 발효하여 먹는 음료로서 술만의 고유하고 특색 있는 문화가 발전되어왔다. 이러한 우리 술 문화의 지나온 시간 속에서 가장 꽃을 피운 시기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술의 종류와 맛이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조상의 지혜가 담기 발효 항아리는 현대 가정의 생활양식에 맞게 발효의 순기능 안에서 새로운 재질과 조형을 탐구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정성을 담은 발효 용기는 더 이상 가정의 사각지대에 보관되는 발효 용기가 아닌, 손님 앞까지 진출하여 본래의 대접하는 술 문화와 조화를 이루는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발효 용기의 뚜껑은 흙으로 빚은 도자기의 원반 접시 형태로, 술 발효 과정에서 공기를 차단하는 구실을 하는 동시에 술상에 내어놓을 때 술잔을 올려 술상 차림에 어울리는 기능을 한다. 발효 용기는 전통 발효 항아리인 겹오가리의 기능을 해치지 않고 그대로 가져가며, 현대 생활양식에 맞는 친환경 플라스틱 재질과 조형미로 연출했다. 마지막으로, 바닥의 나무 트레이는 발효 과정에서 지면 온도 변화의 영향을 막아주는 동시에 술상으로 가져갈 때 쓰이는 자연스러운 상황을 연출한다.
도오 do oh : 도오는 '동이' '항아리'의 지역적인 방언이다. 가양주의 문화는 각 지방의 특색이 짙은 하나의 문화인 동시에 각 지방 또는 가정의 문화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지역과 가정의 문화적 특색을 포함하는 가양주 문화를 담아낸 이 용기는 방언을 사용하여 '도오' 라 부르고자 한다.
주관
재단법인 아름지기
후원
까르띠에, (주)이건창호, 한국메세나협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자문위원
술•음식_정혜경
디자인_허시명
전시연출_박경미
공예부문 코디네이터_정소영
전시기획
고정아 남지현 김혜진 이진아
참여연구원_온지음 맛공방(조은희 박성배 강창기 안태용 심수정)
전시홍보_곽은정 김운경 신혜선 정은주
전시영상진행_강수현
전시공간 시공_수인테리어
전시도록
원고_정혜경 허시명
번역_문수열
영어감수_Oliver Williamson Jr.
교열_이진희
사진_이종근, 그루비주얼
디자인 및 인쇄_주식회사 애플이즈 (강홍석)
디자인 감수_박경미
© 2015 아름지기 기획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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